조셉 고든 레빗의 감독 데뷔작 ‘돈 존’은 야동에 중독된 한 남자의 이야기다. 그 이유가 실제로 여자를 만나지 못 하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돈 존은 마음에 드는 여자는 언제든지 유혹할 수 있는 남자다. 하지만 그는 수많은 여자들과의 ‘리얼 섹스’에서 만족감을 찾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섹스 후에 찾아오는 공허감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관계 후에 야동을 보면서 자위를 한다. 그리고 그제야 만족감을 찾으면서 외친다. ‘오늘 난 11번 딸딸이 쳤다!’ 심지어 자기 옆에 누워 있는 여자가 죽여주는 핫 걸(바바라 역의 스칼렛 요한슨)인데도 말이다.
섹스에서 만족을 찾지 못하고 야동에서 만족을 찾던 주인공은 결국 여자 친구와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 충격에 자신을 스스로 더 고립시키기 시작한다.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세상. 사정하는 데는 휴지만 있으면 되는 그런 세상으로 말이다. 마지못해 야동만을 보는 사람들이 들으면 격분할 만한 이야기다.
그러다가 돈 존 앞에 (적어도 돈 존에게는) 별 볼일 없는 여자인 에스더(줄리안 무어)가 나타난다. 에스더는 좀 더 오래 살았음에 가질 수 있는 통찰력과 포용력으로 돈 존을 교화시킨다. 결말에서 영화는 사랑과 섹스, 삶에 있어서 타인과의 진한 관계를 역설한다. 상대방의 이야기는 들을 필요도 없는 포르노나 중간과정이 생략된 원나잇이 아닌 타인과 함께 자신을 찾는 진실한 관계말이다.
이 진부한 결말이 남기는 거대한 메시지 앞에서 우리는 경건해질 수밖에 없다. 무분별하고 자신밖에 모르는 섹스가 얼마나 많은지 한 이혼 전문 변호사는 부부가 이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성(性)적 차이라고 했다. 실제로 한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남녀가 동시에 오르가즘을 느낄 확률이 20% 미만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는 사랑이나 섹스에 관해 기술적인 측면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경청할 줄 아는 자세가 부족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관계 그 자체 말이다. 이런 경우는 수없이 많은데 내 친구 중 한 명도 여자 친구가 섹스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관계를 얼른 끝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애무의 단계를 생략한 후에 관계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녀는 내 친구가 조루이길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섹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카페에서 스무디를 시켜놓고 이야기하기에 부적절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심지어 여자 친구와 단 둘이 있는 자리에서도. 그러나 한 쪽 페달만 밟아서는 자전거가 나아갈 수 없다. 쌍방의 노력 없이는 항상 뭔가 부족한 상태에서 머물러야 할 것이다. 운이 정말 좋지 않다면 남자 친구, 혹은 여자 친구가 내 친구와 같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이 많아진다고 생각하니 끔찍하다.
영화 ‘돈 존’의 마지막 장면에 돈 존이 옛 여자 친구였던 바바라와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바바라 - 남자가 여자를 사랑한다면 그녀를 위해 무엇이든 다 해줄 수 있어.
돈 존 - 그래 맞아. 근데 그거 좀 일방적인 것 같지 않니?
바바라 – 아니, 전혀. 그러니까 넌 여전히 야동이나 보고 있지.
돈 존 – 그래. 포르노 보는 것도 참 일방적이네.
이 대화를 통해서 우리는 ‘돈 존’이 성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일방적이었던 자신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이다. 그러니 자신도 인정할 뭔가가 없는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혹시나 연기를 하고 있을 상대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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