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캠퍼스S커플]
D는 작지 않은 눈에 높은 코, 그리고 서글서글한 인상을 주는 참 다행스러운(?) 얼굴을 가지고 있다. D는 좋은 인상만큼이나 유복한 가정환경 덕분인지 성격도 능글맞아서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그런데 D는 자신이 순정파라고 생각했다. 스물다섯이 먹도록 제대로 한 연애는 딱 두 번. 물론 그 전에 이 여자 저 여자와 관계를 가지긴 했지만 하룻밤의 쾌락을 위한 사탕발림의 향연이었지 결코 진실된 마음은 아니었다.
D는 주로, 친구들과 관계를 맺었다. 주변에 여자도 없었을 뿐더러 친구와 술을 마시다가 어쩌다 걸린 하룻밤에 스스로 만족하며 지냈다. 뭐, 이렇게 걸린 처녀만 넷이니 자부심을 가질 만도 했다. 그 여자들과의 육체적 관계는 단발성으로 그쳤을지언정 교우관계는 계속 지속할 수 있는 매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여자를 여자로 보지 않았다. 아니, 여자에 대한 믿음이 별로 없었다. 한번도 여자에게 데여본 적은 없지만 고학력자, 유복한 가정환경 출신의 주변 여자들의 행태들, 술만 마시면 여우가 되어 추태를 부린다든가, 술이 떡이 되어 다른 남자들이 그녀의 젖가슴과 사타구니를 흠치도록 내버려 둔다든가 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가부장적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또 순결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그는 성적으로 개방된 사회가 실현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으나 항상 모든 것에 선이 있듯이 성적 자유에도 선은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뭐 어쩌다 정말 간혹 어쩌다가 눈이 맞아 사귀지 않는 상태에도 불구하고 남녀가 관계를 가질 수는 있다. 허나 이것을 한 명도 아닌 두 명 세 명과 지속적으로 꾸준히 관계를 맺으며 내가 아는 후배 녀석의 정액을 입으로 받고, 다른 남자 앞에 암캐처럼 엎드려 뒤태를 뽐낸다든가, 손가락을 빠는 판타지를 채워준다거나 하는 상상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더군다나 한때는 사랑하는 여자라고 믿었던 그 여자의 과거일 때는 더. 그리고 그 후배 녀석의 고추가 팔뚝만 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때는 더욱 더.
그래서인지 그는 사랑 따위는 믿지 않았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읽었던 수많은 고전 속의 사랑들은 현실에서는 자취를 감춘듯 했다. 『폭풍의 언덕』, 『좁은 문』, 『부활』, 『첫사랑』 모든 사랑을 주제로 문학 작품 속에서 작가는 아픈 기억에서 해방되고 싶은 바람을 담은 창작 활동이었을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랑이 존재하기는커녕 성에 대한 관념이 바닥에 떨어지다 못해 개가 주워 먹어버린 현실에서 섹스는 인간이 쾌락을 추구할 뿐이라는 불변의 진리, 정점에 있는 예술행위였다.
그는 섹스를 사랑의 전유물로 보지 않았다. 이해는 안 되지만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쾌락 추구 행위이자 종족번식의 방법인 섹스가 인간의 유일무이한 목적이자 공리주의 원칙에서조차도 최선이라 믿고있으니까. 그만큼 섹스는 실보다는 득이 큰 행위였으니까. 섹스만큼 공공연히 사람들의 삶 속에 녹아들어 있으면서, 동시에 말하기 껄끄러워 하고 부끄러워 하는 주제가 또 없으니까.
D는 성적으로 매우 활발했다. 여자가 매 순간 음식의 행복감을 생각하듯이, 그는 매 순간 섹스를 생각한다고 했다. D는 불현듯 친구 J를 생각해냈다. J는 먹성이 좋은 친구였다. 먹성이 좋은 만큼 남자들의 양기조차도 “잠깐 논 거야”라는 말로 정당화시키며 내키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많이, 빨리 먹어치웠다.
최근에는 자기보다 네 살 어린 남자랑 관계를 맺었는데 영계는 확실히 다르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사실 J 의 첫 상대가 D였다. 대학로에서 단둘이 술을 마시고 성균관대학교 법학관 옥상에서 담배를 뿜으며 서로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던 그 날, 소나기가 하염없이 내렸다.
예상치 못했던 날씨였고, 둘 다 우산도 없어 밤은 깊었다. 역사가 시작될 순간이었다. 술도 한잔 했겠다, 피곤하기도 하겠다. 슬쩍 물었다.
“야, 어디 들어가서 비만 잠깐 피하자. 정말 아무 짓도 안 할게.”
워낙 친했던 사이고 쿨한 여자 애라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래” 라고 대답했다.
모텔에 들어가려 하니 마침 가진 현금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가진 돈에 어울리는 허름한 모텔을 찾고 또 찾아 헤매어 들어간 곳은 모텔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모텔이었다. 씻지도 않고 둘이 누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때마침 그 때가 목요일이라 '슈퍼스타K'가 늦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방영되고 있었다. D는 항상 스스로가 약간은 변태스럽다고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리 멍청한 놈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 여자에 대해 궁금한 게 있어.” D는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망설이다가 “아니다. 내가 미쳤지”라면서 돌아 누웠다고 했다.
J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뭔데? 말해봐." 라고 말했다.
"네 가슴 한 번만 만져봐도 되냐?"
"응..."
다음 날 D와 J는 혜화역에 있는 美산부인과에 같이 갔다. 비보험으로 처리되어 진료비가 만팔천 원이 나왔다. 시발. D는 전날 밤을 돌이켜봤다. 자신이 그렇게 한심스러울 수가 없었다. 처녀의 감촉이 아무리 좋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세 네번의 피스톤질만으로 바로 쌀 줄은... 그것도 안에서 헤엄칠 수 있도록 했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만 했다.
물론 너댓 번의 경험이 고작이었던 D였지만 스스로의 능력에 만족하고 있었던 D는 자신에게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산부인과 진료 도중 J가 생리를 해서 안심하긴 했지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