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굿모닝 하트에이크]
다른 남자 놈들 같았으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2년의 군 생활과 이어진 전역 후의 긴 솔로 생활로 인해 외로움 따위는 통달한 지 오래였다.
"피곤해. 다음에 하자."
“아, 왜~ 가자. 가자~ 내가 사줄게. 응?”
“아, 됐어. 내일 일 나가야 돼. 이거 놔, 팔 부러져.”
수 차례 거절했지만 결국 애교 어린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다. 까짓것 한번 따라가 주기로 했다.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다.
우린 조용히 술만 마셨다. 내가 괜한 책임감을 느껴 간간히 유머를 던진 것 말고는 별다른 대화 없이 술집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만 들었다.
급하게 마셔서인지 금방, 너무 많이 취했다. 정신을 다잡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내 표정이 웃겼는지 J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나의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평범한 외모가 갑자기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마에 살짝 엉겨 붙은 머리카락이 채워진 술잔 안에서 갈색 파도처럼 일렁이고 멍한 눈에 비치는 쓸쓸함이 보호본능을 자극했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너 원래 이렇게 예뻤냐?"
“뭐야. 너 취했어?”
“몰라. 근데 너 참 예쁘다.”
“뭔데. 그 조선시대에나 할 법한 멘트는.”
J는 집에 바래다 주겠다고 했다. 나는 괜찮다며 몇 잔을 더 마신 것 같은데, 그리고는 기억이 없다.
눈을 떴다. 사위가 캄캄한 것을 보아 아직 밤인 듯 했다. 눈을 반 쯤 뜬 채로 손을 이리저리 뻗어 전화기를 찾았다.
“아, 씨발.”
화면에서 나오는 강한 빛 때문에 눈살을 찌푸렸다. 화면의 숫자는 오전 10시를 훌쩍 넘어 있었다.
“뭐지?”
상황 파악이 안 돼 어지럽고 숙취가 훅 끼쳤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다시 잠을 청했다. 이불에 몸을 부비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순간, 옆에서 낮선 이의 숨소리가 들렸다.
“깜짝이야!
나는 너무 놀라 발차기를 해 버렸다.
"악!"
비명 소리를 듣고 벽을 더듬어 전등 스위치를 찾았다.
“아야...”
헝클어진 머릿결과 일그러진 표정을 한 괴한은, 다름 아닌 어젯밤 J였다.
"배고프다. 밥 먹으러 가자.”
J는 태연하기 그지 없었다.
대충 옷을 걸쳐 입고 밖에 나와 보니 내가 있던 곳은 모텔이었다. 묻기도 귀찮아서 말 없이 J를 따라 뼈다귀 해장국집에 들어갔다.
이 아침에 누구랑 그렇게 할 말이 많은지, J는 연신 스마트폰을 두드려댔다.
나는 놓여 진 물을 따라서 찔끔찔끔 마시며 J의 눈치를 봤다.
“어제 일 때문에 그래?”
눈은 스마트폰 화면에서 떼지도 않은 채 J가 물었다.
“응.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뭐, 뻔한 패턴이긴 한데 만취가 네가 졸라서 모텔에 왔고 결국엔 했고, 이 정도?”
이렇게 한심할 수는 없다는 눈빛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떨궜다. 그럴 리가 없다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더욱 뻔한 남자가 될 것 같아, 곧 그만 두었다.
“아, 미안하다. 내가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신경 쓰지마. 누구나 실수를 하잖아. 더 마시자고 조른 내 잘못도 있고.”
J는 정말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아,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이 일로 우리가 사귀고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나는 친구로서의 호감으로 한 잔 더하자고 한 거니까. 너도 나한테 관심 없을 것 아냐?”
나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그날 해장국을 먹은 뒤 바로 헤어졌다. 그런데 그날 이후 왠지 모르게 자꾸 J 생각이 났다. 편안함, 설렘이 뒤섞인 묘한 감정들. 자연스럽게 J와 자주 만나게 됐다. 함께 영화를 보고 나면 감상을 편하게 얘기하는 첫 했지만 최대한 멋있게 보이려고 갖은 수를 썼다. 밥을 먹을 땐 부담스러운 액수임에도 J가 화장실 간 틈을 타 서슴없이 결제했다.
그러던 와중에 학교 친구들이 함께 소소한 ‘MT’를 가자고 했다. 평소 같았으면 귀찮다고 했겠지만 J가 참석 한다는 말에 승낙해 버렸다.
MT는 정말 평범했다. 냇가에서 잠깐 첨벙대다가 방에 들어와 술을 마셨다. 방이 무척 넓어서 남자 넷 여자 다섯으로 구성된 9명의 인원이 굴러다니고도 남는 크기였다. 남자들은 거의 기절하다시피 잠에 빠졌는데 여자들은 무슨 기운이 남았는지 불 꺼진 와중에도 서로 키득대며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새벽 3시가 다 됐을 무렵, 불편해서 잠에서 깼다. 여자들은 아예 둘러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돌아 누운 채로 가만히 이야기를 엿들었다. 그런데 놀랍게 나와 J의 이야기였었다. 누군가 내가 J를 좋아하는 게 확실하다고 했다. 다른 애들도 격하고 동조했고, J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두근대는 마음으로 J의 반응을 기다렸다.
"에이, 승우랑 나는 그런 사이 아니야. 그냥 친구야. 친구.”
'
그냥 친구'라니,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삼십 분쯤 지나 여자 애들도 잠에 들 준비를 했다.
“아, 베개 남는 거 없나?”
“없는데, 한 개 모자라.”
듣자 하니 J 몫의 베개가 없는 모양이었다.
“에이씨, 잠 좀 자자. 잠 좀!”
남자 애 하나가 신경질을 내며 화장실로 터벅터벅 들어갔다. 변기 물과 소변과 맞부딪히는 소리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어우, 더러워 진짜!"
나는 벌떡 일어나 소변을 보러간 친구의 베개를 J에게 툭 던졌다.
“올, 홍승우~”
“시끄러. 빨리자.”
MT 이후 J와 나 사이에 어떤 변화도 없었다. 그저 편하고 편한 친구 사이. 그런데 어느 날 J가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다.
“뭐? 싫어. 절대 안 해!”
“왜~ 재밌을 것 같은데.”
“미쳤어?”
“미치긴 누가 미쳐. 재미로 하자는 건데.”
“그런 건, **넷이나 하는 거라고!”
J의 이야기는 이랬다. 얼마 전 사귄 남자 친구가 있는데 그 놈이 관음증이 있어서 나와 J가 관계를 가지는 것을 촬영하고 싶어한다는 거였다.
“너 솔직히 내가 너 좋아하는 거 알잖아. 근데 나한테 어떻게 이런 부탁을 할 수 있어?”
나는 화가 나서 J에게 소리쳤다.
“왜 그렇게 감정적이고 복잡하게만 생각해, 그냥 노는 것처럼 하면 되는 거지.”
J는 정말 곤란한 표정이었다.
“정말이지 네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
나는 그 말을 남기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J는 너무 잔인했다. 내 순수한 마음을 짓밟았다. 그런데 분을 참을 수 없다가도 J의 얼굴이 떠올랐다.
때 마침 J에게서 문자가 왔다.
'화났어?'
나는 누굴 탓해야 하고, 어떠한 행동을 취해야 하고, 지금 이 순간 어떠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지 모르는 바보가 돼 버렸다.
막막함이 부른 오기였을까, 좌절 끝에 허탈함으로 분노 속에 꽃핀 객기였을까, 아니면 J를 위한 마음에서 일까. 나는 후회 할지도 모르는 선택을 하려하고 있었다.
나는 J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내 순수함을 스스로 더럽힐 추한 짓에 동참하기로 했다.
다음 날 나는 J와 갔던 모텔 앞에 서 있었다. 어쩌다가 이 지경 까지 오게 되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J의 말대로 J와 J의 남자친구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방문 앞에 서서 쿵쾅대는 가슴을 추스르고 노크를 했다.
“어서 오세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곱상하다 못해 기생오라비처럼 생겨먹은 J의 남자 친구와 대면했다.
나는 긴장해서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방안에 들어섰다. 불투명 유리로 된 화장실에서 샤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J는 씻고 있습니다. 뭐 마실 거라도 드릴까요?”
그는 이런 일에 능숙한 듯 나를 편안하고 친절하게 대했다.
“아뇨. 됐습니다.”
때마침 J가 수건으로 머릴 털며 알몸으로 등장했다
.
꿀꺽.
나는 너무 긴장됐다.
"승우 왔네?”
J는 눈을 동그랗게 뜰 때 정말 귀여웠다. J의 남자친구의 권유로 옷을 벗었지만 어색함을 떨쳐 내지 못해 부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침대에 천천히 몸을 밀어 넣었다. J는 침대 정면에 앉아있는 그를 한 번 보고는 내게 다가왔다.
“그냥 하면 돼?”
J가 그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잠깐만 카메라 좀 꺼내고.”
그는 비싸 보이는 케이스에서 비싸 보이는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시작 할게요.”
나는 상황을 조금이라도 주도하고픈 마음에 그렇게 말했다.
“네, 그러세요.”
그는 가볍게 미소 지었다.
나는 몇 초를 망설이다 내 앞에 누워있는 J에게 키스하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카메라의 시선이 느껴졌다. 키스밖에 안 했는데 땀이 많이 났다
나는 J의 가슴을 움켜쥐고 키스를 퍼부었다. 이내 입으로 유두를 핥으니 J가 희미한 신음 소리를 냈다. 그 소리를 들으니 자신감이 생겼다. 나는 J의 위쪽 가슴을 시작으로 가슴이 접히는 부분을 혀로 핥았다. 그 다음은 갈비뼈와 배. 밑으로 서서히 내려가며 손으로는 J의 유두를 살짝 꼬집고 입으론 허벅지를 먹이를 탐하는 짐승처럼 빨아댔다.
허벅지에서 내려와 J의 성기를 사정없이 애무했다. J의 소리는 더욱더 거칠게 뱉어졌고 무언가 부서진 듯 정신은 J와 나에게만 집중했다. 클리토리스를 혀의 촉각으로 발견하고 J의 소리가 더욱 크게 울려 퍼질 때까지 사탕처럼 빨아댔다.
동작이 어색해 질 쯤 페니스를 삽입하려고 했지만, 계속 죽은 듯이 축 늘어졌다 팽창함을 반복했다. J가 일어나 머리를 쓸어 넘기며 나의 성기를 막대처럼 핥고 빨았다. 입에서 나의 등줄기 까지 전해지는 짜릿한 기분과 나의 물건을 탐하듯 물고 있는 J의 하얀 얼굴과 붉은 입술은 날 더욱 미치게 만들었다.
내 페니스는 돌처럼 딱딱하고 창처럼 두꺼운 형태를 유지했다. J는 스르륵 다시 침대에 몸을 뉘었고 나는 아까보다 덜어진 적은 부담감을 가지고 J의 속으로 들어갔다.
누워 있는 J의 손은 침대의 이불을 세게 당겨 찢어 버릴 듯이 꽉 붙잡고 있었고 나는 그런 J가 사랑스러워 허리로 J에게 나의 사랑을 표하듯 더 깊게 더 짙게 움직였다. 내 몸은 갈수록 불처럼 달아올랐다.
J 또한 하얀 가슴골에 많은 땀이 맺혀 있었다. 우리는 무언가에 홀린 듯 사랑이라 부르고 싶은 행위를 이어 나갔다. J를 일으켜 세워 침대의 끝을 잡게 하고 다시금 J의 속으로 나를 거칠게 집어넣었다. J의 신음 소리에 만물이 바스러져 내릴 것 같았다.
J의 허리와 터질듯 한 엉덩이는 예쁜 곡선을 그리고 있었고 J를 잡고 행위를 이어 나가는 나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나의 물건의 한계가 왔다고 느꼈다. J를 갖고 싶다는 욕망인지 절정에 다 달아 제어가 안 되는 것 인지 나는 J 안에 나를 잔뜩 흩뿌렸다. J는 뒤 돌아 내 얼굴을 잡고 내게 입 맞추었고, 나는 쓰러지듯 J를 감싸 안았다.
“수고하셨습니다.” 카메라로 우릴 찍던 그는 급히 가봐야 한다며 일어났다.
얼마 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모텔에서 나와 어두워진 여름 밤 거리를 우리 둘은 걷고 있었다. 아직 덜 마른 J의 길고도 검은 생머리가 기분 좋은 밤 바람에 휘날렸다.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아스팔트길을 뚜벅뚜벅 걷고 있을 뿐이었다. 뭔가 기분 좋고도 달달한 기류가 우리 사이에 흐르는 듯 했다.
“무슨, 말이라도 좀 해봐.”
J가 애써 태연한 척 장난스러운 말투로 말을 꺼냈다.
“해장국 먹으러 갈래?”
“뭐?”
주먹을 살짝 치고는 입을 가리고 사랑스럽게 웃었다.
“너, 오늘도 참 예쁘다.”
“너 또 취했어?”
“아니. 안 취했어. 있잖아 J야.”
“응?”
“좋아한다.”
“뭐야, 갑자기.”
“내가 그 변태 새끼보다 못생기고 볼품없어도, 내가 너를 많이 좋아한다.”
“나는 너를 바람둥이로 만들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나랑 있자, 잘 해줄게.”
“그래서, 그래서 뭐?”
“나랑 사귀자.”
맑은 달빛 아래서 우린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입을 맞췄다. 순수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 시작이 언젠간 끝을 맞이할 수도 있고, J에 눈에 다른 남자가 들어올 수도 있고, 여자에 눈을 뜬 나의 눈에 다른 여자가 들어올 수도 있지만 나는 언제나 J가 추구하는 남자로 남을 것이고, J는 언제나 나의 마음속에서 나갈 것 같지 않기에 우리는 사랑을 시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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