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지금은 만나지 않지만 반년쯤 만남을 지속하던 남자가 있었다. K였다. 흔하디 흔한 김씨. 그와의 이야기다.
K는 키도 작았고, 배도 나왔고, 통통한 몸매에 고추도 그리 쓸만하진 않았다. 웃는 것 하나, 그게 참 착해보였다. K를 만나면서 나름의 심쿵(!) 모드가 있다면, K의 운전 매너 정도 되시겠다.
차를 타고 가면, 급정거를 할 일이 많다. 예를 들면 잘 달리다가 급 빨간불이라던가, 그런 거 말이다. 그러면 K는 속도를 항상 급하게 줄이는 것도 아닌데 손으로 내가 앞으로 튀어나가지 않게끔 막아주었다. 차가 멈춘 뒤엔 놀라지 않았냐, 괜찮으냐고 묻곤 했다. 속으론 '오~' 하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지만 그 당시엔 놀란 '척'하며 괜찮아진 것 같다고 했다.
K와 첫 섹스의 일화가 기억난다. 여름이 막 시작될 무렵, 5월 말에서 6월 초쯤이었다. 대자연이 생동하는 시기여서인지 단 게 무척 땡겼다. 난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마시는 건 괜찮지만 씹는(빨아먹는 것 포함)건 그다지... 그런데 그 날은 평소에 한 입 먹고 마는 생크림 케이크가 무지무지 땡겼다.
그래서 K에게 카톡을 날렸다. 당시 시간이 아마 11시쯤이었던 것 같다. K의 집은 분당이었고, 우리 집은 마포였다.
자려고 씻었다는 K는 케이크가 먹고 싶다는 나의 말에 한달음에 생크림 케이크를 사 들고 우리 집 앞으로 왔다. 그 밤에, 그것도 예쁜!
케이크를 내밀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데 참 사랑스러웠다. K와 잠시 드라이브를 했다. 차는 파주로 달렸다. 자유로를 타고 재규어를 만끽했다. 차는 파주출판도시 휴게소에서 멈췄다. 바나나 우유를 하나씩 들고 자동차 동호회인지 번쩍번쩍한 황소들과 말들이 주르륵 서 있었다. 우리의 고양이는 쭈구리가 된다며 어두컴컴한(?) 구석에 다시 차를 대 놓고, 차에 앉아 얘길 나눴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을 맞췄다.
애초에 누굴 통해서 만난 것도 아니라서, 거리낌없이 키스를 하고, 그랬던 것 같다. 입술이 통통하게 불어갈 무렵, 쪽 소리를 내며 입술을 뗐고, 서로의 암묵적인 동의 하에, 파주에 즐비한 무인모텔 중 하나에 들어갔다.
사실 무인모텔은 처음이었다. 시설이 좋았다. 아침도 준다는 말에(비록 빵쪼가리지만) 예약을 해놓고 배고팠던지라 야식집에 야식을 주문하고 나란히 앉아 티비를 봤다. 손은 꼭 잡은 채로.
야식을 먹고, 케이크도 먹고나서 격렬하게 섹스했다. 앞서 말했듯 K는 고추는 쓸만하지 않았다.
첫 섹스 후 K는 달라졌다. 더 자주 나를 만나러 왔고, 내가 좋아하는 간식거리들을 자주 사들고 그 사람 좋은 웃음을 배실배실 지어보였다. 여느 날처럼 데이트를 하다가, K가 물었다.
"자기는 나 말고 다른 남자랑 해?"
"아니, 안 하는데."
진짜로 안 했다. 리얼팩트사실이다. K가 조심스레 제안했다. 자신이 요즘 연락하는 커플인데, 혹시 상대방을 바꿔서 해 보는 건 어떻겠냐고 물었다. 기분이 나쁘면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근데 마침 이 남자와의 섹스가 질려가던 참이었다.
일주일 뒤, 나는 K에게 하겠다고 말했다.
일은 빠르게 진행됐다. 좀 한적한 외곽의 커피숍에서 그 커플을 만났다. 상대쪽 커플은 진짜 연인이라고 했다. 4년쯤 만난 커플인데, 남자가 해외에서 일한다고 했다. 여자가 봐도 정말 예쁜 여자와, 오랜 시간 차곡차곡 쌓아 올린 근육이 슬림한 남자였다. 선남선녀 커플이었다. 조금 얘기를 나누다가, 근처 무인 모텔로 향했다. 각자 주차를 하고, 카드키를 뽑고, 방으로 올라갔다.
이동은 남자들이 하기로 했다. K와 가볍게 뽀뽀를 한 뒤, K를 그 여자가 있는 방으로 보냈다. 소파에 앉아 담배를 하나 피우는데 가슴이 두근거렸다. 조금 설레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그때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여자의 남자가 왔다. 어색한 침묵만이 방 안에 감돌았다. 담배를 하나 권했다.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침대로 가자고 했다. 서로 옷을 입은 채로 덩그라니 누워 있었다. 그가 팔베개라도 해야 덜 어색하지 않겠느냐고 하길래 덥석 그의 어깨에 머리를 들이댔다. 약간의 땀냄새와 진한 아르마니 다이아몬드의 향이 느껴졌다.
그의 팔을 베고서 그의 여친 이야기를 들었다. 약간(이 아닌 것 같다. 아주 많이.) 보수적인 성향의 여친은 이 일을 처음에는 굉장히 불쾌해 했다고 말했다. 오래 만나면서 새로움을 찾고 싶었고, 여자친구가 허락하는 다른 여자와의 섹스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마침 K를 알게 되었고, 이 침대까지 오게 되었다고 하는 거다.
얘기를 나누다가 순간 눈이 마주쳤다. 그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다. 그의 까무잡잡하고 건조한 손이 내 가슴을 조물조물 만지기 시작했고, 이내 촉촉히 젖어들었다. 그가 손끝으로 내 클리토리스를 문질렀다. 그러곤 그가 내 다리 사이에 그것으로 노크를 했다.
굉장한 사이즈였다. 아플 정도로 굉장했다. 그가 허리를 놀려 내 안에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했다. 아팠다. 아픔이 점차 쾌감으로 변할 무렵. 그가 사정했다. 정확하진 않지만 대강 걸린 시간은 3분 정도. 사실 지루보단 조루가 낫지만 3분은 좀 심한 것 같았다.
실망한 눈치가 보였는지 그가 변명을 늘어놨다. 긴장도 했고 여친 외에 다른 여자랑 하는 게 처음이라 어쩌구 저쩌구...
2차전을 시작하려는데,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의 여친. 집에 가자고 징징대는 소리가 휴대폰 밖으로 들렸다. 곧 올라갈 거라고 하곤 전화를 끊고 그가 한숨을 쉬었다. 듣자 하니 K와 그의 여친은 섹스 없이 이야기만 좀 했다고 한다. 자기도 안 한 척을 해야겠다며 웃었다.
그가 나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다음엔 둘이 만나자며. 번호 대신 카톡 아이디를 알려줬다. 정상적인 만남도 아닌데 여기까지만 아는 게 낫지 않냐는 희한한 논리를 지껄이며 쿨한 여자 코스프레를 했다.
어쨌든, 그를 보내고 K가 다시 돌아왔다. 나보고 재미는 봤냐고 물었다. 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음부턴 진짜 커플 말고 파트너 커플이랑 하자고 했다. K가 그러자고 했다. 그리고 K와는 콩나물국밥집에서 국밥을 한 그릇 하고 헤어졌다.참고로 그 날 K랑은 섹스를 안 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K의 번호, 카톡 등을 전부 차단하고 삭제했다. 그냥 왜 그랬는진 모르겠다. 더 이상 만나기 싫었다.
일주일쯤 지나 그가 연락을 해 왔다. 만나고 싶다고. 팝업으로 뜨는 몇 글자만 보고 그의 카톡을 지워버렸다. 어쨌거나 파트너를 바꾼다든지, 그런 거엔 내가 꼴리지가 않는다.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아무튼. 전문 용어(?)로 스왑이라고 하나? 정말 재미 없다. 성향이 그렇다면 존중은 해 드리겠지만, 단순히 호기심이라면 말리고 싶다.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진심 재미없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손에 쥔 떡이나 잡수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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