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쁜 녀석들>
순한 얼굴, 하얀 피부, 어딘가 정갈한 몸짓. 그는 경찰이었다. 처음 어플에서 그를 만나 톡으로 얘기만 할 무렵에는, 그냥 "녹을 먹고 사는 사람"이라고만 했다. 예전에 당한 게 있기도 해서... (이건 조만간 쓸 예정. 간략히 말해 클럽에서 원나잇을 했는데, 지 말로는 공무원이었는데 알고보니 군인이었다. 원나잇이지만 속인 게 괘씸해!)
아, 군생활 하나보다, 싶었다. 그냥 그렇게 믿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그의 집에서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간도 크지. 낼름 남자 혼자 사는 집에 가다니... 어쨌든 간에 나는 오프에서 사람 만나는 걸 두려워 하는 편은 아니다. 나를 새우잡이 배에 팔아 넘기건, 눈알을 뽑아다 팔건,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내 팔자려니 할 사람이다. 나는.
맨날 사족이 길어져서 탈이다.
쨌든, 그가 해 주는 밥. 현미밥에 제육볶음, 맛은 마트에서 파는 맛이 났다. 뭐 어때, 혼자남인데 이 정도면 준수하지. 식사를 마치고 둘이 나란히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마침 쫀득한(?) 영화가 방영되고 있었고, 주인공 남녀가 막 키스를 하고 있었다.
민망해 하며 눈치를 보는데 그가 내 머리를 잡고 입을 맞췄고 그와 나는 90년대 영화처럼 입을 맞춘 채로 침대로 쓰러졌다. 워낙 오래 전 일이라 그와의 섹스는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집에 항상 콘돔이 구비돼 있었고, 소포트한 섹스를 추구했던 게 기억난다.
내 필명이 '여왕'이지만 난 절대 군림하거나 명령 등 흔히 말해 성향이 '그쪽'은 아니다. 오히려 수동적이었음 수동적이었지, 섹스는 동등한 입장에서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가 그랬다. 꼭 안아주거나, 부드럽게 터치하거나, 무엇을 강압적으로 요구하거나 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빨아.' 같은 말을 하지 않았단 거다. 그 점이 정말 좋았다. 항상 콘돔을 쓰는 것도, 아프지 않게 하는 것도. 참 좋았다. 섹스가 끝난 뒤엔 항상 스팀 타월로 내 몸을 닦아주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 그와의 섹스는 항상 따뜻하고, 평화로웠다.
그는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몰라도 항상 내가 자고 있어도 나를 집 안에 둔 채로 출근을 했다. 집에 세간살이가 그렇게 뭐 고급진 건 아니었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집 안에 혼자 두고 출근이라니, 지금 생각해보니 참 별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의 옷장 속에 곱게 걸려 있던 경찰복.
그걸 입히고 섹스를 안 해 본게 천추의 한이다.
젠장, 잘 지내는지 궁금한 남자 중 하나다.
잘 지내죠? 김 순경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