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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섹스를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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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두 번째 스물] 어떤 섹스를 좋아하세요? 전 정말 그녀와 섹스하는 게 좋았어요. 사랑하는 사람이었거든요. 그저 그런 다른 진부한 사랑 얘기들처럼, 먼 나라에서 외롭게 일하던 젊은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건 설명이 필요한 일이 아니었어요. 몰래 서로의 숙소로 상대를 초대하기도 하고, 틈만 나면 눈을 맞추고 손을 잡는 시간들. 제가 먼저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제게 말했어요. “딴 데 한 눈 팔면 안 돼. 난 너 없이 못 살아.” 저는 그녀에게 말했어요. “먼저 가서 자리 잡고 있을 테니까 얼른 내 품으로 돌아와.” 그렇게 바다 하나를 사이에 둔 멀고 먼 관계가 시작되었어요. 계절이 바뀔 때마다 그녀는 한국을 찾았어요. 봄의 화사한 벚꽃 아래서 밝게 웃는 모습을 보다 달이 떠요. 여름의 더위를 핑계로 숨어든 모텔은 연장 전화를 두 번이나 해야 했어요. 가을의 낙엽 더미 곁에 쪼그려앉던 그녀는 아기 손바닥 같다며 빨간 단풍잎 하나를 집어 들었어요. 옷깃 사이로 스며드는 꽁꽁 추운 바람을 피해 그녀는 제 코트 자락 아래로 숨어요. 품 안에 코를 박고 깊게 들이쉬는 숨. 예쁜 제 냄새에 담배 냄새가 섞이니 금연하라는 잔소리까지도. 메신저 속 그녀의 사진은 항상 웃고 있었어요. 연락 없는 남자, 별로라고 했지요? 하루의 시작과 끝은 그녀에게 보내는 메시지였어요. 알아요. 일은 언제나 바쁜 법이죠. 그녀의 답장을 받는 것은 쉽지 않았어요. 어떤 교수님 말씀이에요. 사랑은 열병이래요. 뜨겁게 타올랐다 식는 때가 있다고. 계속 타오르기만 하면 사람이 죽는다고. 정말이지 낭만적인 교수님이 아닐 수 없어요.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낭만적이지는 않아요. 뜨겁게 달궈진 난로가 식어 가는 걸 지켜본 적 있나요? 얼굴이 화끈거리던 열기가 사그라들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냉랭함이 난로와 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지요. 나는 난로에 넣을 나무가 없었나 봐요. 그래서 매달 바다를 건너 손편지와 자그마한 선물을 보냈는지도 몰라요. 연락을 하는 여자도 별로에요. 오가는 연락 속에 식어가는 그녀가 느껴지거든요. 그래도 기뻤어요. 아직 남은 그녀의 온기를 찾을 때마다 건빵 속의 별사탕처럼 입 속에 단맛이 확 돌았거든요. 알아요. 계란 한 판을 다 채워 가는 나이에서 달콤이란 별명은 좀 깬다는 거. 하지만 그녀는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던 달콤한 맛이었어요. 입술도. 가슴도. 다리 사이의 예쁜 꿀단지도. 생각해보니 이상한 날이었어요. 그녀의 휴가 첫 날마다 우리가 늘 만나던 카페는 그런 적이 없는데 자리가 없었죠. 그녀가 좋아하던 타코야키 집은 왜 그날따라 개인 사정이 있었을까요? 우리 사정도 좀 봐주면 좋았을 텐데. 그날따라 꽃샘추위가 독했어요. 벚꽃이 일찍 피니 마니 하는 뉴스가 연일 들려왔는데 말이죠. 그래서인 줄 알았어요. 마주 보는 자리를 잡지 못한 덕에 그녀가 창밖을 그리 궁금해하나 타코야키 대신 찾아간 크림소스 듬뿍 얹은 치킨이 맛이 없나 날이 추워서 코트 깃에 얼굴을 묻어야 하나 그래서 내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하나. 어떤 섹스를 좋아하세요? 전 정말 그녀와 섹스하는 게 좋았어요. 사랑하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그녀는 아니었나 봐요. 그녀의 몸은 모르는 곳이 없어요. 생리 때마다 컵이 애매해진다고 투덜대는 봉긋한 가슴도. 처음 보자마자 제 마음을 홀딱 빼앗겨 버린 예쁜 엉덩이도. 그리고 한 번 얼굴을 묻으면 다시는 나오고 싶지 않았던 예쁜 다리 사이의 꿀단지도. 오랜만의 섹스. 그래요, 어색하기도 할 거에요. 그래서 그녀가 안쪽 깊은 곳까지 들어간 나를 꼭 안아주지 않는 걸 거예요. 그래서 그녀가 귀에 사랑을 속삭일 때 힘든 표정을 지은 걸 거예요. 사정을 하고, 그녀의 옆에 누웠어요. 품에 안 가는 그녀는 뜨거웠어요. 참 아쉬웠어요. 그녀의 마음도 이렇게 뜨거웠다면 좋았을 텐데. 심장 소리에 맞춰 등을 토닥이며 물었어요. “누구야? 같이 근무하는 그 친구?” 와작. 아마 그런 소리였을 거예요. 그녀의 눈물샘이 깨지는 소리는. 미안해라는 저 소리일리는 없잖아요. 괜찮아요. 이해할 수 있어요. 멀리 떨어진, 일 년에 네 번 보는 남자친구보다는 매일 보는 직장 동료가 더 친숙할 수 있지요. 알아요. 외로움은 견디기 힘들다는 거. 그래서 우리가 그토록 아파하면서도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는 거니까요. 그걸로 그녀를 탓할 생각은 없어요. 그녀의 고백이 이어져요. 아이러니하죠? 내가 고백하던 날도 그녀가 울었는데, 그녀가 고백하는 날도 그녀가 울어요. 마음이 참 여린 어이에요. 어떤 대목, 어떤 순간이었을까요? 그녀의 목소리가 멀어져 들려와요. 다시 얼굴을 보면 원래대로 돌아올 줄 알았대요. 저도 그러길 바랐지요. 메신저 속의 그녀가 메마른 건 먼 바다를 건너오는 거라 그런 걸 거라고. 아니었대요. 내가 그녀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 친구 얼굴이 떠올랐대요. ‘와작 와작 와작 와작 와작 와작.’ 아마 그런 소리였던 것 같아요. 그녀는 계속 눈물을 흘려요. 왜 저는 눈물이 안 나올까요? 눈물샘이 깨지는 소리는 여러 번 들린 것 같은데. 제 눈물샘이 아닌 그녀의 눈물샘이 또 깨진 걸까요? 아니면 다른 게 깨진 걸까요? 작은 모텔 창문을 열어요. 담배 연기를 신경 써서 창밖으로 흘려 보내요. 그녀는 담배 냄새를 싫어하니까. 우는 그녀를 향해 방긋 웃어요. 코끼리는 마지막이 되면 무리를 떠난대요. 그래요., 이게 마지막인 것 같은데. 그녀에게 험한 모습 보이기 싫어요. 화라도 내 보래요. 소리라도 쳐 보래요. 어떻게요? 그 친구 얼굴이 떠오르면 어떡해요? 싫어요. 마지막으로 보내는 순간이라도 내 웃는 모습으로 그녀 머릿속을 가득 채울래요. 마음에는 이미 다른 사람이 들어있어 내 자리가 없을 테니까요. 그렇게 웃으며 그녀가 행복하길 빌어줬어요. 이젠 멀리 있는 사람 때문에 힘들어할 필요 없을 테니까요. 잘 된 일이에요. 그렇게 남자는 웃고 여자는 우는, 진부한 이별 장면이 끝났어요. 정말이지 사람들 사는 얘기는 너무나 진부하기 짝이 없어요. 특히 사랑 얘기는요. 어떤 섹스를 좋아하세요? 저는 정말 섹스를 좋아해요. 단, 사랑은 뺀 섹스를요. 글쓴이ㅣ터치패드 원문보기▶ https://goo.gl/kSVdw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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