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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Out Of Trac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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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마위드러브]

오후 2시 30분, 150원짜리 도서관 자판기 커피를 뽑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군대에서의 점호같이 하루 시작을 알리는 나만의 오래되고 경건한 의식이다. 벤치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먹고 담배를 쫘~악 빨아 피우면 세계의 냄새는 약간 불분명해지는데 나의 존재도 약간 불분명해는 느낌이 든다. 그럴 때, 세련된 걸음걸이로 또각또각 걸어와 무심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는 여자가 있으면 난 소설처럼 말을 걸고 싶어진다. 그…때의 멘트는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멘트여야 하는데 예를 들자면 무라카미 하루키 산문집 두께만큼의 멘트랄까. “어젯밤에 섹스했나요?” 와 같은 느낌말이다. 이런 상상은 언제나 내 입을 통해 발화되지는 않으며 머릿속에서만 헤엄치다 곧 가라앉는다.

커피를 다 마시고 일어나려 할 때, 형준이가 왔다. 이 친구는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고 얼마 전에 돌아왔는데 라켓운동을 너무 못한다. 일주일 전 탁구를 치다가 형준이에게 “넌 탁구를 너무 못 쳐. 너와 친구 하기가 싫다.” 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형준이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게 탁구라켓을 던졌고 난 가까스로 피했다. 그리고 그 녀석은 짜증 나니까 매운 짬뽕을 먹으러 가자고 했고 난 돈이 없다고 했다. 그날 그 녀석은 혼자 짬뽕을 먹으러 갔다. 아무튼 그날의 기억 때문인지 형준이는 오랜만에 만남에도 불구하고 보자마자 시퍼런 칼을 들고 있는 백정처럼 말했다.

"어이구, 시발? 커피 마실 돈은 있네?"
"....."
"시발, 묵언 수행이라도 하나보지? 저기요? 계세요?"

난 언제나 궁금했다. 왜 이 녀석은 나에게 욕을 하는가. 이 녀석에게 난 욕을 해도 반응하지 않을 것 같은 초식공룡 같은 건가? 아니면 욕을 하면 친구 앞에 부랄이라는 명사가 붙어 우리 둘의 관계가 방황하는 양아치로 정비되는 느낌에? 그것도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나와 싸움을 하면 이길 것 같아서? 가끔 요괴의 움직임을 보이는 나의 운동신경을 모르는 것인가? 지금! 바로 지금! 요괴로 변신해 저 녀석에 기억에 앞으로의 인생에 다시는 없을 폭력을 심어주며 욕을 하지 말라고 말하면, 훗날 저 양아치에게 욕으로 상처 입을 누군가의 마음을 예방해 주는 건 아닐까? 그건 꽤나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이 개.새.끼 지금 팰까? 씨뽕. 그러지 않기로 했다. 군 생활 중 부모님 외에 유일하게 면회를 와주었기 때문이다. 그날은 갓 일병을 단 주말이었는데 형준이는 면회실에서 피자를 먹다가 갑자기 흐느꼈다. 기르던 개가 죽었다고 했다. 한참을 울다 내가 마지막 피자 한 조각을 짚자 그날도 형준이는 내게 종이컵을 던졌다. 그때도 피했다. 난 잘 피한다.

"……그래,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냐.." 

나는 눈을 감고 타들어 가는 담배 소리를 음미하며 나지막이 말했다.

"……넌 시발놈아,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돼? 개소리는 시발."

그렇게 내게 말하는 동시에, 형준이는 암기해야 할 것 같은 중요한 문장에 천천히 밑줄을 긋는 것처럼 10m 앞 벤치에 앉아 있는 여자를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그 여자는 적어도 도서관 앞 흡연구역에서는 가장 빛났다. 긴 검정머리에 빨간 립스틱을 발랐으며, 짙은 청 스키니바지를 입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빨간색 임신복을 입었다. 잠깐만. 왜 흡연구역에 임산부가 앉아 있는 거야? 이러한 의문은 3초 뒤 완벽하게 풀렸다. 임산부는 톰슨가젤 같은 느낌으로 자리에서 가볍게 일어나 나와 형준이 있는 쪽으로 다가오더니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우아하게 선글라스를 벗고 말했다.

“우리 아기야 오빠… 어머, 민균오빠도 오랜만이네?”

내 이름까지 아는 그 임산부의 얼굴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케이블 채널에 새로운 몰래카메라 프로그램인가, 전에 나도 이런 프로그램을 기획해 본적이 있었지. 누군가 먼저 하고 있었던 것인가. 그렇지 결국은 더욱 자극적인 콘텐츠를 기획할 수밖에 없는 거야. 매운 음식일수록 사람은 좋다고 찾아서 먹으러 다니니까. 그보다 촬영 감독은 어디 있지? 이럴 줄 알았으면 면도라도 하고 올걸. 바로 그때, 임산부는 형준에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러자 주위는 고요해졌다. 우리 셋은 자연스레 무대 위 배우가 되었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에게 쏠렸다. 바르셀로나래플리카를 입은 남자 고등학생이 쥐새끼처럼 스마트폰을 키고 촬영을 하려고 했다. 다가가 그러지 말라고 했다. 아! 스마트폰을 획득한 인간은 걸어 다니는 CCTV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가 CCTV 같았다. ROTC 학생이 우리 사이를 절도 있게 지나갔다. 모두가 스마트폰 동영상 녹음을 하게 되면 나로서는 방법이 없었다. 분명 저기 도서관 3층에서 누군가는 이 상황을 찍었을 것이다. ‘ 임산부 침공격ㅋㅋ 히드라인줄 ㅋㅋㅋㅋ’ 라는 제목에 페이스북 동영상이 올라올 것이다. 아니, 이미 페이스북에 올라갔는지도 모른다. 현기증이 났다. 피해야 했다.

"나간다. 급한 일이 있는 걸 깜빡했어, 뭔일인지 모르겠지만 둘이 잘 해결하고." 

내가 생각해도 명연기였다. 말에 처음부터 끝까지 날숨의 한 호흡으로 말했으며 미간을 약간 좁히고 검지와 엄지손가락으로 왼쪽 귓불을 만졌다. 진지하게 이 상황이 매우 부담되며, 제3자인 내가 빠져야 좀 더 긴밀하고 의미 있는 이야기들을 너희가 할 것 같다는 완곡하면서도 절제된,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오빠도 있어야 되요. 일단 정문 앞에 감자탕 먹고 배 좀 채워요."

커피였다면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필 감자탕이란 말인가. 

"그럴까, 어쩌면 제3자인 내가 좀 더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 장기를 둘 때 훈수 두는 사람이 더 잘 보이는 것처럼 말이야."
더 이상에 극적인 상황변화가 없자 사람들은 다시 핸드폰을 만지거나,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으로 아까의 상황을 누가 찍었을 것 같은 찝찝한 불안함이 남아있었지만 내가 침을 맞은 것도 아닌데 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침을 소매로 닦은 형준이의 표정은 지나치게 우울해 보였다. 감자탕 집으로 걸어가는 동안 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핸드폰 게임을 했다. 감자탕 집은 우리 말고 아무도 없었다.

“이모 여기 중자 하나요.”
"대자로 주시구요. 이슬도 한 병 주세요."

자세히 보니 23살 정도 돼 보이는 여자는 내 말을 정정하며 맞은편에 방석을 깔고 앉았다. TV엔 방정맞은 러쉬앤캐쉬 광고가 나왔고 곧 소주와 소주잔 세 개, 깍두기가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꿈꾸는 것 같았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복잡한 일에 말려드는 느낌에 감자탕만 나오면 먹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참, 민균오빠 소맥 먹지 않았어요? 이모 여기 맥주도 한 병 주세요."
돗대
취업지망생을 가장한 백수이며, 오빠이고 싶은데 항상 아저씨라고 불리는 남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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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사랑미야 2016-09-22 09:38:42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써니 2014-07-13 20:05:34
다음편이 궁금해요!!계속연재되는거죠?
돗대191/ 네 2탄 연재 했습니다! 댓글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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