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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만난 그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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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셉 고든 레빗의 69채널]
 
전화벨이 울렸다. 저장되어있지 않은 낯선 번호였지만 뒷자리는 낯설지 않았다. 10년 전에 내가 쓰던 번호.
 
'누구지?'
 
전화를 받으려는 찰나에 벨이 멈췄다.
 
'부재중 전화 010-xxxx-△△△△'
 
손가락으로 스윽 밀어 전화를 걸어볼까 했지만 바쁜 업무 탓에 나중에 하기로 했다. 퇴근 시간이 다 되고 한가해졌을 무렵 휴대폰을 열어볼 수 있었다. 나는 그 부재중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으로 돈 멕클레인의 '빈센트'가 흘러나왔다. 내가 10년 전에 쓰던 통화 연결음.
 
"오랜만이네"
 
"응, 그렇네."
 
'누구세요?' 라는 말은 필요가 없었다. 단번에 알았다. 10년 전에 헤어진 여자라는 걸.
 
"나와."
 
"아니, 아직 퇴근 전이야."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고 나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내 전화번호를 알았는지, 내가 어디서 일을 하고 있는지 그녀라면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내가 일하는 사무실 주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놀랄 일은 아니었다.
 
"퇴근하면 나와."
 
"퇴근하면"
 
전화를 끊었다.
 
"왜 왔지."
 
옷을 갈아입고 사무실을 나왔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니?"
 
"너희 사무실 앞 상가 커피숍."
 
"그래."
 
전화를 끊고 막상 그녀를 만나러 갈 생각을 하니 긴장이 되었다. 사람이 없는 골목길로 들어가 담배를 꺼냈다. 담배를 집고 빙글빙글 비비듯 돌리며 필터의 솜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10년 전 그녀와의 마지막이 생각났다. 그녀는 눈을 감고 누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길래 웃어?"
 
"네가 설거지하는 생각."
 
"내가 어디서?"
 
"우리 같이 살 집에서."
 
"내가 그럴까?"
 
"모르지."
 
그녀는 가끔 나와 같이 사는 상상을 했다. 가난뱅이와 사는 걸 꿈꾸다니. 눈을 감고 상상을 즐기는 그녀를 바라보는 나의 표정에는 미안함과 답답함이 섞여 있었다.
 
"돈이 많은 남자랑 가난한 남자 중에 뭐가 더 좋아?"
 
"둘 다 너라면 돈이 많은 '너'."
 
"하지만 난 가난한 '나'잖아."
 
"그거 하나뿐이라면 가난한 '너'라도 괜찮아."
 
"현실감각이 전혀 없구나."
 
"네가 가난한 게 현실이고 그런 너를 좋아하는 게 내 현실이지. 그게 어째서 현실감각이 없는 거야?"
 
"무섭지 않아? 가난한 남자와 살아야 한다는 게? 나는 잘해야 동네 빌라 전세쯤 살 것 같은데. 너에게 좋은 옷, 좋은 차, 좋은 집 뭐 하나 해줄 수가 없을 텐데. 편한 인생이 아닐 텐데."
 

"편한 삶을 살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텐데 왜 가난한 나를 선택해?"
 
"그런 생각을 하는 네가 더 무서워."
 
"현실 감각이 없구나. 정말."
 
"나는 네가 제일이야. 더 나은 인생을 산다고? 누구랑?"
 
"얼마든지 있지."
 
"말해봐. 누구? 누가 지금 나의 인생을 더 낫게 만들어주는데? 누구? 당장에 누가?"
 
"지금 현재 네 감정에 충실하겠다는 거야?"
 
"왜 그래? 왜 그런 소리 해?"
 
"네가 편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야."
 
그녀는 한참 나의 눈을 쏘아보았다.
 
"왜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 걱정을 해?"
 
"일어날 일이니까."
 
"네 말 다 알겠는데. 헤어져 줄게. 네 말은, 헤어져서 마음 아픈 건 잠시라 이거잖아. 아프고 슬픈 게 다 나으면 더 좋은 사람 만나서 잘 살라는 거잖아."
 
"그래."
 
"알았어. 하나만 묻자."
 
"말해."
 
"너랑 헤어지면 아프고 슬플 내 마음 보상해줄 수 있어?"
 
"아니."
 
"그래."
 
그녀의 질문은 '나중에라도 너의 생각이 바뀔 수는 없겠어? 그럼 다시 올 수 있어?'라는 의미였던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아니'라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그녀와 나는 헤어졌다.
 
커피숍 문을 열었다. 그녀를 찾기 위해 둘러보려던 나의 시선은 정확히 그녀의 눈을 향했다. 그녀와 나는 서로 특유의 무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손을 들어 서로의 존재를 알리지도 않았고 눈이 커진다거나 눈이 커지며 이마에 주름이 생기거나 하지 않았다. 그녀의 앞에 앉았다.
 
"멋지네. 여전히."
 
"예쁘네. 아직도."
 
10년 만에 만나서 나에게 거짓말을 하는 그녀가 얄미웠지만 나는 진심을 말했다. 그녀는 옆 의자에 올려둔 백을 테이블 위로 올렸다. '명품'이었다. 그리고 그 백에서 차 키를 꺼냈다. 아우디 키였다. 그녀는 말없이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아졌네. 많이."
 
"덕분이지."
 
"뭘 좀 마셔야겠다."
 
"내가 살게."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지만, 마음이 바뀌어 잘살고 있는 그녀에게 한잔 얻어먹기로 했다. 나는 계산대로 가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커피를 받아 들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너는 동네 빌라 전세에 사니?"
 
"여기까지 왔으면 다 알고 온 거 아냐?"
 
"너는 동네 빌라 전세에 사니?"
 
그녀는 왠지 모를 슬픔에 찬 눈빛으로 나를 보며 되물었다.
 
"그때 말했듯이 나는 동네 빌라 전세에 살아."
 
"나는 네 말대로 아주 잘 살아."
 
"잘됐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라고 마음이 말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조금 전 보다 더 슬퍼 보였다.
 
"만일 네가 그때 '나는 부자가 될 거야.'라고 말했다면 부자가 됐을 거야."
 
"왜?"
 
"지금 모든 게 네가 말했던 대로잖아."
 
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커피를 마셨다.
 
"알아보고 확인했으면 됐지 여기까지 왜 왔어?"
 
화, 분노는 없었다. 그쯤 되어서야 궁금한 것들이 하나 둘 생겨났다.
 
"와이프 많이 사랑하니?"
 
"왜 왔냐고 물었어. 질문에는 대답을 해. 질문을 하지 말고."
 
"이걸 물어보고 싶어서 온 거야."
 
나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 한숨을 쉬었다.
 
"나도 가난한 너랑 살 자신은 얼마든지 있었는데."
 
"나는 아직 대답하지 않았어."
 
"그럼 대답해봐. 와이프 많이 사랑해서 결혼한 거야?"
 
"어."
 
나의 대답을 들은 그녀는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글쓴이ㅣ 돼-지-
원문보기 http://goo.gl/b2psw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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