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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동 그 남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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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
 
여지없이 그날은 찾아오고야 말았다. 바로 추석!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기는 개뿔. 서른 살이 넘어가면서부터 나는 한가위, 설 등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취업 전에는 취직했냐?로 공격하던 친척들이, 취업을 하고 내가 사회인으로서 자리를 잡고 나니 다른 공격을 하고 있었다.
 
“결혼 언제 하냐? 애인은 있냐?”
 
“어휴, 너 몸매 관리해야겠다. 그러다 애인 안 생겨.”
 
물론 요새는 나도 내성이 생겨 맞대응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노후 준비는 하셨어요? 퇴직 얼마 남으셨죠?”
 
“철수는 모의고사 성적 나왔나요? 대학 어디 보내실 건데요?”
 
등등이다. 물론 그때마다 나중에 엄마의 등짝 스매싱을 맞기도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기세 등등하게 돼 받아치던 나도 지치고야 말았다. 결국 회사가 바빠서 명절 때도 집에서 일을 해야 한다는 날 뻥을 치기에 이르렀고, 엄마는 의심 섞인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긴 했지만 내 혼을 담은 구라에 결국 넘어갔다. 뭐 물론, 내가 가 봐야 부쳐 놓은 전 집어먹기나 하지 전혀 전력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이래서 사람은 평소 행실이 중요해 하하하.
 
나는 평소에는 누릴 수 없는 이틀간의 자유가 생겼다. 머리는 대충 묶어 올리고(물론 안 감고) 소파에서 우적우적 양파링을 씹어 먹으며 TV를 봐도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었고, 늦게까지 컴퓨터를 할 수 있을뿐더러, 무엇보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겁나 근육 빵빵하고 배에 왕자 막 새겨진 외국 배우 나오는 야동을 느긋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내 사랑 양파링을 밀림의 맹수처럼 뜯어 먹고 있자니 맥주가 고팠다. 예전과는 달리, 요새는 편의점도 그렇고 다른 동네 가게들이 연휴에 영업하는 가게가 많아져서 좋다. 난 늘 그렇듯이 집에서 입고 있던 속옷 차림에 원피스만 걸치고, 산발한 머리를 캡으로 눌러 쓴 바로 그 순간. 뭔가 쎄한 느낌이 들었다.
 
‘그 귀염둥이 훈남을 또 마주치진 않을까? 에이 설마. 명절인데 지도 어디 갔겠지… 근데 만약에 걔네 집이 큰집이라면? 그래서 어쩌다 마주친다면?’
 
혹시 하는 마음에 거울을 봤더니, 이건 뭐 동네 걸인이 따로 없었다. 일단 번들거리는 피부부터 대충 세안을 하고, 비비크림을 얼굴에 펴 발랐다. 풀 메이크업 까진 안되더라도 기본 세팅 정도는 들어가야 한다. 처음에는 쪽 팔리지 않을 정도만 하자였는데 어느새 뷰러에 마스카라까지 잡은 나를 보고 이게 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이 X발 그냥 나갈래.
 
결국 머리는 풀어 다시 위로 올려 묶고, 집에서 막 입는 미키마우스 떡하니 그려져 있는(옷에 튄 희미한 김치 국물은 옵션) 그런 원피스 말고 그나마 입을 수 있을 만한, 그러나 외출복 같지는 않은 원피스를 입고 밖으로 나섰다.
 
생각보다 밖에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아니, 꽤 정도가 아니라 우리 아파트 주차장이 꽉 차 있었다. 나는 행여 그를 만날까 걸음걸이와 표정에 신경을 쓰며 사뿐히 걸어나갔다. 우리 집 앞 마트는 명절 X까!를 외치며 장사를 하고 있었고, 나는 가뿐하게 6개 들이 맥주와 내 사랑 오징어 땅콩을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음?”
 
“어?”
 
역시 여자의 촉은 위대하다. 혹시나 싶어서 걸어서 1분 거리에 있는 마트 가는데 비비를 바른 이 나의 직감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정말 거짓말처럼 혹시나 했던 내 마음대로 그 귀염둥이 훈훈남을 마트 계산대에서 마주치고 만 것이었다. 이번에는 녀석이 나를 알아보고 어? 하는 감탄사와 함께 씩 하고 웃었다. ‘아… 짜식 아무리 봐도 더럽히고 싶어.’
 
“어머. 명절인데 어디 안 갔나 봐요?”
 
나는 슬쩍 들고 있던 맥주 여섯 캔을 슬쩍 팔 뒤로 빼며 물었다. 그는 한 손에 콜라캔 하나만을 들고 있을 뿐이었다.
 
“네. 저희 집이 큰집이어서요. 되게 자주 뵙네요.”
 
“그러게요.”
 
나는 완전 생얼이 아닌 자신감을 얼굴로 표현하며 수줍게 웃어 주었다. 근데 그 녀석이 내가 손에 들고 있던 맥주캔을 힐끗 바라보았다.
 
“심부름 오셨나 봐요?”
 
아냐, 귀염둥아. 다 내가 처먹을 거야.
 
“아…네 뭐 그렇죠. “
 
“근데 명절인데 어디 안 가셨어요?”
 
“네. 다들 가고 저만 남았어요.”
 
“왜 안 가셨어요?”
 
“일 할 것도 있고 해서요.”
 
“아아……”
 
계산을 하고 나서 마트 밖으로 나왔다. 내가 콜라캔을 만지작거리는 그를 보고 물었다.
 
“콜라 하나 사러 온 거예요?”
 
“아… 하하. 사실 조카들이 단체로 놀러 와서요. 너무 시끄러워서 나왔다가 목이 말라 가지고.”
 
“설기랑 같이 안 나왔네요?”
 
“네. 조카들이 아주 끌어안고 놔 주질 않아서요.”
 
오호라. 시끄러워서 나갔다 이거지? 으흐흐. 우리 집은 경비실 앞에 있는 동이고, 그가 사는 102동은 우리 집에서 더 위로 올라가야 했다. 즉, 우리가 헤어지는 포인트는 아마 저 경비실이 될 것이다. 그 안에 어떻게 꼬리를 쳐서 이 녀석과 더 오래 있지?
 
“그렇구나~ 사실 저도 혼자 있어서 많이 심심했는데.”
 
“아 그래요? 추석이라 재미있는 영화 해줄 텐데.”
 
‘이 새키야! 재밌는 영화 소리가 나오냐? 신호를 줬는데…’
 
녀석은 나의 필살 배시시 웃음을 맞고도 너무 순수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자꾸 저러니까 더 더럽히고 싶어졌다.
 
“지금 들어가면 조카들에게 치이시죠?”
 
“네. 막 등에 올라타고… 배에서 뛰고 난리도 아니에요.”
 
평소라면 살짝 내숭을 떨면서 남자가 치고 들어갈 여지를 남겨 주어야 할 것이다. 만약 이 녀석이 나와 동년배의, 그러니까 여자 경험 적당히 있고 적당히 놀아본 놈이라면 그게 먹히겠지만 이 녀석은 아무래도 반쯤은 떠먹여줘야 먹는 놈인 것 같았다. 적당한 멘트를 찾다가 무심한 척 시크하게 말했다.
 
“그럼 심심한데 맥주나 한 잔 할래요?”
 
“네? 맥주요?”
 
“어차피 안 들어가실 거면… 저도 오늘 혼자라서 심심하기도 하고요.”
 
녀석이 내 말속에 있는 오늘 혼자라는 말의 의미를 알았을까? 그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아. 그럴까요?”
 
“강아지 키우는 거 알려 주시기로 했잖아요.”
 
“아 맞다. 그랬죠. 근데 오늘 연 곳이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짜식 별 걱정을 다 하네. 우리 아파트는 꽤 상가가 많았고, 명절에도 가족들의 친목 도모를 위해 술집을 찾는 고객들을 타깃으로 하는 사장님이 분명 한 명은 있을 거다. 아니나 다를 까 집 근처 치킨집이 명절 X까를 외치며 성업 중이었다. 우린 들어가서 생맥주와 치킨을 주문했다. 집 근처라 좀 꺼려지기는 하지만 뭐.
 
“근데 어떤 종류 좋아하세요?”
 
“술이요? 저는 맥주 좋아해요. 소주는 술이 약해서 잘…”
 
회식 때 소주 6병 드링킹하는 것을 본 우리 회사 팀원들이 봤다면 기절할 말을 나는 수줍게 날렸고, 그는 어색한 미소로 답했다.
 
“아뇨. 강아지 종류… 키우신다길래.”
 
아 X발 쪽팔려.
 
“아~ 강아지… 하하. 죄송해요. 술 시키고 나서 물어보시는 거라 술인 줄… 저는 그러니까… 푸들 좋아해요.”
 
“푸들도 여러 종류가 있잖아요? 토이 푸들이나 미니어처 푸들이나 뭐 스탠다드 푸들이나.”
 
아씨 몰라 임마. 그냥 그 라면같이 털 꼬불꼬불 임마 그거 말하는 거야 누나는.
 
“토…이 푸들이요.”
 
“아 그러시구나. “
 
그는 또 장황하게 토이푸들의 성격, 특징 그리고 키울 때의 주의점에 대해 열심히 떠들기 시작했다. 나는 미리 나온 맥주를 홀짝이면서 그의 말을 들으며 그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고개는 살짝 옆으로, 아랫입술은 조금 깨물어서 빨갛게, 난 네가 하는 말에 관심 있어라는 눈빛을 강렬하게.
 
“하하. 너무 강아지 이야기만 했네요. 죄송해요.”
 
드디어 우리 귀염둥이가 이 누나의 그윽한 분위기를 읽었는지 그 지겨운 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여자친구는 있어요?”
 
“저요? 하하. 없어요.”
 
“그래요? 의외네? 언제 헤어졌어요?”
 
“음… 작년에?”
 
“지금 몇 살인데요?”
 
“스물다섯 살이에요.”
 
나도 모르게 굿!이라고 외칠 뻔했다. 한창 탱탱한 몸인 스물다섯 살 귀염둥이가 내게 물었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서른둘 이에요.”
 
한두 살 줄일까 생각도 했는데 괜히 걸려 봐야 쪽만 팔리니 솔직하게 말했다. 귀염둥이는 귀엽게도 ‘와 어려 보이세요!’라는 립 서비스를 했다. 짜식, 서비스로 가슴 살짝 앞으로 내밀어 준다.
 
우리는 호프집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듣다 보니 연애 경험이 정말 별로 없는 녀석이긴 했다. 군대에 다녀와서 복학 준비 중이라고 했다. 은근슬쩍 고개를 숙여 가슴골을 보여주니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는 모습이 귀여워서 깨물어 버리고 싶었다. ‘으흐흐. 짜식, 넌 오늘 땡잡았어. ‘
 
테이블 위에 맥주 잔이 하나둘씩 늘어 갔다. 나는 살짝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옆으로 비튼 상태에서 그를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유혹의 의지가 만땅인 내 눈빛을 보며, 녀석은 재미있게도 말이 많아지고 있었다. 서로의 연애 경험담을 이야기하고, 각자의 이상형을 이야기했다. 내가 ‘키 크고 몸 좋은 사람이 좋더라’라고 하니까 은근히 갑빠에 힘을 주는 것이 귀엽다. ‘짜식 누나는 그런 거 다 보인단다. ‘
 
“와. 많이 마셨네요. 슬슬 일어날까요?”
 
“그래요.”
 
호프집을 나와서 집으로 가면서 나는 살짝 비틀거리는 척하며 귀염둥이의 팔을 잡았다. 오우. 땅땅한 것이 돌 같았다. 우리 예쁜이 운동 열심히 하는구나. 나는 슬쩍 그의 팔을 잡아당겨 가슴에 밀착시켰다. 그 녀석이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집… 까지 바래다 드릴게요!”
 
녀석은 떨리는 목소리로 씩씩하게 말했다. ‘아, 저런 귀여운 얼굴에 땅땅한 몸. 경험도 없다니! 저 좋은 하드웨어를 놓칠 순 없어.’ 바래다준다고 해도 같은 아파트 단지인데, 우리 귀염둥이는 엘리베이터까지 나를 바래다주었다.
 
“몇 층이에요?”
 
“14층이에요. 안 바래다줘도 되는데…”
 
“그래도 위험하잖아요.”
 
풉. 짜식 이 누나가 젤 위험해.
 
나는 그윽하게 그를 바라보며 슬쩍 몸을 기댔다. 물론 머리를 기대지 않았다. 안 감아서 정수리 냄새 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고, 눈이 마주쳤을 때 내가 살짝 눈을 감아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요 순수하던 녀석이 폭주를 해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 입술을 덮치기 시작한다. ‘오예. ‘
 
“흐음..”
 
키스를 하며 살짝 신음 섞인 교태를 부려주니 아예 나를 엘리베이터 벽에 밀치더니 본격적으로 거칠게 내 입술로 파고들었다. ‘오호라 이놈 봐라. 그래도 공부는 한 놈이네.’
 
그의 서투른 키스. 맥주 냄새. 손을 뻗으니 느껴지는 그의 탄탄한 가슴근육. 무엇보다 내 허벅지 언저리에 느껴지는 그의 단단한 하반신의 감촉에 나도 슬슬 온몸이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딩동.
 
그래도 경험 없는 순수함은 어디 가질 않는지, 엘리베이터 멈추는 소리에 그는 화들짝 놀라 내게 떨어졌다. 나는 살짝 입술을 닦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그럼 저 갈게요.”
 
뭐? 가긴 어딜 가, 짜식이
 
“그러지 말고…”
 
나는 그의 손을 살짝 잡아끌었다. 그리고 한 손에 든, 아까 마트에서 산 맥주를 들어 보였다.
 
“들어가서 한 잔 더하고 갈래요?”

 
글쓴이ㅣ186넓은어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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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zaki 2017-04-26 21:06:28
오 ㅎㅎ다음편은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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