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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동화] A monkey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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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그가 마지막으로 던진 한마디에 내가 적당한 대꾸를 찾지 못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변명은 아니지만 나는 상대방이 아무리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면전에서 비아냥거리거나 입가에 냉소를 띄우는 그런 몰인정한 성격의 소유자는 아니다. 오히려 아무리 관심 밖의 이야기라고 해도 끝까지 주의 깊게 경청하고 그에 대한 생각을 붙임성 있게 이야기하는 상냥한 성격에 속한다. 하지만 ‘지난 1년 3개월 동안 여자와 섹스를 하면서 사정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라는 발언에 제대로 된 대꾸를 하는 것은 상냥함 이전의 문제이다. 대체 저 이야기 뒤에 어떤 대꾸를 해야 사려 깊은 대답이 된 단 말인가? ‘어머 가엾게도….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라고 동정의 눈길이라도 보내줘야 하나? 아니면 ‘지루인가? 내가 잘 아는 비뇨기과 의사를 소개시켜줄까?’ 하고 의학적 조언이라도 해줘야 한단 말인가? 하물며 그와 나는 사정 이야기는커녕 어제 비디오 가게에서 빌린 에로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에도 무리가 따르는 서먹한 사이에 불과하다. 오늘까지 합해도 얼굴 마주한 것이 세 번밖에 안 되는데다가 그나마도 남자 친구를 중간에 끼고 본 터라 직접 대화를 나누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오늘만 해도 남자친구가 약속 시간을 한참 넘긴 후에 전화를 해서 급한 접대 때문에 못 갈 거 같으니 그냥 친구 놈하고 술이나 한 잔 하고 들어가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그와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는 일 따위는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그가 남자 친구의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것 그리고 성이 박 씨 라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이름과 하는 일은 처음 만났을 때 들었었지만 평범한 이름에 평범한 직업인지라 두 번째 만났을 때는 이미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 후였다. 덕분에 오늘 그를 호칭할 때 이름대신 꼬박꼬박 ‘저기요’ 라고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제가 실례되는 이야기를 한 건가요? 죄송해요. 이때까지 누구한테도 이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는데 은경씨를 보고 있자니 문득 이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어요.” 계속되는 침묵이 어색했던지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의 말 이후에도 어색한 침묵은 계속되었다. 실례되는 이야기 같으면 일단 하지 않는 것이 현대인의 기본 에티켓이요 상식이다. 하물며 내 얼굴의 어디가 1년 3개월 동안 사정을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단 말인가? 당장이라도 핸드백 속의 손거울을 꺼내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를 난처하게 만들 것 같아 테이블 위의 와인 잔을 들어 입가를 적시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친절한 성격의 소유자인 것이다. “아니에요. 그냥 의외의 이야기에 조금 당황했을 뿐이에요. 사정이라고 하면 역시 그 사정을 말하는 거겠지요? 누군가에게 부탁을 한다던가 할 때 쓰는 사정이 아니라….” “역시 제가 말을 잘못 꺼낸 거 같네요. 곤란하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그 이야기는 그만하지요. 제가 병수 고등학교 때 이야기 해드렸던가요?” 그는 급히 남자친구의 고등학교 때 이야기로 화제를 바꾸었다. 갑작스런 화제의 전환이 당혹스럽기는 했지만 일단 남자 친구의 고등학교 동창과 섹스 운운 사정 운운 이야기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다시 예의바른 미소를 다시 입가에 세기고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기 시작했다. 야간 자율 학습시간에 몰래 도색잡지를 보다가 선생님한테 들킨 일이나 수능 100일전에 술을 마시고 지하철 안에서 오바이트를 한 일 등, 그는 내가 알지 못하는 남자 친구의 고등학교 시절의 에피소드를 나열식으로 들려주었다. 상식선 안에서 생각하고 상식선 안에서 행동하는 남자 친구답게 그의 고등학교 행적 역시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 있었다. 그리고 예측 가능한 만큼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하물며 남자 친구의 동창은 아무리 좋게 평가해도 재담꾼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야기는 핵심이 아닌 곳에서 늘어졌고 중간 중간 추임새처럼 나오는 위트는 경박하였다. 심지어 그는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다는 것을 강조라도 하듯 자기 스스로가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야기의 앞과 뒤를 제대로 연결하지 못하였다. 형편없는 원석이 솜씨 없는 세공사를 만나 조잡한 보석이 되는 꼴이었다. 고개를 끄떡이거나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척 하였지만 속으로는 차라리 1년 3개월 동안 섹스하면서 한 번도 사정하지 못한 이야기를 듣는 편이 나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생각해보면 꽤 흥미로운 이야기임에는 틀림없었다. 대체 무슨 사정으로 이 남자는 사정하지 못하게 된 걸까? 성기가 갑자기 맥주 페트병만큼 커져서 여자들이 견디지 못하게 된 게 아닐까? 아니면 자위에 너무 익숙해져서 더 이상 삽입 성교로는 사정을 할 수 없게 된 건 아닐까? 호기심이 생기자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졌다. 1년 3개월 동안 사정을 못했다면 그 전에는 사정을 할 수 있었다는 건가? 그렇다면 대체 1년 3개월 전에 저 남자한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생각이 거기까지 이어지자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라는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물론 그와 나 사이의 관계가 남자의 사정에 대해 이야기하기에는 부적절한 측면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정도는 지금 홀짝이고 있는 와인이 알리바이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 길거리 리어카에서 프라다 짝퉁을 감상하는 것처럼 맥 빠지는 지금의 이야기보다는 계면쩍더라도 이 남자의 사정 이야기를 듣는 편이 훨씬 시간을 유용하게 쓰는 일이라 여겨졌다. 결국 나는 남자 친구가 수업 시간에 몰래 잠을 청했다가 코를 고는 바람에 선생님한테 들키고 말았다는 부분에서 과감하게 그의 말을 자르고 말았다. “사정을 못하게 된 이유가 뭔가요? 1년 3개월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나의 돌발적인 질문에 그는 적이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아까 당한 일의 복수를 했다는 생각에 상쾌한 기분이 밀려왔다. 누구든 갑자기 섹스라던가 사정 이야기를 꺼내면 당황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그도 앞으로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하기 전에 충분히 상대방의 상태에 주의를 기울이겠지. “저는 지루라던가 조루 혹은 발기부전과 같은 성기능 장애하고는 별다른 상관이 없는 사람이에요. 술 때문에 평소보다 늦게 사정한 적은 있어도 섹스 하면서 사정 자체를 못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죠. 그리고 지금도 정상적인 섹스라면 사정하는데 큰 무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가끔씩 자위를 할 때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사정까지 이어지거든요.” 그는 잠시 당황하기는 했지만 곧바로 중간에 멈추었던 이야기의 다음을 이어서 말하기 시작하였다. 마치 타임 워프를 하여 남자친구의 고등학교 시절을 한 순간에 건너뛴 것 같이 자연스러웠다. 나로서는 아무런 불만도 없었다. 어차피 뻔한 이야기였고 고개는 끄덕였지만 제대로 듣고 있지도 않았던 것이다. 하물며 당사자인 남자 친구가 들었다고 해도 짜증을 낼 만큼 지루하고 재미없는 이야기였다. 그 역시 이제야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는 듯 이전과는 판이하게 핵심을 짚어가며 짜임새 있게 말을 풀어갔다. 2 '저는 누군가와 깊게 사귀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딱히 마음먹은 것은 아닌데 아무리 길게 만나도 3개월을 넘긴 적이 없어요. 몇 번 만나서 이야기하고 섹스하고 하다 보면 어느새 상대방에 대한 호기심이 스윽 하고 사라져버리는 거예요. 뭐 이건 여자도 마찬가지라서 제가 상대방에게 더 이상 흥미를 못 느낄 시기가 되면 상대방 역시 저에 대한 애정이랄까 관심이 현저히 낮아져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연락이 끊기고 마는 거죠. 여태까지 꽤 많은 여자를 만나왔지만 헤어질 때 안 좋은 소리를 하거나 크게 다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상처 받는 사람도 없고 관계를 통해 남기는 것도 없는 거죠. 모래시계를 뒤집는 것처럼 한 순간에 모든 것이 원위치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리고 바로 다른 사람을 만나신 거예요?” “네. 지난 사람을 잊기 위해 억지로 누군가를 만난다던가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순서 표를 건네는 누군가와 다시 연애를 시작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어요.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누군가와 사귀고 있더라 뭐 그런 거죠.” “실례되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는데... 사실 그렇게 잘생긴 외모는 아니잖아요? 그리고 말씀을 썩 재밌게 하시는 편도 아니고…. 근데 어떻게 1번 타자가 파울 플라이로 아웃되면 2번 타자가 타석에 드는 것처럼 교차되듯이 여자들을 만나실 수 있었던 거예요? 아 죄송해요. 평소에 이런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는 편인데... 왠지 물어봐도 괜찮을 거 같아서요….” “괜찮아요. 그런 질문 많이 받으니까. 글쎄요... 이유는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특별히 여자를 꼬시기 위해 남들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던가 혹은 물질적으로 무리를 하는 편은 아니거든요. 오히려 시간관념하고 경제관념이 투철해서 필요 이상의 낭비는 삼가 하는 편이예요. 실제로 누군가를 만나면서 분수에 넘치는 소비를 한 적은 없었던 거 같아요. 비결 말씀하시는 거죠? 음 그건 아마 제가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재능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상대방의 말을 기울여 듣는 재능이요?” “네 지금에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누군가의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건 달콤한 말로 유혹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가만히 들어주는 일인 거 같아요. 그 내용이 무엇이건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부모님에 대한 증오일 수도 있고, 성공에 대한 집착일 수도 있고 혹은 다이어트에 대한 각별한 관심일 수도 있죠. 저하고 대화를 하는 여성들은 어느 사이엔가 누구에겐가 말하고 싶었지만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나씩 끄집어내는 거예요. 특별히 제가 부추기거나 강요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저 하나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적당한 대꾸를 하는 거예요. 그것 참 힘들었겠구나 라던가 앞으로는 잘되겠지 라던가…. 그렇게 상대방이 마음 깊이 감춰두고 있던 이야기를 다 끄집어내고 나면 어느새 그 여자와 나는 연인이 되어 있는 거였어요. 처음에는 많이 당황도 하고 그랬지만 어느 순간부터 순순히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죠.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재능이 있다고….” “제가 아까 평소에 하지 않던 이야기를 무심결에 한 걸 보면 아주 틀린 말 같지는 않아요. 근데 상대방의 진심을 토로하게 만드는 비결이 있다면 뭘까요? 단순히 재능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는 거 같아요.” “그건 아마 제가 근본적으로 그 사람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기 때문일 거예요. 관심이 없으니 마음의 동요가 없고, 마음의 동요가 없으니 상대방이 무슨 이야기를 해도 마음의 평온을 유지할 수 있지요. 그 평온함이 상대방을 자극해서 마음속에 숨겨놨던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게 만드는 게 아닐까요?” “흡사 블랙홀 같네요. 상대방의 마음을 한 순간에 빨아들이는….” “형태적으로는 블랙홀과 비슷하지만 저는 오히려 제가 쓰레기통 비슷하다고 느껴요. 상대방 마음에 축적되어 있는 감정의 찌꺼기들을 여과 없이 주워 담고 그 대가로 몇 개월의 연애와 섹스로 보상 받는….” “여태까지 그런 방식으로 많은 여자와 만나고 섹스를 하셨단 말씀이군요. 근데 왜 사정을 할 수 없게 되신 거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여쭤보자면, 대체 1년 3개월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그게 나타난 거예요.” “그거라뇨?” “원숭이요. 어느 날부터 제 어깨 너머로 원숭이가 나타나기 시작한 거예요.” 그는 말을 마치더니 와인 잔을 단숨에 비웠다. 그 모습을 보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것이 그의 첫 잔이었다. 다음화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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