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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일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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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어디를 가나 쉽게 벚꽃을 볼 수 있는 일본의 봄은, 봄바람 마저도 달콤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공감을 하려는 지 모르겠지만, 각 나라마다 그 특유의 냄새가 있는데 일본에서만 느껴지는 봄 냄새는 다른 나라와 사뭇 다르다. 물론 그 일본의 봄을 만끽하게 된 것은 조금 더 지나고 나서의 이야기였고, 그 당시 나는 정말 노는 것과는 담을 쌓은 채 일본어 공부에만 매진하고 있었다.
 
하림이는 지수와는 다른 방식으로 내 공부에 도움을 주었다. 읽고 쓰는 게 바보여서 그렇지, 회화 만큼은 발음이며 문법, 구사하는 단어의 종류까지 버릴 게 없을 정도의 교보재였다. 그녀가 말할 때 항상 유심히 듣기 위해 애를 썼고, 그녀가 썼던 말 중에 모르는 것은 찾아가며 공부하다 보니 새로운 표현들도 익힐 수 있게 되었다. 지수가 선의의 경쟁자로서 도움을 줬다면, 하림이는 회화 스승으로서 내 공부를 도왔다. 물론, 지가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야.”
“와?”
“커피나 한 잔 사줘.”
“오빠가 되가지고 얻어 물라 카나?”
“응.”
“와~니 존나 당당하네.”
 
하림이는 투덜 거리면서도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서 건냈다. 겉보기에는 지랄맞아 보여도 내가 늘 먹는 커피를 어떻게 알고 내가 고를 틈도 없이 지가 들고 계산을 해 버린다. 벚꽃이 떨어지는 기찻길 옆에 있는 작은 편의점 앞. 그리고 그 앞에 놓여진 재떨이 앞에서 우리는 나란히 서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너 근데. 진짜 술 좋아하냐?”
“그건 와 묻노?”
“아까 우리 조원……걔 이름이 뭐더라 아무튼 머리 긴 여자애. 걔도 물어 봤잖아. 아침마다 술 냄새 난다고.”
“몰라. 났으면 난 거지 뭐.”
 
또 얼버무리는 대답. 역시나 수상했다.
 
“대답하기 곤란하냐? 별 거 아닌 질문인데 말 돌리네. 나도 술 자리는 좋아해서 물어보는 거야.”
“친구들이랑 마신다. 와?”
“친구 필요 없다며?”
“아 쫌! 취조하나?”
“취조라니 임마. 근데 취조는 일본어로 뭐냐?”
“찾아봐라. 내가 무슨 니 사전이가.”
“아무튼 간에. 뭐 말하기 곤란하면 관둬. 술 좀 좋아할 수도 있는 거지 의외로 이상한 거에 부끄럼 타네 안 어울리게.”
 
하림이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모자를 쓰고,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운 채 나를 빤히 쳐다봤다. 털털하다 못해 사내놈 같은 그녀가, 뭔가를 계속 망설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알바해서 그런다.”
“알바? 일 끝나고 한 잔 하는 거야? 그게 뭐 대수라고. ”
“그게 아이고……에이! 모르겠다. 오빠야 니 스나크라고 아나?”
“스나크? 알지.”
 
스나크(スナック)란, 일본의 술집의 형태 중 하나였다. 뭐 주로 젊은 층 보다는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아재들이 많이 가는 편인데, 우리나라의 바(bar)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하다.
 
스나크는 보통 바 같은 다찌 테이블과, 몇 개 안되는 일반 테이블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스나크는 평수가 그리 넓지 않은 편이며, 기본적으로 노래방 기계가 있어서 손님들이 자유롭게 노래를 부른다. 스나크의 특징은 대부분 ‘마마’라고 불리는 여성이 경영을 하며, 남성 손님을 위한 가게이기 때문에 잡일을 하는 남자 직원 한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여자 종업원이 일을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뭐 퇴폐적인 곳은 아니다. 그냥 손님이 오면 옆에 앉아 주고, 이야기를 나눠 주고, 손님 테이블에서 술을 마셔서 가게 매상에 기여하는 정도의 수준이다. 물론 진상 손님의 경우 안으려고 하거나 가슴을 만지려고 하거나 하는 놈들은 있기는 하다.
 
다만, 스나크는 유학생,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단기 비자를 가지고 있는 유학생이 해서는 안되는 아르바이트로 규정이 되어 있었다. 물론 걸린다고 해서 감방에 가거나 할 일은 없지만, 출입국관리국에 그 정보가 들어가게 되면 굉장히 피곤해진다.
 
“아 너 거기서 일해?”
“어. 좀 그렇나?”
 
그제서야 그녀가 머뭇거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뭐 사실상 퇴폐업소가 아니니까 그렇게 나쁜 짓을 한 것은 아니지만, 같은 유학생이 알아서 좋을 것도 없다. 막말로 누가 앙심을 품고 찌르면 그녀는 굉장히 귀찮은 일에 휘말리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일본 유학의 철칙은 ‘쉽게 남을 믿지 말 것’ 이다.
 
“뭐가 좀 그렇냐? 그냥 알바 하는 거지 그게 뭐 대수라고. 난 또 뭔가 했네. “
“쪽팔린다 아이가.”
“뭐가 쪽팔려? 막말로 내가 여자라도 돈 많이 주면 거기서 알바하겠다. 일본에서 드는 생활비가 한 두 푼도 아니고 그럴 수도 있지.”
“아 맞나? 그리 생각하는 줄은 몰랐네. 근데 오빠 니는 그 얼굴이 여자면 스나크에 취직 못한다. “
“응 닥쳐.”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는 했지만, 나는 하림이가 아주 조금은 측은하게 느껴졌다. 우리 반의 수업시간은 아침 아홉시 30분이었다. 스나크의 일은 새벽 늦게 끝날 것이 분명했고, 그녀는 화장을 지우고 거의 바로 어학원으로 오는 셈이었다. 잠이나 잘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래도 고맙네.”
“뭐가?”
“나는 솔직히 니가 이상하게 볼 줄 알았다. 스나크 다닌다 하면.”
“거기서 일하는 애들보다 거기를 손님으로 가는 새끼들이 더 이상해 보인다.”
 
그녀는 내 말에 쿡쿡 거리며 웃었다. 뭔가 그녀에게서 처음 보는, 어린아이 같은 웃음이었다.
 
“야. 따라와봐.”
“어딜 가노? 집에 안 가나?”
“해장은 해야지.”
 
한국이었으면 국밥집가서 시원하게 드링킹 하겠는데, 일본이니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다만 우리가 있던 편의점 앞에는 일본 골목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라멘집이 하나 있었고, 나는 그녀를 데리고 그 곳으로 향했다. 밤새 술을 마시고 공부를 하러 오는 하림이가, 집에 가서 밥도 먹지 않고 바로 잘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날 라멘을 먹으면서 그녀는 이상하게 평소와 달리 조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항상 동네 부랄친구들 처럼 대화했던 우리 사이에 약간은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맵게 해 달라고 부탁한 라멘을 먹으면서, 그녀가 문득 슬쩍슬쩍 곁눈질로 나를 쳐다보았지만 나는 짐짓 모른 척을 했다.
 
“밥은 먹고 다녀라. 속 버려. “
“잘 먹고 다닌다.”
“잘 먹고 다니는데 그렇게 쪼매나냐?”
“쪼매나도 살은 다 붙어 있다 걱정마라.”
“뭘 살이 붙어 비쩍 말랐구만.”
“니가 내 몸 보기라도 했나?”
“안 봐도 비디오지 뭐.”
“뭐라노.”
 
우리는 핑퐁을 치듯 서로 툴툴 거리며 라멘을 비워나갔다. 냉수로 입가심을 하고 있을 때 그녀가 말했다.
 
“뭐……한 번 놀러 오던지 해라.”
“니네 가게에?”
“어.”
“미쳤냐. 돈이 어딨어. 존나 비싸다고 들었는데.”
“와서 술 팔아 달라는 게 아니고. 그 근처 올 일 있음 전화해라. 밥이나 묵게.”
“어딘데 거기가?”
“고쿠분쵸(?分町)“
“완전 번화가구만. 내가 갈 일이 있겠나 싶네.”
“없음 말아라.”
 
우리는 그날 그렇게 라멘을 먹고 헤어졌다. 그녀가 힘든 고백을 했다고 해서 뭐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나는 집에 가서 공부를 했고, 그 다음날에는 어학원에 나와 한자를 못 읽는 그녀를 열심히 갈궈가며 공부를 했다. 어학원의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우리 둘이 사귄다고 소문이 나 있었지만, 딱히 나서서 부정 하지도 않았다. 실제로 우리의 대화를 들은 사람들은 ‘아 사귀는 게 아닌가 보다’ 라고 생각을 바꿨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 한자 뭐라고 읽노?”
“……너는 시발 물 수(水)자도 모르냐? 니 이름 한자로 쓸 줄은 아냐?”
“와 이게 물 수 자였나? 어쩐지 낯이 익더라고 이게.”
“낯이 익는 게 아니라 그냥 지나가는 초딩 붙잡고 물어봐도 열에 아홉은 알겠다.”
“물 수자 몰라도 사는데 지장 없다 빙시야.”
“지장이 왜 없냐 븅신아 이렇게 무시를 당하는데.”
“지금이라도 알았으면 됐지 곰탱아.”
“뭐? 이 놀부 마누라 같은 새끼야.”
“됐다 담배 하나 줘봐라.”
“옜다 이 년아.”
 
뭐 이런 일이 비일비재 했으니 이제는 다른 학생들도 그러려니 했다. 사실 귀여운 외모 때문에 하림이에게 관심을 갖는 남자들이 꽤 있었는데,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나에게 대신 커피나 음료수 같은 것들을 그녀에게 전달 좀 해 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그녀는 내가 전달해 주면 이런 반응을 보였다.
 
“뭐고 이게? 씨발 찌질하게 부탁해서 전달을 하나? 걍 내 앞으로 갖고 오라 캐라.”
“내가 무슨 시벌 사랑의 비둘기야? 몰라 마시던지 버리던지 너 알아서 해.”
 
이렇듯 항상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랭귀지스쿨 생활을 하던 우리에게, 절대 잊을 수 없는 그날은 아주 쌩뚱 맞게 찾아왔다.
 
전편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 어학원의 실질적인 운영자는 한국인이었다. 물론 사업자로 되어 있는 교장 선생님은 일본인이지만 한마디로 바지나 다름없다. 우리 어학원은 속칭’김선생’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운영을 했다. 그는 사기꾼 스멜이 짙게 풍기는 인상에 굉장한 달변가였다. 일본에 오기전 한국에서 최소 보험왕 정도는 역임했을 거라고 추측이 될 정도였다. 그는 그 화려한 말빨로, 어디서 데려오는 지 한국 애들을 어학원에 입학을 시켰다. 우리 어학원이 유독 한국사람이 많았던 이유도 김선생 때문이었다.
 
사실 하림이가 우리 어학원을 택한 이유 역시 김선생이었다. 보통의 어학원은 학생이 스나크에서 일을 하는 것을 알면 강하게 제제를 가하는데, 그는 암묵적으로 그것을 용인해 주었다. ‘학생이 뭔 짓을 하든, 성적이 어떻든 돈 만 잘 내면 장땡’ 이라는 것이 그의 경영 철학이기 때문이다.
 
여하튼 우리의 김선생은 어디서 뭘 보고 왔는지, 어느 날 갑자기 어학원 학생들의 추억 만들기라는 명목으로 어학원 전체의 MT를 기획하여 그 누구의 동의도 받지 않고 각 클래스에 통보하기 시작했다. 체계적인 커리큘럼과 철저히 짜여진 계획을 중시하는 일본 선생님들이 멘붕에 빠졌음은 말할 것도 없고, 공부하기도 바쁜 나에게는 그 말은 곧 짜증으로 다가왔다. 그는 아주 당당하게도 MT도 출석과 성적에 반영한다고 하였으며, MT에서 각자 일본어 스피치를 연습하여 발표한다는 원대한 계획도 내 놓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하림이 역시 귀찮게 뭘 그딴 것을 하느냐며 툴툴 대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나와 하림이를 제외한 학생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는 점이었다. MT장소는 어학원에서 차로 20여분 거리에 있는 온천 호텔이었고, 물론 그는 MT비용 명목으로 두둑하게 학생들의 주머니를 털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지만, 김선생에게는 더더욱 공짜를 기대할 수 없다. 물론 호텔 비용이며 버스 대절 비용이 만만치는 않았겠지만, 호텔은 20명 이상이 같이 잘 수 있는 단체룸 몇 개를 빌려 학생 따로 선생 따로 성별별로 집어넣은 수준이었다.
 
나와 하림이는 툴툴 거리면서도, 끌려 다니 듯 김선생이 짠 스케쥴에 임했다. 호텔에 모여서 인원체크를 하고, 온천에 들어가자고 하면 들어가고, 밥 먹자 하면 밥 먹고, 호텔 컨퍼런스 룸에서 열린 허접한 스피치 대회에도 참석했다. 웃긴 건 귀찮다고 툴툴대며 스피치 대본 한 장 준비 안 해온 하림이가 고급반 학생들을 개 쳐바르며 1등을 했다는 점이었다. 보면 볼수록 신기한 놈이었다.
 
아홉시가 넘어가자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각각 다른 클라스의 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은 처음이었고, 다른 나라 사람들도 있지만 한국인이 압도적으로 많으니 방 안은 시끌시끌 했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가방에 술을 싸와서 꺼내 먹었고 지들끼리 부어라 마셔라 동구 밖 과수원샷~진실게임 시이작~ 이 지랄 들을 하며 유학생활의 단비 같은 MT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방 한 쪽 구석에 일본어 책을 펴고 보고 있었다. 한참을 소음 속에서 단어 외우기에 열중하고 있는데, 저 쪽에서 수면바지에 후드티 차림을 한 하림이가 맥주 한 캔을 홀짝 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와 니 독하다. 여기 까지 와서 공부하노?”
“공부란 것은 말이다. 흐름이란 게 있는 거야. 그 흐름이 끊기면……”
“시끄럽고 이거나 마셔라.”
 
그녀는 내게 맥주 한 캔을 건냈다. 지금 막 머리를 감았는지, 그녀의 짧은 머릿결은 젖어 있는 상태였다.
 
“오기 싫다더니 이런 것도 사왔냐?”
“사 오긴 뭘 사 오노? 다른 애들이 주드라. 난 일본에서 돈 주고 술 마신 적 없다.”
“아 그냐. 너 주려고 준 걸 텐데 내가 마셔도 되는 거냐?”
“뭐 어떻노? 나 줬으면 이제 내 껀데.”
 
나는 교과서와 그녀의 얼굴을 잠시 번갈아 바라보다가, 이내 그녀와 나란히 벽에 기대어 앉아 맥주를 홀짝였다. 당연히 내가 앉은 키가 컸고, 내 옆에 앉아 있는 그녀의 머릿결에서 기분 좋은 향기가 났다.
 
“알바는 쉬고 오는 거냐?”
“자율 출근이라 그래도 된다.”
“존나 좋은 직장일세.”
“맨날 출근 못한다. 술병 나서.”
“그런데도 여기서 술 잡수세요?”
“맥주다 아이가. 음료수지.”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방 안의 사람들은 점점 다들 취해 가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에게 와서 말을 걸었던 사람들도 있지만, 이내 시크한 하림이의 태도에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빠 니 안 자나?”
“자야지. 아주 신나게들 쳐 먹었구만.”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 대학교 MT를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아마 잘 알 것이다. 애초에 방 배정은 의미가 없다. 지들끼리 놀다가 취하고, 취하면 등 붙이고 자버린다. 남자 방 여자 방 따로 나뉘어져 있었고, 당연히 내가 있던 방도 남자 방 이었지만 남녀 상관없이 여기저기 취해서 아무렇게나 자고 있었다. 다들 유학생활에서 간만에 놀아서 즐거웠던 모양이다.
 
“아씨. 짜증나네. 여자방에 자리 없다.”
“그냐?”
 
자러 간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하림이가 1분만에 돌아와서 말했다. 그나마 내가 있던 (원래) 남자방에 자리가 조금 남아 있었다.
 
“걍 여기서 이불 깔고 자라.”
 
단체룸은 전체가 다다미 식이었고, 매트리스와 이불들이 있어서 깔고 자는 형식이었다. 그녀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내 옆에 매트리스를 깔고 누웠고 나도 그제서야 책을 덮고 몸을 뉘였다.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하림이를 바라보았다. 아주 조용한 정적속에 드문드문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내게 물었다.
 
“이불 더 없나?”
“왜 춥냐?”
“오빠 니는 안 춥나?”
“걍 이거 덮어라 그럼.”
“니는 어쩌고?”
“됐어. 나 열 많아서 안 추워.”
“미칬나. 아직 추워서 주디 돌아간다.”
“어 잘됐네 약간 삐뚤어져 있었는데 오토로 성형되고 좋지 뭐.”
“시끄럽고 그냥 같이 덮어라.”
 
그녀는 이불을 펼치더니 내 몸에 덮고는 그 속으로 들어갔다. 이불은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내 몸도 큰 편이고 그녀와 딱 붙어 있는 게 아니어서, 아주 어설프게 우리 둘을 덮고 있었다. 물론 몸이 작은 그녀는 이불에 쏙 들어간 형태였지만.
 
방 안은 저마다 소근소근 이야기하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지만 우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평소와는 다르게 서로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평상시에 그녀라면 ‘뭘 꼬라보노?’ 라고 퉁명스럽게 했을 것이지만, 왠일인지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이불에 들어간 채로, 나를 빤히 바라보던 그녀를 보며 나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속삭이듯 물었다.
 
“너 손 어딨는데?”
“내 손? 왜? “
 
내가 속삭이듯 물으니 그녀는 덩달아 속삭이며 대답하고는 이윽고 이불 속에 있던 손을 꺼내어 나를 보여줬다. 급히 먹은 한 캔의 맥주에 내가 이상해졌는지, 아니면 그 방의 조용한 분위기에 압도 당했는지,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무슨 짓이고 이게?”
 
그녀가 속삭이며 되물었다.
 
“몰라 나도. 그냥 갑자기 손 잡고 싶었다. “
“미친 거 아이가. 맥주 한 캔 먹고 돌았나?”
“싫음 놔라 그럼.”
“옆에 아들 있는 거 아이가?”
“자는 거 같아.”
 
하지만 결국 하림이는 손을 놓지 않았고 아무 말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나도 이불 안으로 들어갔고, 이불 속에서 한참이나 손을 잡고 있으려니 마주잡은 손 사이로 땀이 스미기 시작했고, 급기야 서로의 엄지를 조심스럽게 쓰다듬기 시작했다.
 
당연히 손을 잡는 것만으로는 지금도 설명하기 어려운 그 감정들이 채워질 리 없었다. 우리는 서로의 손목과 팔들을 남은 팔들로 쓰다듬기 시작했다. 털도 닿을까 말까한 감촉으로 서로의 피부의 잔털들을 소름 돋듯이 만져댔다.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었고, 급기야 내 손은 (무의식적으로) 늘 한 번쯤 만져보고 싶다고 느꼈던 그녀의 볼을 감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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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186넓은어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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