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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포 미술관] 전쟁과 관음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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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 허쉬만(Lynn Hershman) [America's Finest] (1993-1995) 미술관에서 총쏘기 미술관에 설치되어 있는 장총, 이 총의 정체는 린 허쉬만(Lynn Hershman)의 작품이다. [America's Finest]이라는 제목의 설치영상 작품은 외관부터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작품에 접근한 관객은 게임의 조이스틱을 다루듯 총을 가지고 놀 수 있다. 하지만 미술관에서의 총쏘기는 그리 유쾌한 체험만은 아니었을 것 같다. 오랜만에 개장한 삼천포 미술관에서 이 흥미로운 작품을 통해 전쟁과 관음증에 대해 생각해보자. 관객은 총의 가늠쇠를 통해 대상을 볼 수 있다. 이 장치에는 컴퓨터와 모니터가 연결되어 있어서 관람자의 건샷에 따라 프로그래밍된 이미지가 재생된다. 그리고 관객이 방아쇠를 당기면 카메라에 포착된 영상은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게 된다.
작품에는 40장의 이미지가 저장되어 있다. 그 이미지는 전장의 흑백사진, 참혹한 시체들, 이를 보고 절규하는 어머니의 모습과 같은 것들이다. 관객은 총신에 몸을 붙이고 방아쇠를 당기면서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는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단순한 비디오 영상의 재생이 아니라 상호작용하는(Interactive Art) 것이다. 즉 관객이 방아쇠를 당기지 않으면, 전쟁의 참혹한 영상을 보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 호기심을 느끼거나 몰두하게 된 관객은 연신 방아쇠를 당기고, 전쟁을 기록한 사진을 계속해서 보게 된다.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의 이미지를 더 보기 위해, 자신의 관음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관객은 계속해서 방아쇠를 당긴다. 총을 쏜다. 저 너머로 희생자들이 죽어간다. 그 장면을 보기 위해 방아쇠를 당기는 관객은 자신이 가해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총을 쏘는 행위로 구체화된 관음의 폭력 말이다. 총과 카메라는 대상을 감시하고 겨냥하며 포획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총부리와 카메라의 렌즈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한 생명 또는 한 장면을 얻어내는 과정에서 대상의 의지는 중요하지 않다. 총의 방아쇠와 카메라의 촬영버튼은 본질적으로 폭력적이다. 무심하게 ‘사실’을 기록하는 카메라는 시각적인 무기이며 권력인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각 권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는 총기 사용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전쟁의 이미지는 나의 유희 고백하건대 나는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는 잔혹한 이미지를 보며 “전쟁 반대” “미국 반대”와 같은 말로 분노를 배설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대개 이런 종류의 분노는 사회적 합의 속에서 일정 수준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말로 표현해도 대개는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테러를 당해도 정신 못차리는 찌질이 양키들”이라든지 “부시 원숭이 자지랑 꼬리를 묶어버려” 따위의 말도 안 되는 말들 말이다. 나는 이런 말을 지껄이며 인터넷을 포함한 각종 매체를 통해서 피에 젖은 잔혹극의 이미지를 찾아내었다. 나와 상관없는 고통을 보며 비분강개하기는 매우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타인의 고통을 보며 나의 관음증적 욕망을 충족시켜도 되는 것일까? 전쟁의 이미지는 선정적인 유흥거리로 소비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찝찝한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하워드 진은 그의 저서 [전쟁에 반대한다]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전쟁의 참사를 안다고 해서 애국적인 정치가들의 연설과 알랑거리는 언론이 전쟁 정신을 신속하게 증강시키는 데 장애물이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전쟁에 반대한다. 그동안 일으켰던 전쟁을 반성하지 않는 미 제국주의와 부시 행정부에 반대한다. 대중에게 테러리즘의 공포를 설파하고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상업주의 언론매체에 반대한다. 하지만 나는 슬픔과 공포와 분노를 배설하는 것 외에 다른 할 일을 찾아본 적이 없었다. ‘대체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내가 반대한다고 세상은 바뀌지 않아.’ 라는 식으로 시도하지도 않은 일에 좌절감부터 느끼지 않았던가. 냉소를 가장한 채 무관심을 정당화하며 전쟁의 이미지에 관음증적 쾌감을 느끼지 않았던가. 작은 실천과 제안 전쟁을 일으켜서 얻은 모든 것은, 사실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우리가 오직 전쟁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의 죽음과 살아남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은 복수의 씨앗 뿐이다. 전쟁을 막기 위한 전쟁을 계속하는 미친 짓거리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하워드 진은 이런 대답을 들려주었다. “가장 현대적인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하는 것 말고 다른 대안이 있었을까? 6년간의 전쟁 대신에, 게릴라전, 파업, 비협력 같은, 또는 지하운동, 사보타지, 주요통신 및 교통시설의 교란 같은, 또는 점점 더 대규모로 반대운동을 조직해나가는 은밀한 선전 같은, 10년이나 20년이 걸리는 저항을 상상해보려 노력할 수는 없었을까?” 미국인들이 실천한다면 더욱 효과적인 방법일 테지만 나에게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몫이 있다고 생각한다. 평생을 반전운동에 바칠 만큼 대단한 일을 하려는 건 아니다. 그저 레바논 대사관에 얼마간의 후원금을 보낸다든지, 전쟁에 찬동하고 전쟁을 부추기는 다국적기업의 제품을 사지 않는다든지 하는 일 말이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이 또 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함께하자고 권하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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