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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을 미워하는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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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델마와 루이스> ㅣ감히 말할 수 없는 '그것' 해리포터의 세계에서 볼드모트라는 존재는 공포의 끝, 그 이상이다. 별 것도 아닌 이름 넉자를 발음하는 것에도 벌벌 떨고, 그걸 맘대로 떠벌이는 몇몇 애들은 간댕이가 부어도 한참 부은 거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볼드모트에 맞먹을 정도로 입 밖에 꺼내기 무서운 말이 있다. 그 네 글자를 말하는 건, 혹시 그것에 대해 옹호하는 발언이라도 했다가는 '융단폭격'이 뭔지를 몸소 체험할 수 있다. 그것을 싫어하는 이들이 그 단어를 말할 때는 맹렬한 분노를 쏟아 붓기 위함이거나, 어리석은 여자들에게 점잖게 충고할 때뿐이다. 자, 이제 그 단어를 타이핑해 보자. 본 필자의 손구락이 덜덜거리고 식은땀이 조금 나지만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해보련다. 그것은 바로... 그렇다! 페미니즘이다. ㅣ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 페미니즘에 대해 다들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데 페미니즘을 맹렬히 반대하는 사람조차도 당최 페미니즘이 뭐하는 건지 잘 모른다. 그들에게 페미니즘은 중산층 아줌마들의 쓸데없는 설침, 혹은 성적인 매력이 떨어지는 여성들의 발악 정도의 이미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페미니즘은 '여성됨'이라는 것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한다. 여성됨이란 무엇인가? 여자와 남자의 몸이 다르다는 것, 그것이 여성됨을 결정 짓는 것인가?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유명한 연구가 하나 있다. 인류학자 마가렛 미드의 연구가 바로 그것이다. 미드는 뉴기니에 있는 세 부족에 대한 연구를 통해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우선 아라페쉬족은 남녀 모두가 여성적인(그간 사회적으로 통용되어왔던 관념상의)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온화하고 가정적인 성격을 지녔고, 무엇보다 아이를 함께 돌보면서 늘 관대하게 대했다. 반면 문더거머족은 남녀 모두가 남성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자녀 교육에 별 관심이 없고, 엄하게 다루며, 때로는 혹독한 벌을 주기도 한다. 그들은 자기를 강하게 주장하고 공격적이며 거친 성격을 지녔다. 마지막으로 첨블리 족은 여자와 남자의 역할이 범 문명권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여성은 젖을 주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이에게 거의 관심이 없었으며, 육아는 남성의 몫이었다. 여성들이 공격적이고 지배적이며 활달한 반면, 남성은 겁이 많고, 수다스럽고, 장신구 따위의 몸치장에 집착하며,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경향을 보였다. 이것이 말하는 건 전통적으로 남성성과 여성성이라고 규정됐던 성향이 선천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날 때부터 불량감자는 아니었단다.'라는 상고시대의 명언을 생각해보자. 사람을 만드는 건 약간의 유전 정보를 제외하면 '사회적인 관계'이다. 게다가 우리가 '전통적'이라고 생각하는 성별간 역할 역시, 시대에 따라서 변해왔다. 흔히 이야기되는 칠거지악이나 삼종지도가 한국에서 정착된 것은 조선 중기에서 말기 정도의 시기이다. 호주제는 일제시대 때 전호들의 권력을 무력화시키고 가부장에게 막강한 권한을 주기 위한 식민통치의 일환으로서 일본 역시 전쟁이 끝난 후에는 폐지시킨 제도이다. 이처럼 남녀의, 여남의 차이가 절대적이거나 불변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는 너무 쉽게 차별을 낳는다. 그것이 도를 넘어서 폭력으로 전개되는 상황도 비일비재하다. 강간이 '옷을 야하게 입은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성폭력의 위협에 신음하고, 저항하는 이들에게 던지는 '너는 아무 걱정 없겠구만.' 이나 '너 같은 건 줘도 안 먹는다'라는 식의 발언들. 과거 법정에서는 성폭행을 입증하기 위해 여성이 성적으로 흥분하지 않았다는 점, 쾌락을 느끼지 않았다는 점을 열심히 입증해야 했다. 남녀평등의 원리가 주창되는 요새도 여전히 해결되지 못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페미니즘이 존재한다. 차이가 차별로, 나아가 폭력으로 전환되는 메커니즘은 우리가 너무 쉽게 쓰는 말, 행동에 의해 강화된다. 비단 일부 남성의 고의적인 성차별주의에 기인하는 것만은 아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체제 자체가 남성을 기준으로 체제라는 것. 그래서 자신이 행사하는 게 권력인지, 폭력인지도 모른 채 그저 '보고 배운 대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도 여타 사회사상과 마찬가지로 여러 갈래의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남녀의 정치적인 평등을 목표로 삼기도 하고, 남성에 비해 취약한 여성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사회를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도 한다. 또한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성 차별적, 남성 중심적인 사고에 대한 전복을 꾀하기도 한다. 심지어 '여성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시각으로 세상을 재편하면 어떨까'하는 혁명적인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소위 진보라는 사람은 물론, 여성들 중에서도 페미니즘을 비판하고 반대의사를 표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 때문에 받아야 하는 부당한 처우에서 벗어나려면 당연한 것들을 재고해야 한다. 앞으로 살아가 우리의 딸들을 위해서라도 그래야 한다. ㅣ공공의 적 한국에서 페미니즘은 거의 공공의 적에 필적하는 위상을 가지고 있다. 페미니즘은 이미 나라를 망치고, 이기적이며, 멍청한 니은들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온갖 뉴스 사이트 등지에서 국가 공식지정 오징어와 땅콩이 되어 잘근잘근 씹히고 있었다. 페미니즘에 가해진 가장 조직적인 공격은 그 유명한 '군 가산점 폐지 문제'를 들 수 있다. 군필자에게 공무원 시험에서 5점의 가산점을 준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것이 군 가산점 제도였다. 그러나 수준 하향 평준화되어 아주 낮은 점수 차이로도 당락이 결정되는 시험의 성격상 여성들에게 지나치게 불리하다고 판단되어 개정을 요구하게 되었고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내림으로서 가산점이 폐지된 사건이다. 이 사건의 여파는 엄청났다. 사이버 예비군들은 여성부를 비롯해 문제를 제기한 사이트들에 대한 서버공격을 감행하였으며, 주요한 여성운동가들의 신상을 찾아내 공개하고 성인 사이트에 뿌리기도 하는 등의 '테러'를 감행했다. 페미니즘의 대한 공격이 이처럼 거국적으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성에 관한 뉴스 기사 아래 달리는 리플의 대부분이 욕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인터넷 사용자의 46%를 차지하는 여성들의 의견은 안드로메다 근처를 배회하며, 아주 가끔씩 UFO를 발견할 확률로 볼 수 있다. 특히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발언이라도 했다가는 죽을 때까지 들어도 다 못 들어 볼 욕설을 듣게 된다. 하고 싶은 말 한 마디 하는 것에 지불해야 하는 대가치고는 너무 비싸지 않은가. ㅣ미움 받는 이유 대체 페미니즘이 무슨 짓을 했기에 이러는 걸까? 페미니스트 자객에게 사부님이라도 잃었을까? 욕을 하는 남자들의 삶이 페미니스트에 의해서 파탄과 파국을 맞이했는가?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딱히 원한관계도 없는 이에게 이처럼 많은 독설들을 퍼부어 댈 수 있는 것인가? 재미 있는 건 페미니즘을 욕하는 글이 넘쳐나도 모든 글의 논리가 비교적 단순하다는 것이다. 그중 가장 주요한 논거를 보자면 군대와 이기주의차별론 이다. 먼저 군대 얘기를 해보자. 한국 남자는 군대에 가야 한다. 아버지가 하늘이랑 관련 있거나, 몸이 엄청나게 안 좋거나, 전문 기술이 없다면. 한국의 군대는 단순히 시민으로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게 아니.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고, 땀 냄새도 향내로 느껴질 법한 꽃다운 나이에, 말 그대로 '썩고 오는' 경험이다. 이에 대한 사회적 보상은 온데간데없고 삽질로 점철된 2년여의 소중한 시간을 보상 받을 곳 역시 없다. 누구라도 분노할 일이다. 다만 그 분노가 향해야 하는 곳이 왜 여성인가? 단지 군대를 가지 않는다는 것, 혹은 자신들이 나라를 지켜준 고마움을 모른다는 이유 때문에? 병역의무가 파행으로 진행되며, 그에 따른 피해를 보고 있는 것에 대해 국방부를 비롯한 병역의무를 관장하는 부서가 져야할 책임은 없는가? 대체 왜 '국방부'가 아니고 '여성부'인가? 두 번째로 페미니즘이 이기주의 혹은 역차별이라는 비판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이는 페미니즘을 여성이라는 집단만을 위한 이기주의로서 오도하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남성중심적인 사회라는 거대한 차별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투쟁이다. 여자가 다 해먹겠다는 얘기가 아니라 최대한 같은 출발점에 설수 있도록 하자는 얘기다. 하나의 예로 일에 대하여 생각해보자. 먹고 사는 데 필수적인 일, 과연 여성의 '일'은 어떤 위치에 있는가? 97년 IMF 관리 체제가 터졌을 때 농협에서 진행된 정리해고의 순위는 1위 기혼여성, 2위 미혼여성, 3위 미혼남성, 4위 기혼남성이었다고 한다. 또한 신자유주의적인 세계화의 물결에 따라 노동 시장의 유연화 등을 들먹이며, 정규직만 돼도 사회의 승리자가 된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히게 만들 정도로 하드한 삶을 살고 있는 한국이지만, 여성의 노동은 2001년 자료로 살펴봐도 70%의 여성이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었다. 여성의 노동은 사회적인 안전망 밖에 방치돼 있었다고 아니 말할 수 있는가? 또한 생리, 임신, 출산이라는 인류의 재생산 과정 역시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여성 노동의 결격 사유가 되고 있다. 경제적 조건은 여성들을 일터로 내몰지만, 그걸 모두 소화하려면 여성은 슈퍼우먼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저출산현상이 심화되는 것이 여성들의 이기주의 때문이라는 비판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전업주부가 담당하고 있는 가사 노동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마르고 닳도록 먹이고 입혔는데 “당신 뭐하는 사람이야?”라는 소리나 듣고 앉아 있어야 하는 이들의 삶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이기주의인가? 무엇보다도 이들이 달나라에서 떡방아를 찧고 있는 토끼들이 아니라 나의 어머니이자 나의 친구, 혹은 나의 딸들이다. ㅣ살고 싶다 내가 인터넷에서 남녀평등을 거론하면서 역차별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역겨움을 느끼는 것은, 마치 양극화에 대한 비판에 대해 '자기 능력'이라는 소리를 지껄이는 부유층에 대한 감정과 비슷하다. 인류의 절반인 여성의 삶에 무감각한 것을 넘어서서, 그네들의 삶의 조건을 점점 더 악화시키는 것은 결국 다 죽자는 얘기다. 페미니즘이 무조건 옳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페미니즘이라는 것에 가해지는 비판 중 많은 부분들이 그들의 몫이 아닌 것을 지키기 위한 차별적인 시각이다. 우리 같이 좀 살아보자. 여자와 남자의 관계가 왜 제로섬 게임처럼 생각되어야 하는가? '1+1=3'의 시너지 효과를 낼 가능성은 없는가? 현재 우리의 삶이 그토록 힘들고 고달프다면 한번쯤 세상을 보는 시각을 달리 해보는 게 전환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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