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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사회의 친구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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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데이앤라이트]

1. 당의 지상명령

오늘 강조하고 싶은 내용은 페미니즘에 관해서다. 영어로 feminism. 여성주의라고 번역되는 페미니즘은 우리 사회에서 사회주의보다 더 화약고와 같은 테마이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김규항 꼴 난다. 그는 2년 전 일군의 페미니스트들의 심리에 거슬리는 칼럼을 썼다가 벌집 쑤셔놓듯 각처의 페미니스트들로부터 융단 폭격을 당하여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가오가 구겨져 버렸다. 또 스리슬쩍 페미니즘에 동승하다가는 탈레반 마초들로부터 사이버 테러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이라는 화두를 회피하지 않는 것은 남녀호색정당의 당원으로서 기본 良識을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당 강령이 '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암수통일'을 목표로 할진데 남녀 상호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할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남당원들이 페미니즘을 학습하는 것은 당의 지상명령이라 하겠다.

물론 그동안 작업스킬 연마를 위해 '화성남자-금성남자' 류의 책으로서 여성의 심리 탐구에 나선 이들도 있을 것이고, '좌삼삼-우삼삼' 또는 '슬로우 슬로우 퀵퀵' 등의 방중술을 익혀 뭇여성들로부터 사랑을 받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같은 미시적 접근은 기껏해야 남북교류 정도의 차원이지, 암수통일의 원대한 전략으로서는 부족하다. 통일 문제에 있어 핵심적인 관건은 정치, 군사부문에서의 실질적인 논의와 진전이다. 그런고로 암수통일의 도정에서 본다면, 페미니즘은 남북한 간의 핵문제라 할 수 있겠다.

이에 너부리 사무총장으로부터 남당원들의 특사 자격으로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을 습득하라는 명을 받게 되었다.

 
2. 수컷의 쪽팔림

나는 페미니즘을 잘 모른다. 마르크스 페미니즘, 급진주의 페미니즘, 사회주의 페미니즘, 포스트 페미니즘 등의 이름은 들어봤지만 깊이 공부해 본 적은 없다. 기득권자로서 공부의 절박감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실천에 대한 부채감만 잔뜩 떠안게 될까봐 두려워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신문, 잡지의 칼럼란에서 맛보게 되는 페미니스트들의 주장들은 대체로 선선히 동의할 수 있는 수준들이다. 그건 민주주의 시대의 보통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 누구나도 할 수 있는 이성적 판단에 따르자면 그렇게 된다.

요컨대 페미니즘에 대한 나의 무관심은 조선일보처럼 미워하는 것에 대한 냉소의 산물이 아니다. 나의 얍삽한 계산이 깔려 있기도 하지만, '이성주의자'로서 페미니즘의 원론적 내용들은 나의 이념적 좌표인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의 원리에 충실하다보면 대부분 자연스럽게 수긍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운전 중에 충격적으로 들었던 뉴스가 있었다. 아시아-태평양지역 13국 중에 한국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꼴찌라는 소식이다. 대개 나라의 경제 수준에 따라 여성의 지위가 비례할 거라고 어설프게 짐작했던 나의 상식이 허를 찔린 셈이다.

1위는 100점 만점에 92.3점을 받은 태국이었고 그 다음은 회교도가 많이 사는 말레이시아로 86.2점을 얻었다. 꼴찌인 한국은 45.5점이라는 환멸적인 점수를 받았다. 다른 조사에서도 낯부끄러운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남녀 행정관리직. 전문기술직. 국회의석 진출 비율 등을 지수화한 남녀권한척도(GEM)상으로 우리나라는 조사대상 64개국 중 61위에 링크되었다. 관리직의 비중으로 친다면 스리랑카보다 못한 수준이다.

물론, UN에서 발표한 '남녀평등지수(GDI)' 순위에서는 한국이 146개국 중 29위에 올랐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이는 남녀 교육수준, 평균 수명, 국민 소득을 따지는 가장 기초적인 분야이지, 실질적인 지표를 보면 낯부끄러운 수준을 면할 길이 없어진다.

스위스의 세계경제포럼(WEF)이 OECD 30개국과 28개 신흥시장 국가들을 대상으로 ▲경제활동 참여도 ▲경제활동 기회 ▲정치적 권리 ▲교육적 성취도 ▲보건과 복지 등 5개 분야를 평가한 결과 한국은 평점 7점 만점에 3.18을 받아 꼴찌에서 5번째를 기록했다. 이 보고서에선 경제활동의 기회와 정치적 권리에 관한 평가항목에서 가장 낮은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여성의 문맹 인구가 66%에 이르는 인도보다도 못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한국 성인남녀의 문맹률은 거의 0이다. 프랑스, 미국보다도 높다. 여성의 경제활동 인구는 50%가 넘는다. 교육 연한도 11.7년으로 남녀간 차이가 거의 없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러나 전체 소득의 71%는 남자가 벌어들이고, 나머지 29%만이 여자가 번다. 초등학교 평교사 중 여자는 72%인데 관리직으로 올라갈수록 그 비율은 대폭 떨어져서 교감의 경우 7.5%, 교장은 고작 4.9%란다. 의회의 여성 비율은 그나마 17대에서 여성할당제 덕분에 처음으로 13%가 되었지 10년전까지만 해도 4%에 머물렀다. 행정관리직에서도 마찬가지로 5% 안팎이다. 전체 임금근로자 중 여성은 무직급 하위직에서 43%를 차지하고 있지만 과장급에는 5%, 부장급에서는 6.1%로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 남성 노동자가 100원을 받으면 여자는 65원을 받는다. 10명의 정규직 중 남자는 7명이고 나머지 3명만이 여자다. 수치화된 정치, 경제적 지위 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적인 불평등지수는 생활에서 체감되는 그대로이다.

악명 높은 봉건적 악습 때문에 명절은 여자뿐만 아니라 바가지 긁히는 남편들도 공포스러워지기는 마찬가지이다. 결혼하고서 새삼 느끼지만, 남편이 처가 가면 대접을 받는데 여자는 며느리로서 왜 하녀가 되는지 따지고 들자면 솔직히 남자로서도 할 말은 없다. 또 생활 문화에 있어서도 여자들은 언제나 남자들 뒤치다꺼리에 치이기도 하면서도 남자들로부터 냉대와 무시 그리고 성추행 등 갖가지 모욕을 당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내가 일전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10년 정도 거주한 경험이 있는 여성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이슬람 문화권의 성차별은 유명하다. 자유분방한 우리나라와 대조시킬 요량으로 사우디의 여성 차별이 한국과 비교해서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그 나라는 종교적 신념에 따라 여자를 차별할 뿐이지, 한국처럼 여자를 무시하거나 무례하게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 얘기에 난 충격을 먹었고 부끄러웠다.

불평등에 민감한 사회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배웠을 문맹률 제로 국가에서 이런 현실을 그냥 둔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질서 안 지키고, 성질 급하고, 매너별로 없고... 이런 문제가 창피한 게 아니다. 자기 집에서 천대받는 사람이 다른 곳에서 대우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외국에서 한국의 여자는 불쌍한 존재로, 남자는 미개한 족속으로 비추어질테니 어디 쪽팔려서 여행이나 하겠는가? 

우리나라 여성들의 교육과 인식 수준은 유럽 선진국에 못지 않은데 비해 지위와 처지는 후진국보다 더한 현실이다. 우리나라 페미니스트들이 매우 전투적이고 공격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이다.

이런 판국이다보니 재작년 어설프게 페미니즘을 건드렸던 김규항이 박살 난 것은 당연하다. 90년대 이후 활발해진 페미니즘을 '엘리트 여성-중산층 중심'의 부르주아 페미니즘이라고 규정하고 그 한계를 지적하고자 한 것 같은데, 여성-남성의 현실을 좀 더 심층적으로 파고들면 그런 간단한 도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내가 볼 때 우리나라의 성차별 문제는 상층 계급-하층 계급 상호간 수직 차별 정도가 아니라, 횡렬종렬, 전후좌우 대각선 가릴거 없이 전부 상호간에서 발생하고 있다. 오죽하면 남성 계급-여성 계급이라고 하겠는가.

설사 중산층 중심의 여성 운동이라 하더라도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저 여성 권한 지수가 후진국에도 못미치는 실태를 안다면 중산층-하층 따질 겨를이 없다. 어쨌든 우리 사회의 불평등 지수의 총량이 줄어드는 데 일조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런 점에서 모든 여성 운동은 사회주의 운동이다. 나에게 '혁명적 의사가 되기 위해선 먼저 혁명이 필요하다.'라는 체 게바라의 말에 오마주를 허락한다면 '명랑사회에서 살기 위해선 먼저 여성해방이 필요하다.'라고 하겠다.

 
3. 페미니스트들의 주장

이제 여성계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보도록 하자.

군가산점 폐지. 잘된 일이다. 더 나아가 여자에게 가산점을 준다고 해도 찬성이다. 고위공직자-정치인 여성할당제? 그것도 오케이다. 쫌스럽게 10-20% 할 게 아니라 50% 정도는 먹어줘야 한다. 정부 부문뿐만 아니라, 일반 기업의 채용에서도 여성 할당제를 의무적으로 부과한다고 해도 난 무조건 예쓰다. 가사일 분담은 나의 실천력과는 별개로 군말 없이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호주제 폐지는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부모성 함께 쓰기. 좀 어색하지만 아주 합당한 일이다. 내 딸은 나를 닮고 아들은 엄마 닮았다. 유전적으로 반반씩 양분하는데 왜 자식에게 내 씨만 박아 넣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사실 초딩 2학년 때인가 엄마의 성이 우리 가족과 다르다는데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다. '왜 엄마만 혼자 김씨'냐는 나의 물음에 그냥 웃기만 했던 우리 엄마가 새엄마인줄 알았던 것이다. 벌거벗은 임금님을 본 아이의 눈길로 바라본다면 부계 성만 고집하는 건 희한한 일이 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모계성을 따르자고 주장한다고 해도 '이성주의자'로서 나는 기꺼이 승복할 자세가 되어 있다. 사회생물학자 최재천 교수의 말이다. '우리 족보와 반대로 생물학적인 족보는 암컷, 즉 여성의 혈통만을 기록하며 부계혈통주의는 생물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정자는 세포핵만 난자 속으로 들여보내기 때문에 모든 인류는 엄마 난자 속에 들어있던 미토콘드리아 DNA를 물려받는다. 따라서 선후대의 관련성을 찾기 쉬운 것으로 따지자면 오히려 모계 혈통제를 인정하는 것이 오히려 타당하다는 것이다. 최초의 인류 화석인 루시의 발견도 이 미토콘트리아 DNA를 추적하여 분석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무신론자인 나로서는 과학적 진실에 반박할 길이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부모성 함께 쓰기 캠페인은 지극히 온전한 '개량주의'에 불과하다.

보다 근본적으로 '여성주의'가 사회를 운영해야 될 원리라고 주장해도 난 반박하고 싶지 않다. 전체 교도소 수감자의 93%가 남자이며, 강력범죄의 95%가 남자로부터 저질러지는 현실을 두고 본다면 세상이 여성주의로 흘러가서 나쁠 게 하나도 없다. 엊그제 시사투나잇을 보니, 공군사관학교 출신 여자 대대장 후보가 사병을 이끄는 방법이 색달랐다. 빡센 기합 주는 일보다는 칭찬을 위주로 훈련을 독려하니 사병들의 훈련 충성도가 몰라보게 좋아졌다는 것이다. 어느 소대는 대대장님에게 하루에 칭찬 다섯 번 듣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 여성이 지배하면 군대도 이처럼 귀여워질 것 같다.


4. 한국 마초들의 어거지 논리

이 때 쯤이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반사적으로 마초들이 슬슬 움직일 때가 되었다. 그들이 떠드는 소리 대부분이 쌍욕으로 시작해서 쌍욕으로 끝나는 내용들이지만, 들고 나오는 논리를 들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1) 여자들은 책임감이 별로 없고 남자 의존적이다. 그러므로 상위직에 오르지 못한다. 반면 남자가 능력도 더 있고, 힘든 일은 더 많이 하기 때문에 고임금과 승진은 당연하다.

(2)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는 도외시하는 여자에게 특혜를 주는 것은 남녀평등 이론에 오히려 맞지 않는 역차별이다. 여자는 군에 가지 않는다. 남자에게 특혜는 일종의 보상적인 측면이 강하다.


아무런 통계적 근거도 없이 기껏해야 체험에서 오는 편견들로 가득 찬 이 주장들은 의외로 힘을 발휘해 때때로 여자들에게도 먹히는 얘기들이기도 하다. 과연 그러한지 정당성 여부를 한번 따져보도록 하자.

우선 (1)번 항목. 내가 예전에 운영했던 학원에서 보면 아이들에게 인기도 좋고, 실력과 능력을 겸비했던 한 유능한 수학 강사가 결혼을 이유로 그만둬서 무척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신랑은 안정적인 직장의 대명사 공무원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여자의 '의존성'과 '무책임성'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자가 결혼을 이유로 직장을 그만두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지 않은가. 특히 중소규모의 학원은 성차별이 드믄 직종 중의 하나였는데 말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아이가 둘 달린 기혼녀 강사 두 명은 시험이 임박할 때면 새벽 늦게까지 아이들을 학습시킬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그러면서도 본인들의 자녀 돌보느라 집에서도 쉴 틈이 없었다. 시험이 임박했을 때는 하루 4시간도 못 잔 채 집안일과 학원일을 병행하였던 것이다. 그러면 수학강사의 '의존성'을 들어 두 기혼 강사들의 가치를 폄훼하는 게 옳은가? 뒤늦게 알고 보니, 그나마도 수학강사는 결혼한 지 다섯 달 만에 아들을 순산하였다. 결혼 전 임신상태였던 것이다. 국가도, 사용주인 나도 보육을 책임질 수 없는데 여자의 무책임성을 운운하는 게 가당찮은 일인 것이다.

물론 대학을 나오고서도 남자처럼 구직에 적극적이지 않거나, 결혼에 안주하려는 여자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참혹한 통계가 보여주듯 유리천장으로 가로막혀 평생 말단으로 지내야 하는 비전 없는 직장의 풍토를 놔두고서는 여자들의 무책임성만을 탓한다는 건 비열한 짓거리다. 더구나 국가도 직장도 보육을 책임져주지 않는 현실임에랴. 다른 얘기할 것 없이 우리 당 레티나 여당원이 직장에서 승진 차별 테러를 당한 예를 읽어보면 기가 막힐 뿐이다.

이렇게 얘기해줘도 여자들이 무책임하니까 승진을 못하거나 이직이 잦다고 또 순환논리로 반박하는 꼴통들이 있다. 그렇게 되면 '닭먼저 달걀먼저' 논리로 빠져버린다. 그러나 지구상에 제도 개선 없이 의식 변화로 성차별을 줄여나간 나라는 단 한 군데도 없다.

어떤 이는 남자들이 직장에서 더 열심히 그리고 오래 일한다는 근거 없는 얘기를 흩뿌리기도 한다. 그러나 통계청의 발표는 그 말을 반박한다. 남성 근로시간을 100으로 할 때 여성은 96.6시간으로 비슷하다. 500인 이상의 직군으로 보면 오히려 여자의 노동시간이 103으로 더 많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 임금의 65%밖에 받지 못한다. 이직률은 남성의 1.3배이다. 1년 이상 상용직의 경우 여자는 남자의 40% 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남자의 힘든 노동과 주부의 편한 일을 비교한다. 10년 전 주부를 대상으로 하는 아침방송 중에 기억나는 한 토막이 있다. 남편과 아내의 하루 역할 바꾸기 프로그램이었다. 아내는 남편 직장에서 일하고, 남편은 집안일을 하는 거였다. 남편은 철강일을 하던 사람. 아내가 그 직장에 가서 일을 하다가 너무 힘들어 마침내 울어버렸다. 이렇게 힘들게 일해서 돈을 벌어다주는 남편에게 앞으로 바가지 긁지 않겠다고 한다. 남편은 아이돌보기와 집안일로 하루종일 분주하고 익숙하지 못한 일에 쩔쩔 맨다. 가사 일을 끝마친 남편의 소감이다. '이렇게 힘들고 답답한 일은 처음이다. 미치는 줄 알았다. 다음부터 일찍 퇴근해서 가사일 도와야겠다.'

한국 남자들이 자랑스러워할 일이 하나 있다. 직장내 노동시간은 서유럽 복지국가보다 턱없이 높지만, 가사노동시간까지 합친 총노동시간을 비교해보면, 세계최고의 복지국가 핀란드 남성과 거의 똑같다는 사실이다. 대신 한국 맞벌이 주부의 경우 세계 최장시간을 기록한다. 핀란드 맞벌이 주부에 비해 하루 1시간 30분을 더 일한다.

(2)번 항목을 보자. 군가산점 폐지를 둘러싼, 과거 마초 테러분자들의 광분을 기억할 것이다. 여자들 권리 주장하려면 남자처럼 군대 가라. 이 한마디에 여자들이 반박했다. 그럼 니들이 애 놔라. 군대와 출산 논쟁이었다. 지구상에 이런 논쟁이 발생하는 나라는 아마 대한민국 밖에 없을 듯하다. 230개가 넘는 지구상의 나라에서 여자가 의무병인 나라는 오직 한 곳 이스라엘이 유일하다. 아랍국가에 휩싸여 매일같이 소규모 전투가 벌어지는 준전시상태에 놓여 있는 그 나라와 비교하여 남녀의 권리를 따지는 게 얼마나 쪽팔린 일인지를 모른다. 여자의 출산이 권리이지 군대처럼 의무냐는 궤변도 있다. 그런데 왜 남자들은 그 권리를 함께 향유하자고 해도 자꾸 회피하는 것일까? 밥 먹다가도 똥싼 기저귀 갈아야 하는 그 향긋한 재미를 몰라서일까? 식민지 조선의 남아들은 2차 대전 전까지만 해도 군에 면제되었다. 그러므로 마초들의 논리를 따라가면 이런 얘기도 가능하다. 조선인들 너거떨은 군에 면제시켜주고 우리 대일본제국이 지켜주니까 조선인 차별에 대해 주딩 놀리지 말 것.

여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은 평등 논리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려면 인도에 가 볼 것. 그 악명 높은 카스트제도가 남아 있는 그곳에서도 최하층 계급에게 취직과 교육에 각종 우대제도를 실시한다. 고용쿼터제를 동원하면서까지 말이다. 왜 마초들은 최근에 실시한 공기업의 지방대 출신 우대 제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는 걸까? 미국의 대학에서 소수인종 우대 정책으로 한국인이 입학하는 데에 혜택 보는 것을 왜 거부하라고 선동하지 않는 걸까?

우리나라에서 보수의 원류라 평가받는 사법부, 그 중에서도 '관습'을 헌법에 우선할 정도의 보수적인 헌법재판소에서(남자 재판관 8명, 여자 재판관 1명) 압도적 다수로 군가산점 폐지와 호주제 폐지를 판결내렸다. 따라서 이 문제들은 사실 얘깃거리조차 될 수 없을 정도로 상식적인 판단이다.

남성들이여 더 이상 이런 문제로 찌질대지 말자. 수컷의 본성에 따라 여성의 환심을 얻기 위해 작업해야 할 우리는 갈 길이 바쁘다. 그 길에 스스로 철조망을 쳐서 온몸에 아끼쟁끼 발라야 될 일을 굳이 초래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페미니즘... 여자들에게는 말하기도 지쳤을 내용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이 문제에 관한한 특유의 지구력을 발휘해야 한다. 타이슨의 강펀치는 충격적인 순간만 지나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잔펀치에 쓰러지면 골병든다. 끊임없는 여자들의 잔소리에 결국 백기 투항하는 중년의 남편들을 보라. 그 위력은 실로 위력적이다. 그러니 기회 있을 때마다 여성 동지들은 그칠 줄 모르는 잔소리 공격을 해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페미니즘의 내용 전반에 모두 수긍이 가는 나로서도 납득이 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나는 '사회주의자'로서 성차별의 해소를 강력히 주장한다. 그러나 포르노와 섹스에 적의를 나타내는 일군의 페미니스트들은 ‘자유주의자’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남로당
대략 2001년 무렵 딴지일보에서 본의 아니게(?) 잉태.출산된 남녀불꽃로동당
http://burur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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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뭐하지 2020-08-21 06:52:09
정말 좋은글이네요.
라이 2015-01-13 12:54:12
좋은 글이네요~
섹스는 잘 모르겠지만 포르노에 대한 반감은 대부분 포르노가 남성중심적, 폭력적인 프레임 안에서 제작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포르노와 에로티카를 구분해야겠죠. 단순히 보자면 둘 다 벗고 하는 걸 보여주는 것은 같습니다만,
여성학에서는 포르노와 에로티카를 분리해서 말합니다.
섬세한 맥락을 보면 포르노의 콘텐츠는 강간, 고문 등 여성혐오를 베이스에 깔고 여성을 성적 주체가 아닌 객체(거칠게 표현하면 "남성을 위한 자위기구"쯤)로서 다루고 있고, 에로티카는 서로 간의 성애를 그리고 여성 또한 남성과 같은 성적 주체로서 다루고 있습니다.
저는 몸매 좋은 남녀가 서로 물고 빨고 하는 에로티카가 좋습니다.
여성을 강간하고 고문하는 포르노 말고요... ㅎㅎ
남친이 포르노를 보는 게 싫은 것도 같은 맥락이죠.
"여자를 강간하는 걸 보면서 흥분이 된다고? 저 사람 가치관이 정상인가?" 라는 걱정이 들겠죠.
맹구식스 2015-01-12 12:30:05
조심히 다뤄야할 주제인만큼 의견이 분분할것 같네요~~^^ 글은 잘 읽었습니다만 페미니즘을 소개하는 글인줄 알았는데 옹호하는글이라서 당황했어요ㅋㅋㅋㅋ
너무 극단적일만큼 페미니즘과 마초로 분단해서 이야길전개하신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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