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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예술] 욕망과 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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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메이플솝(Robert Mapplethope, 1946-1988) [허니] 1973
> 위의 사진을 보자. 맨발로 바닥에 주저앉은 소녀는 기묘한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겁에 질린 걸까, 놀란 걸까, 카메라가 신기한 걸지도. 이 사진을 통해 소녀의 속내를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이 어린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능숙하게 언어로 표현해내지 못하리라는 점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소녀에 대해 잘 알 수 없다. 하지만 사진의 제목 '허니(honey)'가 들춰진 치맛자락 아래로 드러난 소녀의 생식기와 관계 있다는 점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소녀의 무심한 얼굴은 아무 것도 말하지 않을지라도, 터럭 한 올 없는, 드러난 음부는 무언가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달콤한 소녀는, 아마도 전혀 의도한 것이 아니겠지만, 보는 이를 자극한다. 그 자극은 성적인 만족감일 수도, 동정과 연민의 유발일 수도, 또한 기묘한 공포일 수도 있다. 우리는 사진 속 소녀의 존재 자체보다, 소녀의 이미지를 통해 느끼는 스스로의 감정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그저 귀엽기만 한 젊음 따위가 무슨 재미가 있는가! 중요한 건 그런 젊음을 재료로 또 다른 젊음, 우리 어른들과 비극적으로 얽힌 젊음을 제조해내는 일이었다.' 곰브로비치의 소설 [포르노그라피아]의 한 구절은 의미있게 들린다. 이 작품을 촬영한 로버트 메이플솝은 흑인남성의 누드로 알려진 동성애자 사진작가였다. 동성애가 에이즈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메이플솝은 에이즈로 사망했고 이로써 더욱 유명해졌다. 메이플솝이 사망한 1988년, 그의 회고전이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개최되었고 위의 작품도 순회전에 출품되었다. 이 전시는 미국사회에 음란성과 예술성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일부 지역에서 이 전시는 대성황을 이루었지만, 전시가 취소되거나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가 법정에 서기도 했다. 사실 '예술인가, 외설인가?'의 논쟁은 문화예술계에서 끊이지 않는 이슈였다. 허나 그 표현방식이 얼마나 에로티시즘을 자극하는가의 문제는 이제 그리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는 것 같다. '에로틱 아트'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계보를 엮을 수 있을 정도로 인정되는 분위기, 이제 음모나 성기 노출 정도로 미술작품이 주목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 (중학교 교사 정도의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예술가가 아니고서는 말이다.) 적어도 미술계에서 표현수위의 문제는 자유로워지는 추세라고 본다. 하지만 예술 혹은 외설에서 '주제'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주제, 예를 들면 신성모독, 동성애, 근친애, 소녀애 등을 취급하는 작품은 여전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 주제의 작품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파장이 상당할 것이라는 불안감은 쉽게 떨칠 수 없는 것이다. 에곤 실레(Egon Shiele 1890 - 1918) [팔짱을 낀 누드], [서있는 누드] 1910
> 소녀의 누드 작품으로 사회적 탄압을 받았던 예로 오스트리아의 분리파 화가 에곤 실레의 경우를 들수 있다. 실레의 소녀애적 취향은 어린 누이동생을 그린 습작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위의 작품에서 네 살 어린 여동생 게르티는 부끄러운 듯 팔짱을 끼고 제 가슴을 가리고 서있다. 오빠와 누이동생의 관계에 관해 우리가 섣부르게 추측할 수 있는 기록은 없지만, 이 시기에 에곤 실레가 그린 습작이나 드로잉에서 어린 여성에 대한 그의 독특한 애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에곤 실레(Egon Shiele 1890 - 1918) [두 소녀] 1911 이런 독특한 성적 취향으로 실레는 고초를 겪게 되었다. 그는 대도시 빈에서의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노이렝바흐 지방으로 내려와 화실을 차렸는데, 이 지역에서 그의 모델이 되어 주었던 이들은 고아이거나 가난한 집의 소녀들이었다. 보수적인 지역주민들은 에곤 실레가 소녀들을 유괴했다고 신고했고, 에곤 실레는 21일동안 유치장에 갖혀 있다가 증인이었던 소녀의 항변으로 풀려 나왔다. 하지만 결국 실레의 드로잉 한 점이 포르노그라피라는 이유로 불태워졌다. 문제는 실레가 소녀의 누드를 그렸다는 점이 아니라, 소녀의 누드를 성적인 대상으로 그렸다는 점이었다. 만약 '아름다운' 소녀가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누드에 '날개'까지 달아주었다면, 모두가 그 평화로운 이미지에 만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위의 작품 [두 소녀]에서 소녀들은 마치 창녀와 같이 권태로운 표정으로 성기를 드러내고 무기력하게 누워있다. 결국 에곤 실레는 대도시 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포르노그라피 소동으로 그는 더욱 유명해졌다. 실레는 끝까지 자신의 작품이 포르노그라피라고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의 등 뒤에는 포르노그라피 작가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최경태 개인전 [여고생-포르노그라피] 전, 보다 갤러리
> 시선을 동시대 한국으로 돌려, 스스로를 포르노그라피 제작자로 설명한 화가의 예를 들어보고자 한다. 최경태는 2001년 여고생 성매매를 주제로 한 전시를 열었으나 전시는 '음화전시 및 판매'라는 이유로 중단되었다. 이후 2년 동안의 법정논쟁 끝에 결국 작가의 작품 31점이 압수당했으며 벌금 200만원 형이 선고되었다. 최경태 (1957-) [여고생] 2001
최경태의 작품에서 여고생을 바라보는 시선은 상당히 독특하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고생들은 남성의 환상적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미소녀'가 아니다. 특별히 아름다운 구석을 찾아볼 수 없는, 너무나 평범한 여고생인 그녀들은 속살을 드러낸 채 냉소적인 또는 분노한 표정으로 화면을 직시한다. 대체 그 표정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작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그녀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분명히 알고 있다.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세상에서 팔 수 있는 것이라곤 제 몸뚱이뿐이기에, 돈을 벌기 위해 미성숙한 자신의 몸을 시장에 내놓는 것이다. 이런 언급은 민중미술 화가로서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했던 작가의 경력을 떠올리게 한다. 이 평범한, 몸을 파는, 여고생의 모습은 자본주의의 천박한 이중성을 고발한다. 영화 [사마리아]에서 김기덕 감독이 원조교제 여고생을 순수한 여인으로 이상화하는 전략을 보였다면 최경태의 시선은 냉혹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경태 [뭘봐] 2002
고발적 예술작품이 음화로 규정되기까지 사법부는 어떤 논리를 적용했는지 살펴보기 위해 사건 일지에 기록된 법원의 판결문을 인용하고자 한다. ○ 2001년 11월 15일: 정식재판 판결 '단순한 누드가 아니고, 여고생의 오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벌금 200만원, 음화 31점 압류 소각 판결. ○ 2002년 5월 3일: 항소심 판결, '피고인의 그림은 지나치게 사실적이어서 예술로 승화되지 못한 점이 인정된다' 항소를 기각한다. ○ 2002년 8월 23일: 상고기각, 음화 31점 압류소각, 벌금 200만원 최종판결. 기각이유: 형법 제 243조에 규정된 '음란한 도화'라 함은 일반 보통인의 성욕을 자극하여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하여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당해 도화의 성에 관한 노골적이고 상세한 표현의 정도와 그 수법, 도화의 구성 또는 예술성, 사상성 등에 의한 성적 자극의 완화 정도, 이들의 관점으로부터 당해 도화를 전체로 보았을 때 주로 독자의 호색적 흥미를 돋구는 것으로 인정되느냐의 여부 등을 검토, 종합하여 그 시대의 건전한 사회 통념에 비추어 판단하여야 할 것이며, 예술성과 음란성은 차원을 달리하는 관념이므로 어느 예술작품에 예술성이 있다고 하여 그 작품의 음란성이 당연히 부정되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이고, 다만 그 작품의 예술적 가치, 주제와 성적 표현의 관련성 정도 등에 따라서는 그 음란성이 완화되어 결국은 형법이 처벌대상으로 삼을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을 뿐이다. (후략) ○ 2003년 1월 3일: 작품(음화) 31점 압류 집행. 판결문에 보이는 중요한 판단 기준 중 '지나치게 사실적이어서 예술로 승화되지 못함 점'이라든지 '예술성과 음란성은 차원을 달리하는 관념'이라는 구절에서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예술작품에서 허락되는 사실성의 범주가 어디까지인가 고민하게 하는 역설로 들리기도 하며, 음란성으로 인해 예술의 영역이 훼손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엄중한 경고로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예술과 음란의 기준에 대한 답변으로는 너무나 부족하다. '사실적인 성기 묘사는 예술로 승화될 수 없다'는 사법부의 판결근거는 무엇일까?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점은 예술의 정치성과 포르노의 정치성 문제이다. [포르노는 없다 - 권력에 대한 복잡한 반감의 표현]의 저자 박종성에 따르면, 프랑스 대혁명기의 포르노는 '귀족의 타락과 왕실의 부패를 그려내고 왕비의 패륜과 부도덕을 낱낱이 고발하기 위한 민중들의 정치적인 공격'이었으며, 포르노의 '이유 있는 비꼼, 끔찍한 고발, 그리고 어쩌지 못할 표출 앞에서 위선적인 지배권력은 정당성을 잃었다.' 현대의 '풍자는 사라지고 성기만 남은 포르노그라피의 잔해'는 정치권력에 의해 조장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최경태 [뻑큐] 2002
최경태의 작품은 도발적이며 저항적이다. 성매매 문제 중에도 가장 민감하다 할 수 있는 부분인 미성년자 성매매 문제를 들이댄 것이다. 사회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비꼬았던 정치적인 포르노를 사법당국에서는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이 두려워했던 것은 작품의 선정성이나 음란성이 아니라 주제의 심각성과 도발성이었다. 과연 그들이 이 작품을 단순히 '음란한 도화'라고 생각했을까? 작가가 냉혹하게 제시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다만 '여대 화장실 몰카'와 같은 저속한 상업주의 포르노와 같은 것으로 생각했을까? 최경태는 전시 도록의 작가 서문에 여고생에게 성욕을 느끼는 성인 남성으로서 작가의 심리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이 서문은 법원의 판단에 따르면 '청소년 성매매를 옹호하는 듯한 문구'이므로 유력한 유죄의 증거로 사용되었다. 이에 대해 미술평론가 최진욱은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그렇다면 서문에 이렇게 써야 할까? '나는 미성년과의 섹스를 절대로 옹호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문제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그림을 그려서 우리 사회의 성 윤리를 새삼 질타하려 한다.' ...... 그런 걸 어찌 미학적이라 할 것인가?' 최경태 [여고생] 2001
문제는 여고생의 성을 실질적으로 구매하거나 구매하고 싶어하는 남성의 욕망에 대한 이해의 경로 자체가 차단되었다는 점이다. 소녀를 성욕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성인 남성의 시각은 비판받고 처벌당해야 마땅한 것일 수 있으나, 은폐되어야 할 것은 아니다. 법원의 판결은 지극히 체제유지적 목적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일반인들의 평균적인 수치심'이라는 모호한 근거로 이 문제의 논의 자체를 차단하는 것이 정당한가는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예술가가 사회를 공격할 수 있는 최대의 비판은 자기 비판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최경태는 여고생에 대한 성인 남성의 성욕을 가장 잘 드러낸 작가이다. 자신의 욕망을 그대로 꺼내어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여고생과 성교하기를 원하는 성인 남성의 욕망을 철저히 분석하는 것으로 원조교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알다시피 성매매 근절을 위해서는 판매자가 아닌 구매자 처벌이 훨씬 효과적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여고생 성매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여고생의 성을 소비하는 성인남성의 욕망, 그 로리타 콤플렉스의 공적 담론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 욕망의 정체를 분명히 알고 난 뒤에, 지탄이나 처벌이 가능한 것이다. 최경태 [자화상] 2001
> 소설 [로리타]의 저자 블라디미르 나보코브는 소설의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사람들이 소설을 사보기를 거부한 것은 내가 그 주제를 취급한 것 때문이 아니라, 주제 그 자체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미국출판업자들에게는 적어도 세 가지 주제는 완전히 금기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말한 성에 대한 주제 외에 다른 두 개의 주제는 흑인이 백인과 결혼해 크게 성공해서 많은 아이들과 손자손녀들을 얻게 된다는 것과, 무신론자가 행복하고 유용한 인생을 살다가 1백6살에 잠자다 고통 없이 죽는다는 것이다. 사회에서 어떤 금기를 설정하는 이유는 금기 없이 체제가 유지될 수 없을 것이라는 공포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금기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억압할 수는 없다. 사회는 불변의 거대한 덩어리가 아니라 개개인의 욕망이 꿈틀대며 움직이는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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