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서브컬처] 로망포르노 제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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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 3인 살결비교] 스틸 컷 1973년에 제작된 니카츠의 로망포르노는 모두 69작품. 1주일에 한 작품 꼴로 대량생산 됐다. 많은 감독, 스텝, 배우들이 일을 얻었다. 73년에 발표된 작품들 중, [연인들은 젖었다(?人たちは濡れた)], [요조항 하다카노 우라바리(四?半裸の裏張り)], [(비)극락홍변천(?)極?紅弁天] 은 비디오나 DVD 등으로 오늘날에도 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작품들이다. [(비)극락홍변천] 스틸 컷 / [요조한 하다카노우라바리] 스틸 컷
ㅣ연인들은 젖었다 [연인들은 젖었다] 포스터 특히 [연인들은 젖었다]는 ‘맨살’에 대한 기대 심리를 모두 버리고, 온전히 작품성만으로도 일본인들에게 사랑 받는 놀라운 작품이다. 1970년대 전반의 일본의 사회분위기를 잘 녹인 이 작품은 많은 평론가들이 ‘일본 영화 베스트 100’에 손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위대한 작품은 시대를 녹인다. 이 작품에서는 1970년대의 젊은이들의 초상을 그려낸 구마시로 감독의 탁월한 재능이 빛을 발한다. 일본의 1970년대적 분위기란 목적 없는 삶, 미래의 불안, 이상과 현실의 괴리, 빈과 부의 확연한 격차... 그런 것들이었다. 학생운동 세대들의 집단적 좌절, 무력감, 그러나 마음 속에는 아직 결착지어야할 뭔가가 남아있는 불만족스러운 시대였다. 시대를 녹인 뛰어난 청춘영화로 칭송받고 있는 [여인들은 젖었다]는 한편으로는 나카가와 리에, 에자와 토모코 등의 새로운 로망포르노 스타를 탄생시킨 기념비적 작품이기도 하다. 해변가의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한 사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데 영화관에서 일하는 이 남자는 언제나 자신을 부정하는 사내이다. 이 남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이 사내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흥미도 영화를 전개시키는 하나의 힘으로 작용한다. 이 사내는 떠났던 고향에 돌아온 것으로 짐작이 되지만 주위의 사람들이 그것을 확인하고자 할 때마다 강하게 부정한다. 자기가 맡은 일에 묵묵히 열심인 그 사내에게 영화관 주인의 아내인 요시에(에자와 토모코 분)는 마음을 준다. 그리고 그 사내가 5년 전에 고향을 떠난 카츠시와 닮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는 카츠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가 하는 행동은 모두 그의 의도와는 빗나간다. 열정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수수께끼의 사내. 하다못해 여자를 범하려 하다가도 오히려 그 여자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만다. ㅣ나카가와 리에 사내는 어느 날 해변에서 섹스를 하고 있는 구니오와 요우코를 발견하고 무덤덤하게 지켜본다. 매력이랄까 호기심이랄까 사내에게 관심을 가진 구니오와 요우코는 자신들과 함께 어울릴 것을 종용하는데, 사내는 자기와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여자 = 요우코(나카가와 리에)를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처음 그녀와 자전거에 둘이 타고 있을 때 과거를 고백한다. ‘나... 사람을 죽였어’ 그러나 다음 순간 골목에서 튀어 나온 양아치들에게 사내는 칼침을 맞는다. 자전거는 쓰러진다. 허무하게 돌아가는 자전거의 바퀴. 영화는 이렇게 끝이 난다. 이 엔딩은 너무나 일본적인 엔딩으로 기억되는데, 자전거를 연인과 함께 타는 것은 당시 젊은 연인들의 작은 소망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70년대 일본의 대표적 미녀이던 나카자와 리에의 크고 이국적인 눈매가 많은 남성 팬들을 매료시켰다. 당시의 젊은이들은 이 영화를 보았는냐 보지않았느냐로 패가 갈릴 정도였다고 한다. ㅣ장르로서의 가능성 [여선생의 사생활] 스틸 컷 [8월의 젖은 모래], [연인들은 젖었다], [코이구루이] 등은 로망포르노가 하나의 장르로 독립하게 되는 가능성을 연 선구자적 작품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또 언급하게 되는 사람들이 니시무라 쇼우고로(西村昭五郞)와 가토우 아키라(加藤彰)감독이다. 그 들의 작풍은 언제나 시대풍속을 가미하였으며 압도적인 연출력으로 관객들을 스크린에 몰두시켰다. [여선생의 사생활] 스틸 컷 그들이 묘사해낸 극중의 여성들은 옆집의 새댁, 미용실의 노처녀, 아래층의 젊은 과부, 보험 아줌마와 같은 생활의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여성들이었기에 이들이 펼쳐내는 정사 씬은 리얼리즘과 에로티시즘으로 넘쳐 났다. 뿐만 아니라 카 섹스 씬에서 남녀의 몸이 합해지는 부분을 차의 기어 등으로 교묘히 가려냄으로써 보카시등을 배제한 무수정으로 찍어내는 테크닉을 보여 주기도 했다. 그들의 작품을 본 핑크영화 감독들은 위기감에 등골이 오싹해져, 그들의 작품을 따라하느라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니시무라감독, 가토우 감독의 작품에는 지울 수 없는 ‘아우라’가 있다. 그 들의 스승에 해당하는 나카히라 코우 감독의 아우라다. 78년 고인이 된 그는 술과 수면제 과용으로 니카츠에서는 일찌감치 쫓겨났지만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조감독으로 수업했으며 한국, 홍콩에서도 작품을 찍은 아시아의 명장이었다. 대표작으로 그 이름을 오늘날까지 남기고 있는 것이 [미친과실], [노려진 남자] 등이다. 또다시 언급하게 되지만 니카츠 초기의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시라카와 카즈코(白川和子)였다. 명문 여대에 입학한 시라카와 카즈코는 입학 직후 극단에 들어가지만, 연극에 대한 관심보다도 연예계 데뷔의 발판으로 극단을 선택했다. 그녀가 들어간 극단은 「적과흑(赤と黑)」. 영화를 한편 보여주고 이어서 연극을 한편 내지 두 편을 하던 당시의 「적과흑(赤と黑)」은 극단이라기보다는 핑크영화 여배우들의 집합소 같은 곳이었다. 미야시타 쥰코 주연 [비오는 밤의 정사] 스틸 컷 그 후 시라가와 카즈코는 대학을 중퇴하고 역시 핑크영화에 몇 편 출연 한 뒤 TV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그러나 아직 시라가와 카즈코는 '왼쪽 가슴에 점이 있다'는 사실만 빼고는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는 평범한 여배우였다. TV계의 환경은 더욱 열악해 매니저라는 사람의 「○○씨와 한번 자줘. 그러면 레귤러 따낼 수 있어」,「×××씨가 호텔에서 기다리는데 한번 만나줘」라는 식의 공세에 질려 핑크 영화계에 컴백하고 만다. 돌아온 카즈코는 미친 듯이 열중했고 핑크영화계의 대표적 여배우가 되었다. 그리고 로망포르노라는 신천지에 발을 들여놓은 그녀는 비로소 제 세상을 만난 히로인이 된 것이다. 니시무라 쇼고로 감독 등은 회고한다. '시라카와는 늘 촬영현장을 압도했고, 스스로 다 알아서 했다. 그녀에게는 단지 벗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열정이 있었다' 라고. 그녀가 진정한 '로망포르노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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