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여자들에게 섹스 파트너의 숫자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물론 술에 떡이 되도록 취해 인사불성으로 하는 섹스는 횟수에서 제외해야 한다. 스스로 결정하고 열심히 임했던 섹스, 그래서 함께 했던 사람의 이름과 얼굴 정도는 기억하는 섹스만을 기록에 넣어야 한다.

간혹 과거 때문에 죄책감 시달리는 사람이 있다. 차라리 애인에게 낱낱이 실토하면 맘 편히 지낼 수 있을까, 희망을 품어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랬다가 두고두고 시달림을 당하고, 결국 만신창이가 돼 헤어진 처자들을 여럿 봤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은 애초에 묻지도 않는다. 사랑하는 그런 치기 어린 행동으로 구태여 속을 긁을 뿐이다.
 
이성과 술자리를 자주 갖다 보면 실수가 잦아진다. 맨 정신으로는 절대 엮일 것 같지 않던 삼룡이 같은 남자가 멋져 보이기도 하고, 평생 의형제를 맺기로 한 10년 지기 동창과 침대에서 함께 눈을 뜨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영화 <코요테 어글리>에 나오는 명대사가 있다. "술에 취한 다음 날 아침 눈을 떴는데 왠 거지같은 남자가 내 팔을 베고 누워있는 거야. 그 새끼를 깨우느니 차라리 팔을 잘라버리고 싶었지. 그게 바로 코요테 어글리야."

얼마 전 비슷한 일을 당한 친구 K양은, 자신의 경솔했던 음주 행각을 자책하며 한동안 두문불출, 바깥 출입을 삼가했다고 한다. 홍대 클럽에서 데낄라 샷을 몇 잔 들이킨 후 필름이 끊겼고,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처음보는 새파란 힙합보이와 모텔 방에 있더라는 것.

몽땅 벗겨져 있는 것보다 더 열받는 건 아랫도리만 벗겨져 있었다는 거다. 그녀는 극한의 수치심에 몸을 바들바들 떨며 따지지도 못하고 엉엉 울어버렸다.

새파란 힙합보이는 "니가 먼저 오자고 했잖아"라고는 연락처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이미 벌어진 일, 똥 밟았다 치고 빨리 잊는 수밖에 없다. 누울 자리를 마련해 놓지 않고 술을 퍼마신 경솔함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하지만, 자책하고 반성해야 할 사람은 분명히 그녀가 아니고 그 새끼다. 남녀를 불문하고 같이 술을 마시던 사람이 몸을 가누지 못하면 보호해 주는 게 인간의 도리가 아닌가.

고히 모셔다 주지는 못할 망정, 인사불성인 틈을 타 여자를 모텔로 유인하는 건 친구에게 술을 먹이고 빚 보증을 받아내는 것처럼 비열하다. 게다가 아랫도리만 벗기다니...
 
아무튼, 이게 한 건가 안 한 건가 애매모호한 상황이 꽤 많다. 이 문제에 대해서 남자들의 논리는 간단하다.
 
"삽입했으면 한 거고, 안 했으면 안 한 거지."

'사회생활'을 핑계로 2차를 나갔다가 부인이나 애인에게 들킨 남성들의 공통된 변명도 그거다.

"삽입은 안 했어." "술이 너무 취해서 기억이 안 나."

그들의 단순함은 우리 여자들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을 후회하며 건강을 해칠 필요는 없다.

밝고 건강한 삶을 위해 나는 나 자신과 우리 팍시녀들에게 제안한다.

술 취해서 하는 섹스는 무효다. DVD방이나 차에서 입으로만 한 섹스도 무효다. 찐한 키스와 패팅 또한 삽입하지 않았으니 무효. 설사 삽입 섹스를 했더라도 시간이 오래 지나 상대방의 얼굴이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면 그것도 횟수에 포함할 필요는 없다.

파트너 숫자를 셀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에 비하면, 우린 그래도 순정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