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레프트오버>
"어젯밤에 섹스를 하는데, 옷을 벗기도 전에 남편이 불을 끄는 거야. 평소에는 약한 조명이라도 켜 두고 했거든? 잠잘 때도 손 뻗기 귀찮다고 그냥 자던 사람이 갑자기 왜 그러는 걸까?"
친구 L은 비상사태라도 맞은 듯 호들갑을 떨었다.
"혹시 다른 여자를 상상하면서 하려고 그런 거 아닐까? 참 나 기막혀서…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요즘 부쩍 후배위만 고집하는 경향이 있더라니. 키스도 잘 안 하고, 하는 도중에 '여보!'라고 부르는 일도 없어.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돼? 혹시 바람이라도 난 거야? 이루지 못 할 사랑이라도 생긴 거야?"
매사에 쿨한 L, 유독 남편 문제에 대해서만 강한 집착을 보인다. 연애 시절 양다리 삼 다리를 걸치고서도 눈곱만큼의 죄책감도 없이 태연하던 없던 그녀다. 남자 친구가 바람을 피웠을 때도 당당히 맞바람으로 대응했던 그녀다. 그런데 결혼 이후 그녀는 변했다. 그간 잠자고 있던 소유욕이 발동한 건지, 전업주부의 고질적인 히스테리인지는 모르겠다. 예전의 그녀가 그립지만 나도 유부녀인지라 그녀에게 공감한다.
하지만 오늘 그녀의 문제 제기는 확실히 오버다.
"그럼 넌 섹스 하면서 눈 감고도 네 남편 얼굴만 떠올리니?"
"당연한 거 아니야? 뭐 가끔 딴 생각을 하거나 빨리 끝났으면 할 때는 있지. 그렇지만, 내 남편이 이성재나, 브래드 피트라고 상상하면서 섹스를 하지는 않지. 상대가 알면 얼마나 기분 나쁘겠어. 그리고 섹스는 두 사람만의 교감을 나누는 행위잖아.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서 하는 건 엄밀히 말해서 바람 피는 거랑 마찬가지 아니야?"
오우, 브라보 내 친구!
그렇다.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는 성경구절도 있다. 탐하는 마음만으로도 간음이다라는 구절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죄 많은 인간'이라는 말도 있다. 갖지 못한 것을 끝없이 원하고, 정욕과 물욕에 흔들리는 인간. 사랑의 교감을 나눠야 할 성스러운 순간에도 불을 끄고 이웃의 아내를, 남편을 탐하는 인간.
나 역시 죄 많은 인간이다. 그녀의 남편이 어젯밤 그랬듯, 형체도 못 알아볼 칠흑 같은 어둠을 만들어 놓고 남편의 몸을 다른 누군가로, 우리 침실을 다른 공간으로 변형시켜 상상의 나래를 편 적이 있다. 그것도 수 차례. 우리 남편이 조명 없는 어둠에 동의하는 것 또한 부인이 난데없이 쑥스러워한다고 생각해서는 아닐 것이다. 절정의 순간에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부르거나, 얼굴을 베개로 가리는 정도만 아니라면 다행이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별다른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녀의 주장은 단지 남편이 어젯밤 상상했을 그 누군가를 향한 질투심에서 비롯된 급조된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김연아의 피겨 동영상을 틀어놓고 넋을 놓아버린 남편에게 “당신, 가족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컴퓨터 앞에만 장시간 앉아있는 거… 이혼 사유인 거 알아? 몰라?” 바가지를 긁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여자의 소유욕은 무섭다. 함께 살고 섹스를 해도 채워지지 않는다. 눈을 감고 떠올리는 내 남자의 환상마저 다른 여자가 등장하지 않는 청정지역으로 통제하고 싶다.
섹스할 때 불을 껐다는 이유만으로 함께 산 지 5년이 넘은 부인이 이렇게 전전긍긍한다는 사실을… L의 남편분은 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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