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에 관한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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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자, 이제 댄스타임> 1 낙태. 말 그대로 배 속에 있는 태아를 강제적으로 사산하는 것이다. 임신중절이라고 하기도 하고 흔하게는 '애를 지웠다'라고 표현한다. 대한민국의 많은 미혼, 기혼 여성들이 갖은 이유로 낙태를 하고 있다. 낙태 시술 자체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마취를 하고 20분 정도면 된다. 마취가 풀리고 영양주사를 맞는데 걸리는 시간이 한 시간 정도. 길게 잡아야 두 시간 정도면 뱃속의 태아는 영원히 사라진다. 낙태 후 약을 좀 먹다 3일 정도 지났을 때 한 번 더 병원에 가서 완전한 시술이 이루어졌는지 확인하면 모든 과정은 끝이 난다. 이 과정에서 산부인과 의사들은 자궁경부암 검사 등을 하라고 권하는데 생명을 죽였다는 죄책감 혹은 찜찜함 때문에 이 검사는 대부분 하지 않는다. 현재 낙태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우리나라의 낙태율은 교통사고?사망율?성형수술 횟수와 함께 세계 1위 수준이다. 나는 아직 낙태의 경험이 없다. 섹스를 할 때마다 매번 100% 완벽하게 안전한 피임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임신을 하지 않은 건 그야말로 신의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나는 낙태에 대해 무척 잘 알고 있다. 낙태 시술을 할 친구를 따라 병원에 간 것이 다섯 번. 위의 방법으로는 도저히 낙태가 불가능할 만큼 자란 태아 때문에 낙태주사를 맞고 밤새도록 신음한 끝에 다음날 아침 병원에 가서 사산한 아이를 출산하는 방법으로 낙태한 것을 지켜본 것이 한 번이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 도는 아니겠지만 누구 못지않게 낙태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다만 마취주사를 맞고 직접 수술대 위에 올라가보지는 못했다. 나는 여기서 낙태 자체가 얼마나 나쁜지를 대해 말하려는 게 아니다. 이제부터 내가 낙태에 대해 얘기하려는 것은 그녀들이 아닌 그들에 관해서다. 2 동정녀 마리아가 아닌 이상. 자기 혼자 임신을 하고 또 낙태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여자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거기에는 분명 그들이 있다. 그들을 가해자라 부르건 씨앗을 뿌린 사람이라 부르건 혹은 애인이나 남자친구, 남편 등등으로 부르건 간에 말이다. 내가 경험했던 다섯 번의 낙태 수술 동행은 세 곳의 병원에서 이루어졌다. 나는 그때 내 지인이 아닌 낙태를 하러 온 다른 여성들을 수도 없이 많이 봤었다. 낙태를 주로 하는 병원들은 일반 진료도 함께 보긴 하지만 거의 환자들이 다 낙태시술을 원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거기서 내가 일반 환자들을 낙태시술로 착각한 경우는 제로에 가깝다. 그곳에서 가장 많이 본 광경은 친구인지 언니인지 동생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여자와 여자가 낙태를 하러 왔다는 것이다. 한 사람은 수술을 받기 위해, 또 한 사람은 보호자 자격으로 말이다. 그러니까 소위 낙태를 하도록 한 절반의 책임을 진 남자가 동행하는 장면은 거의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번 생각 해보자. 언니나 친구나 동생이 임신을 하게 만든 것도 아닐 텐데 왜 여자들은 같은 여자의 손을 잡고 낙태를 하러 갈 수 밖에 없을까? 답은 그들이 동행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같이 가기 싫다고 뻔뻔하게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갖은 핑계를 대며 가지 못할 필연적인 사연들을 나열했을 것이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낙태는 단지 수술의 측면에서 보면 비교적 간단한 수술에 속한다. 하지만 낙태수술은 생명을 구한다는 의료 본연의 목적에서 벗어나 오히려 한 생명을 없애야 하는 시술이므로 드러내놓고 발전하지 못했다. 의사들은 순전히 감으로 수술을 하며 수술 도구 또한 지난 몇 십 년간 아무런 기술적 진보를 이루지 못했다. 그러니까 이 시술은 비록 간단히 끝나기는 하지만 의사의 실수나 기타 수술 기구 등의 문제로 자궁천공, 사산된 태아의 일부가 자궁에 남아 자궁에 염증을 일으키는 등 수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즉 이 간단한 수술을 받다가 다시는 임신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3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되면 여자들은 심적 고통 이외에도 이런 물리적이고 현실적인 위험까지도 함께 떠안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녀와 함께 병원에 가기가 창피하고 무섭고 심지어 바쁘다는 이유를 댈 수 있는 것인가? 누군가는 당신과 함께 한 일의 결과를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는데 말이다. 내가 동행한 다섯 번의 임신 중절 수술은 당연하지만 모두 남자친구 혹은 애인이라는 작자들이 함께 가지 않았다. 그녀들 중 거의 대부분은 낙태 후 남자와 헤어졌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침대에서는 같이 즐겼으면서 그 결과에 대해서는 잔인할 만큼 무책임했던 그들의 태도가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여자친구가 낙태를 하는데 보였던 최악의 케이스는 연락두절이었다. 심지어 내가 그의 핸드폰으로 지금 '니 여자 친구가 수술하고 있다 인간이면 빨리 연락해라'라는 문자를 보냈는데도 묵묵부답이었다. 그는 여자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잠수를 탔고, 정말 치사스럽게 병원비마저도 여자에게 떠넘겼다. 그 때 난 개새끼가 사람새끼보다 훨씬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인간에게는 짐승을 빗대어 욕하는 것 마저 너무 과분하니까. 반대로 내가 보았던 최고의 케이스는 20대 초반의 남자였다. 막 군대를 제대한 그는 군 생활 중 이미 헤어진 여자친구로부터 임신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가난한데다 군에 묶인 몸이라 수술비를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았던 그는 아는 사람들에게 조금씩 빌려서 겨우 수술비를 마련해서 여자친구에게 건넸다. 그리고 휴가 날짜가 맞지 않아서 여자가 수술 받는 날은 함께 가주지 못했다. 그 얘기를 그는 정말 펑펑 울면서 했다. 아직도 그 여자친구에게 너무 미안하면서. 나중에 제대 후 그녀에게 다시 만나자고 했지만 그녀는 너무 힘든 일을 겪은 뒤라 이미 마음이 떠난 상태였다고 한다. 나는 그에게 너무 죄책감 가지지 말고 그만 잊으라고 말해줬다. 그는 이미 충분하게 미안해했고 자기 상황에서는 최선을 다해 도왔으니까. 4 여자들은 임신을 하면 우선 낳아야 말아야 하는가를 가장 먼저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그 고민의 해답은 남자가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미혼모가 되어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그녀에게나 아이에게나 너무 힘든 일이다. 따라서 아이를 낳으려면 우선 남자친구의 동의 및 결혼 약속이라는 절대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만약 본인 스스로도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는 결정을 이미 내린 후라고 하더라도 남자로부터 애를 지우자는 식의 말을 들으면 상처를 받게 된다. 말이나마 낳자고, 혹은 낳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잠시라도 고민하는 정도의 성의라도 보이길 바라는 것이다. 막말로 처녀가 임신을 한 게 자랑은 아니다. 그런 일은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이미 일이 벌어진 마당에 그게 지 몸 간수 하나 알아서 하지 못한 여자만의 잘못인 건가? 그래서 울며불며 친구에게 혹은 지인에게 고백하고 같이 병원에 가달라는 말을 하며 차가운 수술대 위에 누워야 마땅한 것인가? 생명을 없애는 주제에 참 말도 많다라고 하는 당신. 당신은 여자인가? 남자인가? 처음부터 그런 상황에 처하지 않는 게 제일 좋겠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라면 우리 제발 같이 좀 책임지자. 아이를 낳는 것이건 낙태건 간에 함께 해야 하는 일이다. 수술은 어차피 여자 혼자 받아야 되고 낙태는 나쁜 일이니까 남성인 당신은 쏙 빠져도 정말 좋은 일인가? 당신의 여자가 낙태 수술을 받는 동안 당신은 뭘 했는가. 술을 퍼 마시며 인생이 좆같다고 생각했는가? 아니면 다 잊기 위해 친구들과 만나서 대가리에 총알이 박힌 듯 신나게 놀았는가. 나와 섹스를 했고, 그 결과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된 여자. 그리고 세상에 빛도 못 보고 사라져야 할 조그마한 생명체에게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딱 한가지다. 이유 불문하고 같이 가줘라. 그리고 그 아픔도, 아픔의 극복도 함께 해라. 쪽팔린다고? 그걸 외면하는 당신의 쪽은 쪽도 아니니 이제 정신들 좀 차리시길 바란다. 분명한 건 당신에게도 절반의 책임이 있다는 사실이다. 단지 당신들이 그 엄연한 진실을 외면해왔을 뿐이다. 글쓴이ㅣ남로당 칼럼니스트 블루버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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