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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람을 피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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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람 피기 좋은 날> 스물한 살 때 첫경험을 한 후 나는 줄곧 섹스 파트너가 있었다. 대부분은 '애인'이라는 공식적인 연인 관계였지만 그게 아닌 적도 꽤 있었다. 종종 애인 몰래 섹스를 했다. 상대 남자에게도 애인이 있었다. 우리는 다 알면서 만나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섹스를 했다. 변명을 할 생각은 없다. 그건 분명 도덕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문제가 될 만한 일이니 말이다. 다만 최소한의 예의는 지켰다. 바로 상대방이 알지 못하게 하는 것. 뻔뻔스럽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배신은 할 망정 그 사실을 알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들켰을 때 분란이 두려워서라기보다 상대를 아프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크다. 모르는 게 더 나은 일은 모르는 게 낫다. 하지만 애인과의 섹스에 만족하지 못해 바람을 피운 건 아니었다. 섹스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핵심은 '감정의 유희'다. 나는 좀 가볍고 싶었다. 서로 뭘 하는지 늘 전화로 보고하고, 챙겨주고, 아껴주는 사이에서의 섹스는 무겁다. 그런 섹스는 말하자면 '사랑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나는 그런 섹스가 답답했다. 섹스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니 섹스 자체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남자친구들은 내가 오르가즘을 느끼는지에 너무 신경을 썼다. 백 번을 하면 백 번 다 오르가즘을 느끼길 원했던 그들은 내가 오르가즘을 느낄 때의 행동을 상세히 기억했다. 역설적으로 나는 오르가즘을 연기해야하만 했었다. 남자친구들과도 처음 몇 번은 섹스가 짜릿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건 너무나 당연해지고 또 익숙해진다. 섹스를 하기 전의 행동들, 눈빛, 말투. 그러니까 나는 그들의 숨소리 만으로도 곧 섹스를 하겠구나 하는 걸 알 수가 있었다. 그러면 몸은 자동적으로 반응을 하고 또 당연한 듯 섹스를 했다. 바람을 피울 때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내가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에 집착하지 않았다. 돌발적으로 찾아온, 극도의 흥분 상태에서의 섹스는 애인이 있다는 사실마저 잊게 해준다. 당연히 훨씬 더 자극적이다. 그들이 애인보다 몸이 근사하다던가 테크닉이 뛰어나서 그런 게 아니다. 그들은 내게 바라는 게 없다. 그 순간에 집중해 섹스를 즐길 뿐이다. 그런 담백함이 그들을 찾게 만든다. 언제나 그렇듯 관계는 사람보다는 상황에 좌우된다. 다만 어디까지나 일회성 만남일 때의 얘기다. 뭔가 바라는 게 생기기 시작하면, 뭔가 선택의 시간이 다가온다. 경험상 그건 별로 좋은 결말로 이어지지 못했다. 같은 남자라도 섹스 파트너일 때와 애인일 때는 천지차이니까. 게다가 그들은 자신과 그런 식으로 사귀었기 때문에 행여 내가 다른 남자와 자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한다. 가끔은 나도 한 남자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건 아닌가 생각한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따분한 일이다. 결혼한 것도 아닌데 남자친구를 마치 남편처럼 대하는 여자들을 보면 좀 안 됐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남자는 여자들보다 훨씬 더 많은 섹스 기회를 가지며 또 그 기회를 흘려보내지 않는다. 남자도 즐기니까 우리도 똑같이 즐겨야 한다는 게 아니다. 다만 스스로를 지나치게 통제하고 사는 게 과연 행복한 삶인가를 묻는 것이다. 바람을 피우면서 죄책감을 느끼자면 끝이 없다. 섹스 한 번에 그렇게 얽매일 필요가 있을까? 애인이 아닌 남자와 한 번 했다고 해서 세상이 뒤집어지지는 않는다. 익숙하고 따뜻하고 편안한 섹스, 그것도 나름대로 좋다. 그리고 숨이 가빠지고 머릿속이 하얘지는 섹스도 분명 다른 쾌락을 준다. 나는 아직 그 즐거움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글쓴이ㅣ남로당 칼럼니스트 블루버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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