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신음 소리'를 내는가
0
|
|||||||||||||||||||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얼마 전 나는 새로운 일 때문에 잠시 일본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3일 정도를 예상하고 갔으나 생각보다 일이 길어져서 일주일 정도 도쿄에 머물렀다. 빠듯한 경비 때문에 우리 일행이 묶은 숙소는 매우 좁고 남루했는데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방음 장치가 꽝이라는 것이었다. 옆방에서 샤워하면 그 물소리마저 다 들릴 지경이니 늦은 시간에 전화 통화라도 할라치면 숫제 속삭여야 할 정도였다. 한국으로 치자면 거의 고시원 수준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그 일주일 동안 나는 최대한 옆방에 묶고 있는 일행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거짓말 좀 보태자면 발뒤꿈치마저 들고 생활을 했다. 그러나 문제는 같이 출장을 간 일행 중에서 나의 섹스파트너가 있다는 것이었다. 일로 엮인 사람과는 연애하지 않는 게 내 철칙이지만 이번 경우에 그는 뒤늦게 합류를 하게 되어서 나는 그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것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더랬다. 그가 사람들에게 자기소개하고 같이 술을 마신 날 저녁. 나는 반가운 마음보다는 혹시나 그와 내 사이를 사람들이 의심할까 봐 조마조마했었다. 하나 지나친 긴장 탓이었는지 그날따라 나는 무척 많은 양의 술을 마셨고 결국 그날 밤 내 방문을 두드리는 그를 외면하지 못했다. 사람들에게 어떤 장소에서 섹스를 하고 싶냐는. 일종의 장소에 관한 섹스 판타지에 대해 질문했을 때 의외로 많은 이들이 공공장소를 꼽는다고 한다. 공중전화 부스부터 CD기가 설치된 현금 인출소, 야간 우등고속버스 등등. 실제로 그런 곳에서 섹스를 하는 과감한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공공장소들이 섹스를 하고 싶은 장소로 등장을 하는 것은 들킬까봐 조마조마한 상황 자체가 에로틱함을 한층 가중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내 방으로 들어온 그는 거칠게 나를 밀어붙였다. 머리는 방음도 안 되는 이 방에서 그와 섹스를 나누다가는 온 스텝들에게 다 들킬 거란 생각을 했지만, 몸은 정반대였다. 안된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내 몸은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도 이 숙소가 방음이 잘 안 된다는 사실을 아까 술자리에서 익히 들었던지라 아주 작게 신음 소리를 내며 내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는 절정의 순간이 되자 자신의 손으로 내 입을 막았다. 우리는 소리 없이 클라이맥스로 향했는데 표정만 보자면 꼭 어딘가 몸이 불편한 사람들 같았다. 섹스가 끝나고 그를 내보내고 혼자 침대에 누웠는데 잠이 오질 않았다. 평소 같으면 격렬한 섹스를 하고 난 뒷면 곧바로 잠에 빠져들곤 했는데 그날은 전혀 그렇지가 못했다. 뭔가 부족한 것 같고 뭔가 완성되지 못한 느낌이었다. 그 이후로도 그는 두 번 정도 더 내 방에 들렀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는 절정의 순간에 내 입을 막았다. 나는 여태까지 남자들이 나를 애무할 때 내는 신음 소리는 오로지 남자를 위한 서비스 내지는 격려 차원에서의 응원가 같은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건 나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가 아무리 내 가슴을 빨고 키스를 해도 나는 좀처럼 젖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게 들킬까 봐 너무 걱정되어서 그런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건 내 신음 소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신음 소리는 상대방을 자극하는 동시에 나 자신도 자극했던 것이었으나 나는 그때까지 그걸 몰랐던 것이었다. 방음 장치가 잘 되어있는 한국의 내 오피스텔에서 그와 섹스를 할 때는 전혀 그렇지 않았었다. 나는 언제나 그가 삽입하기 전에 충분하게 젖곤 했다. 그러나 그 방음장치가 엉망인 일본 숙소에서의 섹스는 전부 윤활제가 필요할 정도로 나는 건조했었다. 그리고 절정에 다다라도 평소처럼 폭발하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전의 경험들이 불꽃 놀이었다면 신음 소리 없이 하는 섹스는 폭죽에 불과했다랄까? 아무튼, 전혀 흥이 나지 않는 기계적인 섹스였다. 그도 마찬가지였는지 마지막 섹스를 하던 날 밤에는 나중에 마음껏 소리를 지를 수 있을 때 다시 제대로 된 섹스를 하자고 했다. 흔히 남자들은 여자가 내는 신음 소리가 전부 가짜라고 생각을 한다. 뭐 어느 정도는 사실이기도 하다. 오르가즘에 이르러서 어쩔 수 없이 내는 신음 소리 이외에는 전부 가짜라기보다는 뭐랄까 애를 써서 내는 소리이다. 하지만 그게 완전한 가짜는 아니다. 왜냐면 그 소리 없이는 남자는 물론이고 여자 자신도 섹스할 맛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스무 살 때는 그랬다. 서른쯤이 되면 섹스를 너무 많이 해서 재미는 없겠지만 그래도 섹스에 대해 모르는 것 없는 달인이 되어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막상 서른이 되어서 느끼는 것은 그래도 아직 섹스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게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섹스는 꼭 책에 나와 있는 지식만이 전부가 아니다. 그건 경험을 통해서 하나하나 쌓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비슷비슷한 상대들과 별다를 바 없는 섹스만 한다면 평생 모르고 지날 것들도 많다. 이를테면 소리 없는 섹스의 경우가 그렇다. 만약 내가 일본 출장을 가서 고요 속의 섹스를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죽을 때까지 오르가즘 때 이외의 내 신음 소리는 그저 남자를 위한 것으로 생각하며 살았을 테니 말이다. 글쓴이ㅣ남로당 칼럼니스트 블루버닝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