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아이템 | ||||||||||||||||
|
세상에 '쿨'한 사람이 어딨니?
0
|
|||||||||||||||||||
영화 <성난 변호사> 1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쿨'하다는 것이 마치 온 국민이 지향해야 할 국민 대표 정서가 돼 버렸다. 일은 물론 사랑을 할 때도 온통 쿨해질 것을 강요하는 사람들 뿐이다. 시작도 쿨 하게, 헤어질 때도 쿨하게. 쿨의 반대인 핫은 오직 패션 분야에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나마 그 핫 마저도 좀 거시기한지 이제 요즘 뜨는 백은 핫한 백이 아닌 잇 백(It Bag) 이라고 한다. 영어로 써도 핫은 촌스러운가보다. 누군가가 ‘정 때문에 못 헤어지겠어’라는 말을 한다면 그는 쿨한 인간들 사이에 아예 매장을 당하기로 작정한 인간이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감히 정을 운운하는가. 정은 촌스럽고 끈적하며 너저분한 감정의 찌꺼기이다. 이 시대에서는 이미 폐기처분된 지 오래다. 만약 남아있다 하더라도 분리수거조차 안 된다. 조금이나마 정에 호소를 하면 ‘쿨 하지 못하게 왜 이러니?’ 소리를 들어야 하는데 그 말은 질척거리지 좀 말란 말과 동음이의어다. 근데 말이다. 대체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쿨했는가? 우리 민족 하면 정 아니었나? 오죽하면 미운 정까지 얘기할 정도로. 하지만 이런 국민 정서를 하루 아침에 바꿀 수 있는 쿨의 유행은 그야말로 가공할만한 위력을 가졌다. 여자들은 쿨해 보이려고 자신의 감정과 마음을 숨기는데 점점 도가 트여 가고 남자들은 쿨가이 가 되기 위해 있지도 않은 냉정함을 가장한다. 2 얼마 전 정말 '니미' 소리가 절로 나오는 같은 DVD한 편을 봤다. 제목은 <어깨너머의 연인>이다. 나름 삼십 대 초반의 싱글 여성과 기혼 여성의 최신 라이프 스타일을 다룬 영화라 광고하기에 싱글하면 또 나 아닌가 싶어 그 DVD를 무려 대여점이 아닌 구입까지 해서 봤다. 그런데 전혀 기대밖이었다. 한마디로 거기 나오는 두 여자는 쿨에 미친년들 같았다. 전문직 싱글 여성으로 나오는 이미연의 캐릭터는 유부남을 사귀게 되는데 좋아 죽겠으면서도 말한다. ‘우리 그만 헤어지죠. 쿨하게.’ 참으로 난감한 대사가 아닐 수 없었다. 아무리 쿨을 지향하지만 저렇게 지 입으로 쿨이라는 단어를 서슴없이 뱉을 수 있는 그 뇌 구조가 심히 궁금해졌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쿨하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유부남을 만나는 것 자체가 쿨 함이라고 우길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남의 떡을 집적거리는 유부남 사귀기가 어째서 쿨이란 말인가! 차갑고 냉정하면 남의 것도 빼앗을 수 있고 남이 먹다 버린 것도 주워 먹을 수 있는 건가? 결국 이미연은 그와 쿨하게 헤어지지 못한다. 지 입으로 쿨 하게 헤어지자고 했으면서도 끊임없이 그의 전화를 기다리고, 한국에 엄마 찾으러 온 어린 남자아이를 잡아먹는 것으로 자신의 쿨함을 확인받으려고 한다. 이태란이 연기한 캐릭터는 더 가관이다. 더 가관이다. 그녀는 남들이 전혀 집적대지 않아 안전할 것 같은 남자(하지만 재력은 있는)와 그야말로 쿨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유부녀지만 백화점 문화센터도 다니고 헬스클럽에서 몸매 관리도 하고 쇼핑도 마음껏 한다. (이런 게 유부녀가 나아가야 할 참된 모습이라면 나는 차라리 비루한 싱글로 남겠다만) 그런데 어느 날 남편에게 겁나 어린 연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는 그제야 남편이 남자로 보인다며 헛소리를 지껄이다가 결국 그 어린 연인을 만나는 촌스러운 짓을 한다. 그렇지만 그녀 역시 이미연 못잖게 쿨함에 목숨 건지라 그 어린 연인에게 머리채를 잡거나 물 잔을 쳐 뿌리는 짓은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그 어린 여자애가 ‘제가 따라다니는 게 아니라 사장님이 하도 만나달라고 해서 만나는 거거든요’하는 한마디에 와르르 무너진다. 자기 남편에게 여자가 들러붙어서 피우는 바람은 그를 매력적으로 만들지만 그 남자가 능동적으로 어린 연인에게 접근했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인다. 결국 자신이 집을 나간 사이 남편이 그 어린 것을 집으로 초대해 밥을 해다 바치는 것을 보고 그만 이혼을 선언한다. 밥이야말로 얼마나 정이라는 단어와 밀접해 있는가. 아들에게 고봉밥을 퍼 주는 어머니. 다이어트 한다고 아무리 지랄해도 딸의 도시락에 밥을 꼭꼭 퍼 주는 어머니. 오죽하면 우리의 인사가 ‘식사하셨어요’겠는가. 그런 정이 뚝 떨어지는 계기로 남편과 이혼하는 주제에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은 쿨한 여자라는 단어를 반복한다. 3 내가 보기에 이 땅에서의 쿨은 진정한 의미의 쿨이라기보다는 자기 감정을 숨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속으로 얼마나 정이 애끓건 말건 겉으로는 내뱉어야 한다. 쿨하게 헤어지죠. 쿨하게 그만 만나죠. 이 빌어먹을 쿨은 사람이 사람과 만나면서 쌓이는 자연스러운 정을 마치 '무찌르자 공산당'처럼 대한다. 물론 <어깨너머의 연인>은 영화 관계자와 관객들에게 철저하게 외면을 당했다. 그런 영화 한 편을 가지고 쿨에 대해 평가절하를 한다면 비약이 심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의 쿨은 우리가 일상에서 말하는 쿨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진정한 의미의 쿨가이 쿨걸을 단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다. 그들이 입술 부끄럽게 외치는 쿨이라는 게 단지 있는 감정 없는 척 하기라면 차라리 그건 내숭이라는 말로 불려야 마땅하다. (내숭은 원래 내흉이다. 내면의 마음을 숨긴다는 뜻이다.) 정말로 쿨해지고 싶다면 우선 똥인지 된장인지부터 잘 구분해야 한다. 아무리 유부남이 자신의 와이프와는 남보다 못한 사이라고 말한다 하더라도 그는 정리가 안 된 남의 남자이다. 그런 남의 남자와 남의 눈을 피해가며 만나는 게 무슨 쿨인가. 그건 비겁하면 비겁했지 절대 쿨은 아니다. 링 위에서가 아닌 링 밖에서의 치졸한 싸움이다. 정말로 그를 사랑한다면 ‘마누라랑 정리하고 와 그럼 얼마든지 받아 줄 테니’ 해야지 어째서 ‘나 이혼할 거야 진짜야’ 라는 말만 믿고 그를 안을 수 있는가. 화를 내려면 나와 결혼 생활을 유지하면서 몰래 젊은 애인을 두는 남편에게 화를 내야지, 왜 어린 것을 만나서 그것이 자기보다 나은 건 피부밖에 없다는 둥, 어린 것 빼고는 촌스러워서 어디 한 군데 눈갈 곳이 없다는 둥 하는가. 좀 솔직해질 수는 없는 건가?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나 호텔까지 들락거린다는데 거기에 질투하지 않고 눈 뒤집지 않을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애인이 바람을 피워도 거시기를 확 잘라 버리고 싶은 판국에 남편이라면 당연히 너 죽고 나 죽자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밍숭한 사이라면 지 말대로 쿨하게 이혼을 해 버리면 그만이다. 4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어디서 온지도 모르고 왜 그러는지도 모르는 이 덮어놓고 쿨을 즉각 폐기 처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사랑을 하게 되면 쿨함이 아닌 정이 생겨야 당연한 거다. 정은 내 그릇에서 그가 좋아하는 고기를 기꺼이 꺼내어 건넬 수 있고, 지나가다 분위기 좋은 카페를 발견하면 다음 번에는 꼭 그녀를 데리고 한번 와 봐야지 하고 마음먹는 것이다. 정이 없는 사랑. 그 삭막함 속에 대체 우리가 무얼 기대할 수 있겠는가. 언제든지 가볍게 만나고 깃털처럼 날아 가버릴 수 있는 쿨한 사랑. 그게 사랑이 맞기는 맞는 건가? 사랑을 하고 싶고 연애를 하고 싶다면 저 빌어먹을 쿨의 올가미에서 벗어나야 한다.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고 마음으로 사랑하고 헤어질 때도 마음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랑은 사랑이라 불릴 때 한 톨의 쪽팔림도 없을 것이다. 글쓴이ㅣ남로당 칼럼니스트 블루버닝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