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끝났음을 예감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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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달콤한 외도> 나는 아직 기억한다. 이 남자가 처음 나와 섹스를 할 때. 얼마나 조심스럽고 섬세했는지를. 어떤 특별한 비법도 그렇다고 비명을 마구 지르게 만드는 테크닉을 구사하지도 않았지만, 그는 내가 아는 한 가장 내 몸을 사랑스럽게 애무하는 남자였다. 그 순간만큼은 마치 내가 여왕이라도 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그 어떤 남자와 섹스할 때보다도 만족스러운 섹스를 했다. 섹스가 끝난 후에도 그는 목덜미와 귀에 끊임없이 키스를 했고 마지막에는 좀 지나치게 로맨티시스트처럼 보이긴 했지만 이마에 뽀뽀를 하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었었다. 그래. 그는 그런 남자였다.
내가 그에게 느낀 것은 적어도 그는 섹스를 위한 섹스를 하는 남자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남녀가 한방에 같이 누워서 할 수 있는 게 섹스밖에 더 있겠냐는 듯한 섹스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섹스를 하지 않는 밤에도 나는 전혀 불안하지 않았었다. 왜냐면 우린 섹스 이외에도 아주 많은 걸 서로 나누는 사이였으니까. 하지만 세상에 영원한 건 없었다. 우리가 멀어진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아마도 그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가까워졌다고 느낄 테니까. 그렇지만 나는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우리에게 시간과 섹스의 횟수는 쌓였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더 가까워진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걸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내게 필요한 말들만 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어떻게든 나와 길게 얘기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그가 ‘내일 얘기하면 안 될까?’ 혹은 ‘나 오늘 정말 피곤했어’ 라며 선수를 쳤다. 현저하게 줄어드는 전화 횟수 속에서 우린 분명한 용건이 없이는 더는 전화를 하지 않게 되었다. 별 할 말이 없어도 아침 출근길마다 전화했던 그. 그리고 전날 원고 마감으로 밤을 새워서 막 잠들었음에도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던 나는 더는 없었다. 어제 우리는 아주 오랜만에 섹스를 했다. 함께 누워서 보던 TV에서 하필이면 야한 영화를 했고 다른 곳을 보자는 내 의견은 묵살되었다. 그리고 그가 나를 원했다. 내가 아닌. 영화 속의 주인공을 보고 흥분한 그를 받아들이는 내 기분은 참 이상했다. 좀처럼 흥분이 되지 않았지만 나는 애써 생각했다. 섹스도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는 한 방법이라고. 절대 이 섹스는 그저 동물적인 본능에서만 이끌려서 하는 것과는 뭐가 달라도 다를 것이라고. 그렇지만 그는 더는 내 웃옷을 벗기지 않았다. 웃옷을 벗지 않아도 가능한 섹스. 그건 삽입과 사정만이 존재하는 섹스였다. 마치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듯 간단하게 섹스를 마친 그는 이내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내 기억 속의 그는 섹스 후 샤워를 하고 잠옷을 입고 난 후에 잤지만 현재의 그는 대충 티슈로 닦은 다음 그 티슈마저 방바닥에 그냥 떨어뜨렸다. 가릴 것도 없고 부끄러울 것도 없고 조심할 필요도 없는 사이. 그런 걸 아주 가까운 사이라 부르는 걸까? 가끔 남자들은 말한다. 여자들은 너무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건다고. 그렇지만 그들은 알지 못한다. 그 사소함이 모이면 결국은 큰 의미가 된다는 것을. 사소한 징조들을 무시할 만큼 우리는 둔감하지 않다. 익숙함과 무뎌짐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비록 섹스할 때는 옷을 다 벗는다고 하더라도 늘 벗은 모습을 서로에게 보여주어 식상해지지 않기를 바란다면 너무 욕심이 큰 걸까? 할 거 못할 거 다 한 사이라 하더라도 가리고 싶고 감추고 싶은 이유는 그래도 신비함이 남아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는 섹스 중에 말했다. 쌀 것 같으니까 빨리 느끼라고. 사정이 임박한 그 와중에도 내 오르가즘을 챙겨주는 그를 나는 배려심 깊은 남자로 생각해야 했던 것일까? 나를 위해 사정하고 싶은 걸 억지로 참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바랬다. 적어도 그런 말로 우리의 섹스를 단지 사정과 오르가즘만이 최종 목적지처럼 만들어버리지 않기를 말이다. 나도 알고 있다. 이런 것을 견디지 못하면 연애는 길어질 수 없다는 것을. 그렇지만 금방 만나고 또 헤어지고 다시 누군가를 만나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 일련의 과정들이 내게서 앗아갈 에너지와 감정을 나는 감당할 자신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세월의 무게를 얹은 무덤덤함을 참아낼 자신도 없다. 말로 표현해 버리면 끝내 구차스러워지고 마는 일들. 이것 때문에 사랑이 끝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는 왜 알지 못하는 걸까? 다시 나에게 설렘과 흥분을 안겨줄 남자를 찾을 때가 왔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말한다. 이 사랑을 끝낼 자신이 있냐고. 그 긴 시간들이 가져다준 기억들을 그냥 묻어버릴 자신이 있느냐고. 섹스할 때 웃옷 좀 벗지 않았다고 세상이 끝장나는 건 아니잖아? 그래. 맞는 말이다. 세상이 끝장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섹스가 안 되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사랑은 끝났다는 것이다. 사랑 없이 단지 섹스만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섹스 파트너를 찾으면 그만이다. 애초부터 감정 같은 건 기대하지 않고 오로지 서로에게 쾌감만 건네줄 원나잇스탠드의 기회는 곳곳에 있다. 그리고 그건 원하기만 한다면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좀 더 쉬운 일이다. 문제는 내가 그것을 원하느냐는 것이다. 그것도 진심으로 말이다. 글쓴이ㅣ남로당 칼럼니스트 블루버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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