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작업의 정석]
미리 말하는데. 난 원나잇을 아주 많이 해본 사람도 아니고 그다지 원나잇을 즐기는 편도 못된다. 5번 정도 원나잇이 있었고. 항상 끝나고 나면 후회했다. 이 글은 원나잇의 프로님 들이 볼 만한 글이 못 된다는 것과, 원나잇을 한번도 못해봤거나. 한 두 번 했는데 후회한 그런 분들이 읽어 줬으면 한다는 것을 밝힌다.
내가 한 첫 원나잇은 2003년 가을쯤이었다.
연인 계약을 맺은 남자와 헤어짐을 예감하고 있을 무렵, 대판 싸움까지 하고 벌써 한 달이 흘렀다. 헤어짐을 예감했다고 해서 결코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한 달 동안 울기도 했고, 폐인짓거리도 좀 해봤고, 나름 상심을 추스리는 의식들을 끝냈다.
그러자 헤어짐으로 인한 충격에 한동안 가출했던 성욕이 슬슬 돌아온다. 생각해보니 냉전기간 포함 거의 석 달을 안 했다. 이럴 때면 괜히 평소엔 신경도 쓰지않던 팍시러브의 뻐꾸기보드(레드홀릭스 만남의 광장과 같은)에 눈이 간다. 가는 눈길을 억지로 거두고 "신경 끄자고, 너 아직 그렇게 굶지 않았다."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지만 결국은 호기심과 굶주림의 승리였다.
일단 남자 뻐꾸기 보드를 탐험해 봤다.
'호오~ 다들 자기 잘 한다고 하네? 뺑끼 치긴~ 쳇!"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 굶긴 진짜 오래 굶었구나 내가!) 웬쥐 구미가 땡기기도 하고, 재미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아직 누군가에게 메일을 직접 보내기에는 좀 수줍다. 그리고 소오오올찍히 말해서 간택하는 입장이 되고 싶지. 간택 당하는 입장이 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메일을 날리기 보다는 여뻐구기 보드에 뻐꾸기를 날려보기로 했다. 섹스만 하는 아주 쿨한 섹스 파트너는 솔직히 자신이 없으니 친구를 구한다는 형식으로 나름 심혈을 기울여 뻐꾸기를 날리고, 마침내 하루가 지났다.
뻐꾸기를 위해 따로 만들어둔 메일 함을 여는 순간. 나는 움찔! 할 수 밖에 없었다. 하루 만에 30여 통의 메일이 왔다. 뻐꾸기 보드의 효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일주일 후… 뻐꾸기 메일을 100통 이상 받고 나자 더 이상 찌질 거리지 말고 일단 맘에 드는 놈을 색출 하기로 했다. 선정기준은 "보낸 메일에 성의가 있을 것" "매너가 있을 것" "미혼일 것"으로 잡고, 5명에게 답 메일을 보냈다. 그렇게 메일을 주고 받은 지 일주일 후 드디어 만남을 가지기로 했다. (신기하게 뻐꾸기의 과정은 일주일을 주기로 하나보다.)
나이 31살의 미혼남으로 정중한 태도와 회사가 우리집과 가깝다는 것도 맘에 들었지만 무엇보다 깔끔한 외모가 맘에 들었다.
드디어 만나기로 한 날 나름대로 신경 쓰고, 평소 잘 입지도 않던 치마까지 챙겨 입고 그를 만나러 나갔다. 서로 쑥스럽게 보고 웃다가 "밥 먹었어요?" 라는 그의 말에 그냥 고개만 끄덕였더니, 그럼 술이나 한잔하자고 한다. 나도 솔직히 맨 정신에 할 자신은 없어서 그와 함께 바에 들어가 앉아, 알고 있던 중 가장 독한 칵테일을 시켰다.
영화 [social network]
서로 질문공세를 퍼부었다. 그냥 뭘 좋아하느냐. 좋아하는 체위는 뭐냐, 원하는 특별한 사항이 있느냐. 왜 원나잇을 하게 되었냐. 등등… 술이 들어가고. 오랜만에 남자를 앞에 두니 좀 더 수다스러워 졌다. 칵테일이 잘도 들어간다. 살짝 어지러울 때쯤 그가 센스 좋게 자리에서 일어선다. 무언의 투합이 이미 끝난지라 망설임 없이 근처 모텔로 향했다.
샤워하니 술이 좀 깬다. 그가 샤워를 하러 들어간 동안 티뷔를 틀어 보니 성인방송은 왜 또 그리 눈에 잘 들어 오는가! (젠장) 샤워를 마친 그가 나오는 낌새가 느껴지자 얼른 채널을 바꿨다. 그는 자연스럽게 내 옆에 앉더니 대뜸 키스를 한다. 나도 에라 모르겠다 싶어 키스를 대뜸 받아 주고는 본격적으로 떡을 치기 시작했다.
그는 매우 익숙해 보였다.
가운을 푸는 손길이 능숙했고. 클리토리스를 애무하는 손과 입술이 능숙했고. 다양한 체위가 능숙했고, 사정 타이밍을 맞추는 것도 능숙했다. 하지만 난 흥분이 되지 않았다. 그가 하는 리드에 따라 이리저리 뒤집어 지고, 제껴지고, 접혀지고. 들려지면서 난 '이게 대체 내가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흔들흔들 하는 벽지를 멍하니 바라보는데 그가 사정을 했다. 머리가 아프고. 기운도 없고. 졸렸다. 나도 모르게 스륵 잠에 빠져 들었다.
시끄러운 전화 벨 소리에 잠을 깨니 그 사람은 간단한 메모지 한 장에 "일이 있어서 나갑니다. 깨워도 안 일어나시더군요"라고 적어놓고는 나가버린 뒤였다. 난 샤워도 하지 않고 옷을 주섬 주섬 챙겨 입었다.
집에 와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 쪽 팔렸다. '내가 왜 술을 먹었을까? 내가 왜 그 상황에서 잠이 들었을까?' 반성도 했다. 끝까지 깨우지 않고 휭 가버린 그 놈이 짜증나기도 했지만 그에게 예의상 전화 한 통은 해야겠다 싶었다. (아. 이 얼마나 예의바른.. 아니 어리석은 모습인가!)
섹스만 하기 보다는, 친한 친구가 되고. 서로 힘들 때 연락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던 그는…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원나잇에 대한 나의 환상을 말이다. 난 왜 원나잇을 했는가?
몸이 무지하게 외롭고 남자가 고파서? (그런 면이 없진 않지만, 딱 그 뿐이라면 호빠를 갔지 --;) 필요할 때마다 불러서 떡 쳐줄 편리한 놈이 필요해서? (이것도 아닌 것 같다. 난 그럴 만큼 흔히들 말하는 쿨 한 여자가 되지 못한다.) 아님 새로운 체험을 해 보고자? (그럼 하고 많은 새로운 것 중 왜 이건데?) 더 좋은 테크닉을 격게 해 줄 남자를 위해? (이거면 내가 만족을 했었어야지--;)
난 순수한 섹스파트너를 원하거나, 단순히, 끝내주는 섹스를 치루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외로워서… 정말 외로워서… 날 이뻐해 줄 남자가 필요 했던 것이다.
원나잇을 치루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서로 원한다면 가끔 스킨쉽과 섹스가 가능한… 다정한 이성친구를 원했던 것이다.
영화 [the nerd king]
다정하게 날 끌어안고 아침에 함께 눈을 뜰 수 있는 사람...
난 팍시 뻐꾸기 보드의 내 뻐꾸기 글을 지우고, 뻐꾸기용 메일계정을 날려버렸다. 그리고, 새로 화장을 곱게 한 후에 아끼는 속옷을 입고, 바이브레이터에 특수 콘돔을 씌우고 침대에 누워 자위를 시작했다.
그 날… 난 그 어떤 때보다 질 좋은 오르가즘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해결된 것은 없었지만 원나잇을 한 그날 밤보다는 행복했다.
내가 이 글을 왜 썼는고 하니, 원나잇은 원나잇 일 뿐 이라는 걸 말하고 싶어서다. 말 그대로 '하룻밤' 인 것이다. 어쩔 땐 하룻밤은커녕 대실 시간에 맞춰 싸고 먼저 사라지는 남자들도 있다. 아직 경험이 없는 많은 이들은, 매너 좋고 테크닉이 좋은 파트너를 만나기만 하면 아주 죽여주는 밤을 보내고, 좋은 추억을 간직하며 쿨하게 악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간혹, 원나잇을 계기로 서로 사랑에 빠지는 영화의 한 장면을 기대하기도 한다. 일종의 원나잇 판타지 랄까?
미리 말하지만 대부분의 원나잇은 지독한 허무감을 반드시 불러온다. 테크닉이 좋다고, 매너가 좋다고, 상대가 잘생겼다고 그 허무감이 사라지진 않는다. 그렇기에, 원나잇에서 우리가 무엇을 기대하는지 알고, 즉 왜 내가 뻐꾸기를 날렸는지를 알고… 그 원인이 충족되었다 싶으면 거기서 딱 접을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연애가 하고 싶으면 연애를 해라, 새로운 남자와 데이트가 하고 싶으면 데이트를 해라. 하룻밤 동안만 안고 섹스 할 남자가 필요할 때만,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잊을 수 있을 자신이 있을 때만 원나잇을 하라. 연애와 데이트와 원나잇을 혼동하지 말아라. 원나잇은 원나잇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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