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누드모델, 이석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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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누드모델의 삶, 이석현 Polypemon-break 제 4편 누드모델 이야기 (2015.10.08 발행) 폴리페몬 브레이크 누드모델과의 인터뷰, 마지막 모델은 전업누드모델로 활동하는 28살 이석현이다. Photographed by YOON SANG MYUNG
그는 3년 전 누드모델을 하기 위해 홀로 상경했다. “친구와 부산여행을 하고 있었어요. 여행 중 태종대 온천을 가게 되었는데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야외 온탕으로 나갔어요. 그때가 4~5월쯤이었고 옷을 벗은 상태에서 가만히 앉아있는데 부슬비가 내리더라고요. 비를 맞으니 시원하면서 기분이 상쾌했어요. 그러다 제 몸을 보게 되었죠”
“몸도 굉장히 좋은 상태였고 사람들한테 자랑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몸을 보여줄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찾다가 누드모델을 알게 되었고 검색해서 나온 곳이 서울에 있는 한국누드모델협회였어요. 전화를 했는데 서울에서 미팅을 하자고 하더라고요.” Photographed by YOON SANG MYUNG
“솔직히 누드모델에 대한 느낌은 야했어요. 그런데 야한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사람의 몸만큼 아름답고 매력적인 건 없다고 생각해요. 충분히 직업으로 할 수 있고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왔죠. 그게 3년 전이었어요.” “누드모델은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어요. 공연을 하거나 사진을 찍는 건 줄 알았거든요. 직접 해보니 거의 대부분이 미술 수업이었고 무척 생소했어요. 전 그냥 제 몸을 자랑하고 싶어서 왔는데 미술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또 포즈를 해야 한다고 하니까. 그래도 하고 싶어서 왔으니 그 정도는 감수하고 제대로 해보자고 다짐했죠.”
Photographed by YOON SANG MYUNG
“합정에 있는 *우만연(우리만화연대) 수업이 처음이었어요. 첫 수업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협회에서는 포즈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아서 저 혼자 알아서 해야했죠. 그래서 최대한 초보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전날 인터넷으로 나름 멋있는 포즈들을 검색해서 연습을 했어요.”
*우만연(우리만화연대) - 한국만화의 육성과 발전을 위해 만화와 관련된 각계의 사람들이 모여 만든 단체 “수업을 시작하고 3분씩 포즈를 취하는데 요령이 없으니까 유지하기가 힘들더라고요. 몸이 떨리고 땀도 흐르는 상황이었는데 무너지면 안되겠단 생각으로 버텼어요. 그리고 첫 수업이니만큼 성기가 적나라하게 보여도 개의치 않고 특이한 포즈들을 취하기도 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모델들은 잘 안하는 포즈들이었는데(웃음).. 굉장히 어색하고 분위기도 야했지만 정말 열심히 했어요.” “수업을 마치고 일어서는데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잘했다고 칭찬을 해줬어요. 처음인데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좋잖아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렇게 계속 칭찬을 받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어서 노력하다보니 지금까지 이 일을 하게 된 것 같아요.” Photographed by YOON SANG MYUNG 그는 항상 큰 가방을 들고 다닌다. 가방 안에는 수업 전 입어야 하는 가운, 큰맘 먹고 구매한 최고급 휴대용 스피커와 포즈를 돋보이게 해줄 다양한 소품들이 들어있었다. 수업마다 이것들을 들고 이동하는데 무게가 많이 나가는데도 그는 익숙하다는 표정이었다. “수업에서 트는 노래부터 연기라고 보면 돼요. 음악의 흐름에 맞게 포즈를 준비하고 연기를 하거든요. 한 타임당 필요한 음악이 10곡정도 되는데 수업이 보통 3~4타임이니까 많은 곡들이 필요하죠. 음악에 맞춰 포즈 개수 또한 수십 가지는 돼요.” “그래서 스케줄 외에는 거의 수업에 쓸 음악을 찾고 포즈에 도움되는 영상들을 많이 봐요. 그리고 운동도 몇 시간씩 하고요. 학기 중에는 이렇게만 보내도 하루가 모자라요. 친구를 만날 시간도 없고요.” Photographed by YOON SANG MYUNG 사람들은 포즈를 놓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음악과 함께 그의 눈빛이 바뀌었다. 포즈는 역동적이고 에너지가 넘쳤으며 그리는 사람을 위해 다양한 각도로 움직였다. 1분, 3분, 5분마다 타이머가 울리고 포즈를 바꿀 때마다 사람들은 빠르게 스케치북을 넘겨 그를 그렸다. “누드모델이라고 옷만 벗으면 다가 아니에요. 포즈에 대한 연구와 몸을 쓰는 법을 배워야 하는 굉장히 전문적인 분야고 저 또한 전문모델로서 그리고 예술가로서 이 일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전형적인 포즈나 다른 모델이 한 포즈는 하지 않고 제가 연구하고 직접 구성한 포즈들로 수업을 해요” Photographed by YOON SANG MYUNG
포즈에 대한 공부는 어떻게 하는지 물었다. “발레나 현대무용 등의 영상을 보면서 좋은 포즈를 발견하면 응용해서 저만의 포즈로 만들어보기도 하고요. 동물영상을 보면서 그 움직임에 영감을 받기도 해요. 사실 거의 모든 영상을 보는 것 같아요.(웃음) 그리고 ‘부토’라는 일본의 무용 춤이 있어요. 무용수의 분장이나 움직임, 무대 분위기와 음악 모두 굉장히 기괴하거든요. 신기하게도 부토의 동작들이 저와 잘 맞았어요. 그래서 포즈에 많은 도움이 됐죠.” Photographed by YOON SANG MYUNG 여자모델과의 듀엣 수업에 대해 물었다. (부끄럽지 않은지) “여자모델과 듀엣을 한다고 해서 특별히 어떤 감정이 생긴다거나 하는 건 없어요. 그리고 옷을 벗었다고 무조건 야하지도 않고요. 옷을 입고 있어도 매력적인 여자들은 많잖아요? (웃음) 그리고 모델들은 누드를 자주 봐요. 그래서 아무렇지 않죠.” “그리고 무조건 스킨십을 해야하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스킨십을 싫어하는 모델들이 많죠. 사실 듀엣은 두 사람의 포즈가 조화로워야 하고 그러려면 서로 닿는 게 기본이에요. 자유롭게 서로 안기도 하고 눕기도 하고 들어올리는 포즈도 해보고. 오히려 솔로보다 듀엣이 훨씬 표현이 풍부하게 나올 수 있는데 대다수 여자 모델들은 부담스러워해서 단순한 포즈밖에 못해요. 상당히 제한적이고 불편하죠.” “사실 그리는 사람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일거에요. 기껏해야 손을 잡거나 어깨에 손을 올리는 포즈를 그리려고 듀엣 수업을 신청한 건 아닐테니까요. 그래서 만족도도 생각보다 높지 못할 거고요.”
“그래서 저는 여자 모델이 먼저 포즈를 취하면 거기에 맞춰서 포즈를 하고, 분위기가 편해진다면 조금씩 다양한 것들로 시도하려고 해요.” Photographed by YOON SANG MYUNG
그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누드모델을 하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누드모델 시급이 몇 만원씩 하고 수업을 여러 번 가니까 돈을 많이 벌거라고 생각하지만 수업은 하루에 두 세시간이면 끝이고 이것저것 준비하는 시간을 빼면 하루가 다 가버려요. 그렇게 해서 수수료 떼고 받는 건 5만원 남짓. 지방에 가면 차비까지 드니 더 적을 때도 있죠. 그리고 남들보다 더 잘 한다고 돈을 더 주거나 하진 않아요. 시급은 제가 시작한 3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대로거든요.” “그래서 돈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런 목적이라면 더 좋은 포즈, 더 좋은 음악, 더 좋은 수업을 위해 노력하지도 않을 거고 단순히 포즈만 취하고 돈만 받으면 끝이니까요.” Photographed by YOON SANG MYUNG “저에겐 사람들의 반응이 매우 중요해요. 수업에 집중하는 것부터 포즈에 대한 의견, 칭찬, 부족한 점들 어떤 것이든요. 그런데 모델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서 모델에게 말을 걸지 않고 거리를 두려는 분들이 있는데 한 가지 구분해야 할 건 돈을 목적으로 하는 모델들은 말을 걸지 않으면 편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일로 만족을 얻고 싶어하는 모델들은 그걸 위해서 하는 거에요. 관객이 한명이어도요. ”
“가끔 수업을 하다보면 제가 준비한 노래를 듣지 않고 개인 이어폰을 끼고 작업하는 분들이 있어요. 사실 조금 기분이 좋진 않아요. 앞서 말했지만 음악도 수업의 일부니까요. 그리고 핸드폰을 계속 만지는 사람들도 있고 그림은 안 그리고 팔짱을 끼고 앉아있는 사람도 있죠. 물론 제 포즈가 마음에 안 들었을 수도 있고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런 행동들은 모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Photographed by YOON SANG MYUNG
그는 지금까지 누드모델로 활동하면서 가장 좋았던 공연이 2013년 두산아트센터에서 했던 <사보이 사우나>라고 했다. “무대 미술가 여신동씨가 연출하고 음악을 정재일 씨가 담당한 퍼포먼스 공연이었어요. 여신동씨는 어렸을 때 남탕에서의 충격으로 게이가 된 분인데 그때 정체성의 혼란을 겪은 기억을 가지고 만든 공연이 <사보이 사우나>라고 했어요.”
“마지막 목욕탕 신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총 5명의 누드모델을 섭외했고 마지막 10분이 저희의 무대였어요. 한 명씩 천천히 걸어 나와서 편안하게 가운을 벗고 의자에 앉아 그대로 멈추는 신이었고 마지막 모델이 저였죠.” Photographed by YOON SANG MYUNG
“무대를 가로질러 천천히 걸어가 안마 의자에 앉고 의자를 뒤로 젖히면서 잠들어요. 그리고 조명이 꺼지면 조용히 나가는 신이었는데 그때 흘러나오는 음악이 너무 좋았어요. 음악과 동시에 사람들 앞에서 나체로 걸어나가 의자에 앉고 천천히 뒤로 누울 때까지.. 그 순간이 굉장히 조화롭고 완벽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아직까지도 그 순간을 잊을 수 없고 계속해서 그런 무대를 꿈꾸고 있어요."
Photographed by YOON SANG MYUNG
그에게 누드모델을 하면서 성희롱이나 성차별, 부당한 일을 경험한 적이 있는지 물었다. “한국누드모델협회에 다닐 때였어요. 추운 겨울이었고 협회에서 연습을 하는데 무대에 여자 공간과 남자 공간이 따로 있었거든요. 그런데 여자 공간에만 전기장판을 깔아주고 남자 공간은 그냥 맨 바닥이었어요. 그러면서 협회 회장은 남자는 차가워도 괜찮고 여자는 따뜻하게 보호해줘야 한다고 말하더라고요. 항상 여자 모델 위주였고남자 모델들은 전혀 존중해주지 않았죠. 남자는 함부로 해도 된다는 식의 차별, 그걸 당연시하는 게 불편했어요.” “또 협회에서는 수업에서 사람들과 한마디도 하지 말라고 했어요. 제가 이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사람들과 교류하고 공감을 얻으려는 건데 말을 하지 말라는 건 돈이나 벌라는 것밖에 안되잖아요. 그런 이유라면 제가 이 일을 할 필요가 없죠. 그리고 다른 모델들과 어떠한 교류도 하지 못하게 했고 그런 것들이 점점 쌓여갔어요.” “그렇게 방학이 됐는데 수업 스케줄이 한달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없었어요. 전 모델 수입으로 생활을 해야하는데 수업이 없으니 많이 힘들었죠. 그래서 따로 막노동도 하고 여기저기 아르바이트도 했어요. 그러다 지금 속한 에덴 에이전시 대표님을 알게 되면서 사정을 얘기했고 그렇게 두 에이전시 수업을 병행하게 됐죠. 그러다 협회 회장이 다른 곳에서 일하냐고 물었고 전 숨기고 싶지 않아서 사실대로 말했어요. ‘여기서 일하는 게 나와 맞지 않다’고. 그렇게 그만두고 에덴 에이전시에 들어왔죠.” “제가 협회에 있었던 당시 <광홍 크로키> 수업을 처음 가게 되었고 그땐 원장님과 친하지 않아서 잘 모를 때였어요. 첫 수업을 마치고 나서 원장님이 저를 다시 부르고 싶다고 협회에 연락을 하셨는데 그때 협회 회장은 이석현 모델이 바빠서 해당 날짜에 갈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하더라고요. 전 그때 전혀 들은 바가 없었고 그 시기엔 수업이 없어서 전전긍긍하던 때였어요. 심지어 그 날짜에는 집에서 쉬고 있었고요. 그만두고 나서 알게 되었고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나 이런 경우가 더 있을 수도 있단 생각에 나중엔 화가 좀 많이 났죠.” Photographed by YOON SANG MYUNG
“그리고 전체적으로 업계에서 남자모델보다 여자모델에 대한 수요가 더 많아요. 가끔 학교나 센터에서 남자모델을 거절하는 경우가 있는데 단순히 남자모델은 별로거나 잘 못하거나 성적으로 문제를 일으킨다고 생각하는 거죠. 일단 전문적인 모델로서 존중해주지 않을뿐더러 제대로 보지도 않고 그런 편견으로 판단하니까 제 입장에선 억울하고 화나는 일이죠."
Photographed by YOON SANG MYUNG
Photographed by YOON SANG MYUNG
그에게 누드모델은 어떤 직업이냐고 물었다. “누드모델은 인체연기라고 말할 수 있어요. 옷을 벗은 가장 자연스럽고 원초적인 상태에서 무엇이든 될 수 있거든요. 모든 것들의 멈춰진 동작을 표현하고 동작 안에서 슬픔과 기쁨, 분노 등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이게 굉장히 어렵기도 하지만 매력적인 부분이기도 해요. “ “참 방대하죠. 그런데 모델 중에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없어요. 그리고 크로키 수업이 많다 보니 누드모델을 그림 모델이라고만 생각하는 분들도 많고요. 그런데 크로키는 누드모델이 활동하는 영역에서 아주 일부일 뿐이고 외국에서는 누드를 이용한 공연이나 예술 활동들이 많잖아요.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분야가 많기 때문에 계속 공부해야해요.” Photographed by YOON SANG MYUNG
“지금은 누드모델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게 목표에요.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실력만이 최고는 아니거든요. 인지도도 중요하고 흐름을 유지하는 능력도 중요하죠..”
“처음 수업부터 어렵고 멋진 포즈들만 하면 분위기는 좋겠지만 보통 수업은 1회성이 아니거든요. 몇 주 연속 수업이 진행되고 매 수업마다 분위기를 유지해야해요. 쉬운 포즈도 하고 복잡한 포즈도 하고 그렇게 흐름을 길게 유지하도록 구성하는 것들이 굉장히 중요하고 어려워요. 이런걸 잘 하는 모델이 최고의 모델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전 아직 최고가 아니고 연습을 하면서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Photographed by YOON SANG MYUNG
누드모델 외에 하고 싶은 일이 있는지 물었다.
“업계 최고가 된다면 일을 그만두고 다시 글을 쓰고 싶어요. 이 일을 하기 전부터 시를 썼었어요. 장르로 말하면 순문학인데 누드모델 일을 하면서 많이 못썼죠. 사실 저에게 가장 중요한 건 글을 쓰는 거고 그게 제 정신을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이며 가장 근본적으로는 제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이거든요." “지금까지 제가 경험하는 이 모든 것들이 언젠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쓰는 글에도 많은 도움이 되겠죠. 그래서 누드모델로서 최대한 다양한 작업들을 많이 경험해보고 싶어요. 사진작업이든 공연이든 기회가 온다면요.” Director & editor 원미라 Photographer 윤상명 Model 이석현 기획 레드홀릭스 - www.redholics.com 모델 에이전시 에덴 - www.facebook.com/agency.eden 폴리페몬 브레이크는 레드홀릭스의 프로젝트로 성, 섹스와 관련된 사회적 편견을 깨고 이를 사진과 그림이라는 방식을 통해 드러내는 인터뷰 형식의 화보다. 누드모델 에이전시 에덴과 함께 첫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고 총 4명의 누드모델과 인터뷰를 했다.
* 폴리페몬이란 그리스 신화 속 인물로 지나가는 나그네를 침대에 눕혀 침대 길이보다 짧으면 다리를 늘이고 길면 잘라 버렸다. 현대에서는 이를 융통성이 없거나 자기가 세운 일방적인 기준에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억지로 맞추려는 아집과 편견을 비유하는 관용구로 쓰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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