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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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어떻든 상관 없다. 홀로 있는 집, 지금의 나는 혼자가 아니게 되었으니까. 상상으로는 뭐든 만들어낼 수 있거든.
너는 이미 나를 장악하고 내려다 보고 있다. “어떻게든 해 줘.” 덜덜 떨며 겨우 뱉은 내 말에 너는 기다렸다는 듯 빙그레 웃는다. “뭘? 뭘 어떻게 해 줬으면 좋겠는데?” 나는 아무 말이 없다. 거만하게 나를 내려다보는 네 앞에 무릎을 꿇어 앉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나는 겨우 눈을 질끈 감는 것밖에. 너는 마치 포식자 같다. 꿇은 무릎 위에 얹어둔 덜덜 떨리는 손을 보고 웃는다. 바닥에 떨군 내 턱주가리를 홱 낚아챈다. 그 순간 경직된 어깨가 숨길 수 없이 소스라치게 들썩이고 만다. 그저 아무 말 없이 내 입으로 들이미는 네 자지를 나는 자연스럽게 당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나지막한 네 신음이 나에게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칭찬으로만 받아들여진다. 네 뒤통수를 누르는 네 손아귀가 더없이 야하게만 느껴진다. 더 나아가서 내 머리를 양 손으로 잡고 마치 오나홀처럼 무자비하게 나를 다뤄대는 네가. 너는 또다시 나를 내려다 보고 있다. 지금의 나는 벼랑 끝, 아니 침대 모서리에 몰려 있다. 차갑고 단단한 벽이 어깨에 닿는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소리 나게 침을 삼킨 나를 너는 빙글빙글거리며 바라본다. “제발… 제발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숨을 할딱거리던 내가 겨우겨우 뱉어낸 말. “내 눈이 어떤데?” 상상 속의 너는 항상 망설임이 없다. 내가 무어라고 말하든 어떠한 행동을 하든 그저 기다렸다는 듯 답한다. 마치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지. “대답해 봐. 내 눈이 어떤데?” 그리고 망설이는 내가 답을 보류하면 너는 곧장 거세게 몰아세운다. 커다란 파찰음과 함께 내 고개가 일시간 돌아간다. 다시 원위치에 고개를 돌려둘 수가 없다. 그럴 자신이 없다. 반사적으로 눈이 질끈 감긴다. “눈 떠야지.” 내 시선이 어디로 가는지도 이제는 모르겠다. 내가 뭘 보고 있는지 조차도. 그러나 한 가지 확실했던 것은 내가 너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 “내 눈 봐.” 여기저기 작게 떨리던 몸이 이제는 꽤 큰 진동을 만들어내고 있다. 내 몸에 네가 전혀 닿지 않은 지금에도 너는 아마 이 진동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숨도 잘 쉬어지지 않는다. 옆으로 돌린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나 봐 봐.” 네 음성은 나긋하고 얼굴을 쥐는 너의 손도 따뜻하지만 행동은 결코. 너무나도 조용하다. 너무나도 조용한 나머지 내가 가쁘게 쉬는 숨소리만 들린다. 여차하면 파르르 떨어대는 소리까지도 들릴 지경이다. 힘들게 맞춘 네 눈 속의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있다. 네 속의 나는 잔뜩 겁 먹은 눈을 하고 있다. 그걸 본 순간 왼쪽과 오른쪽 눈에서 차례대로 눈물이 흐른다. 눈물이 귓바퀴를 타고 흘러내리는 순간 나는 짧디짧은 신음 같은 한숨을 뱉는다. 네 손이 내 그 곳에 닿는 순간 나는 다시 눈을 감는다. 눈을 감고 어금니를 깍 깨물고. 이제는 이불보를 쥔다. 빳빳하지만 습기를 다소 머금은 이불보가 까드득까드득 소리를 낸다. “왜 이렇게 젖었어?” 진부하기 짝이 없는 멘트. 그러나 ‘예쁘다’는 말과 같이 언제 들어도 짜릿한. 언제나 그랬듯 쉬이 대답하지 못 하는 내 자신이 원망스럽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혼자서 이렇게 젖은 거야? 내 자지는 니가 빨았잖아. 남의 자지 빨면서도 젖어? 맞아? 대답해 봐. ㅇㅇ아, 응? 이거 뭐야?” “아니야, 그런 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다. 내가 뭐라고 대답해야 너를 더 흥분하게 만들 수 있는지 항상 골몰한다. 그러나 내 대답은 항상, “잘못했어요, 주인님.” 내가 제일 진부하다. “뭐가 아니고 뭘 또 잘못했는데?” 머릿속이 하얘지고 만다. 매 순간 비슷한 플롯과 비슷한 전개 비슷한 시나리오에 질릴 법도 한데 나는 매번 똑같다. 상상만으로도 오르가즘을 느낀다. 접촉과 자극에 의한 오르가즘처럼 지속시간이 길지는 않지만 분명하게 선명한 그것을 나는 오르가즘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포르노를 왜 보지 않느냐고 묻던 누군가에게, 자위를 어떻게 하는지 묻던 사람에게 이 글이 충분한 답이 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상상으로는 뭐든 할 수 있는 데에 반해 포르노는 그럴 수 없으니까. 저주를 받았다고 느꼈던 어느 뜨거운 새벽에 흐느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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