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바랬던 답
46
|
||||||||
|
||||||||
네가 내게 내린 벌은 사실 아주 쉬운 일이었다.
1. 무릎을 꿇을 것. 2. 손을 들 것. 3. 눈을 감을 것. 여기에 옷을 벗으라는 명령은 없었지만 나는 자의대로 모든 옷가지를 훌훌 벗어두었지. 그래야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아니, 그게 당연했으니까. 저벅저벅, 네 발걸음소리가 들린다. 발바닥에 땀이 조금 밴 건지, 바닥에 발이 아주 살짝 붙었다가 떨어지는 듯한 소리다. 나만큼이나 너도 긴장했을까 싶은 엉뚱한 생각이 피어오르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쿡쿡 웃음이 샌다. “ㅇㅇ이, 뭘 잘못했어?” 그러나 나는 아무 말이 없다. 내가 뭘 잘못했더라- 곰곰이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무는 중이다. 그동안의 대화를 역순으로 복기하고 있다. ‘응, 네가 주는 벌이라면 뭐든 다 좋아.’ ‘벌 받아야겠다.’ ‘응? 음, 응.’ ‘그럼 ㅇㅇ이는 나쁜 아이네?’ . . . 그 전에는 내가 뭐랬더라. 생각이 멈춘다. 내 견갑을 슬며시 쓰다듬는 네 손가락 때문에. 슬그머니 내려가려던 팔이 다시 바짝 긴장한다. 나도 모르게 흠칫하는 소리를 낸다. 네가 소리를 내지 말라고 했던 것도 아닌데 괜히 나는 숨을 죽이고 있다. 건드리다 말아버리는 네 손끝이 나는 야속하기만 하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애가 닳는다. 내색, 하지 않으려고 그랬다. 감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고 호흡이 자꾸 가빠진다. 엉덩이가 굼실거린다. 겹치게 둔 발등과 발바닥이 저릿해서 발을 세운 상태로 다시 자세를 고친다. 바닥에 오랫동안 닿아 있던 발목이 조금 시큰하다. 자세를 고치기 무섭게 차가운 무언가가 닿는다. “여기가 왜 젖었는지 ㅇㅇ이가 설명해볼래?” 차가운 무언가는 다름아닌 네 발이었다. 아마도 엄지발가락이었겠지. 예상컨대 네 발은 차지 않았을 것이다. 긴장한 탓에 유달리 차게 느꼈을 것이고 또 내가 뜨거워진 탓에 더욱 더. 설명해보라는 네 말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잘못했어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끝을 흐려놓고 침을 삼킨다. 아마도 침 삼키는 소리가 내 말소리보다 더 컸을 것도 같다. 사실 이렇게나 젖은 이유를 나 조차도 알 수가 없었다. 왜 이런 상황에까지 나는 흥분하고야 마는 건지. 당연히 아니었겠지. “내가 원하는 대답은 그런 게 아닌데.” 너는 일순간 내 손목을 낚아챈다. 화들짝 놀라 잠깐 눈을 떠버렸다. 보였던 건 아무것도 입지 않은 네 하반신 그리고 바짝 힘이 들어간 너의 것. 나도 모르게 떠진 눈에 소스라치게 놀라 다시 질끈 눈을 감는다. 나도 모르게 음성을 내었던 것에 놀라 다시 숨죽였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지금 내 입술에 닿는 이것이 뭔지 안다. 미끌거리는 액체가 조금 흐르고 있는 그건 아마 높은 확률로 네 자지일 것이다. 나도 모르게 입술이 조금 벌어져 있었다. 너는 마치 내 음순에 했던 것처럼 미끌거리는 액체가 흐르는 그걸 문지른다. 음순이 아니라 지금은 구순에. 입이 턱이 서서히 벌어진다. 음순처럼. 점점 중심을 잡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다보니 어느 새 벽에 다다른다.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벽에 바짝 붙어서, 양 손목이 붙잡힌 채로, 네 자지가 자꾸 목구멍 깊은 곳까지 들어온다. 게다가 나는 무릎을 꿇었지. 흐르는 침을 삼켜낼 겨를이 없다. 너는 아주 잠깐의 쉴 틈만 줄 뿐 어쩌면 내가 콜록거리면서 난처해 하는 상황을 즐기는 것이 아닐까 싶더라, 내가 하는 펠라치오보다도 더. 흐르는 것은 침 뿐이 아니다. 일순간 눈물도 흐르고 있다. 차가운 눈물이 뜨거운 뺨을 타고 흘러내리면서 조금은 식히고 있다. 아니면- 눈물이 데워지고 있던 걸까. 뭐가 됐든. “ㅇㅇ아, 눈 떠봐.” 눈꺼풀에 추를 달아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뜨기가 무거운 걸까. 눈을 뜨자마자 너는 나를 곧장 일으켜 세운다. 너는 네가 지을 수 있는 가장 상냥한 표정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네 눈을 보기가 버겁다. 차라리 눈을 감고 있던 것이 더 편하다고 느낄 만큼. 아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떨리고 숨을 쉬기가 어렵다. 차라리 때려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적과 고요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보다도 더 무겁다. 갈피를 잃은 내 눈동자에 싱글벙글 웃는 네가 비쳤겠다. 비에 쫄딱 젖은 개 마냥 바들바들 떨어대는 내가 너에게는 재밌었을까 우스웠을까. 차라리 울고 싶다는 생각이 들 무렵에 너는 나를 강하게 밀친다. 무게중심을 잃은 나는 맥없이 침대 위로 엎어지고 만다. 네가 내 위에 포개어지는 줄 알았는데, “얌전히 있어야 안 아파.”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이다가, “말 잘 들으면 금방 끝내줄 거야.” 포개졌던 몸이 다시 멀어지더니 너는 내 손목을 등 뒤로 교차되게끔 다시 붙잡는다. 네 손에서 비할 데 없는 완력이 느껴진다. 네 명령도 없는데 나는 다시 눈을 질끈 감는다.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