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날들을 반성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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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의 섹스를 탐하는 사람이 좋아요.
나를 원하는 사람은 부담스러웠고 섹스만을 바라는 사람은 경박했어요. 언젠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나를 거쳐간 수많은 남자들 중, 그 중에서 나와 한 번이라도 섹스를 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은 정말 섹스를 원해서 한 걸까? 하는 생각이요. ‘줘도 못 먹냐’는 표현이 마냥 웃기기만 하지는 않아요. ‘준다’는 표현도, ‘먹는다’는 표현도 저에게는 가볍게 느껴져서요.(제가 진지충인 걸까요?) 설령 누군가가 주고 싶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은 먹고 싶지 않을 수가 있는데 지금까지의 나는 그걸 간과하고 살아왔던 것 같아요. 오만방자 말고는 딱히 꾸며낼 말이 생각 안 나는 거 보면 저는 정말로 오만방자했었나 봅니다. 나와의 섹스를 원해서 한 걸까. 분위기에 휘둘렸던 건 아닐까. 그래서 그 날의 일을 나중에는 후회하지는 않을까. 요즘은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또 먹고 싶고 계속 생각나는 사람이고 싶고 그런 섹스였기를 바라거든요. 비단 요즘에 들었던 생각이 아니고 어쩌면 아주 오래 전부터 시작된- 그래서 나와의 섹스를 적극적으로 탐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제는 잘 모르겠어요. “너 존나 따먹고 싶었어.” “훨씬 전부터 자지 존나 커져서 쿠퍼액 질질 흘리고 있었어.” “너랑 이런 거 하고 싶었어. 엄청 참기 힘들었어.” 그러면 반대로 나는 내가 원했던 섹스만 하지는 않았어요. 팽팽한 고무줄 끝을 잡고 있는 것처럼 일촉즉발의 순간들이 모두 아찔했던 적도 있고 과정이 무척 힘겹고 지루했던 적도 있어요. 오로지 ‘섹스’만 두고 본다면 글쎄요. 저는 자기암시가 꽤 잘 먹히는 타입인가 봐요. 아프거나 힘들고 괴로웠던 ‘섹스’는 없었던 것 같아요. 기억이 안 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뭐가 되었든지요. 라뽀가 단단히 쌓인 사람과의 섹스야 말해 입 아플 정도로 좋은 것은 맞지만 지금까지의 나는 라뽀가 전혀 없는 사람이더라도 섹스를 해왔어요. 그만큼 섹스가 좋았으니까. 아마 앞으로의 나 역시 라뽀의 여부와는 무관하게 섹스를 잘 해낼 거라고 믿어요. 지금껏 그래왔듯이요. 그렇지만 이제는 ‘나와의 섹스’를 탐하는 사람이어야. 내 오만함을 누그러뜨려줄 사람이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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