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포르노 01 [나란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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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나란 인간. <자위가 섹스보다 좋은 점.> 첫째.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둘째. 비용이 싸다. 세째. 성병에서 해방된다. 네째. 피임은 남의 문제다. 다섯째. 공간 제약이 거의 없다. 혼자 반듯하게 누울 수만 있으면 바로 놀이에 돌입할 수 있다. <안 좋은 점.> 첫째. 끝이 더럽다. 사정 이후 허탈감은 한심스럽기까지 하다. 둘째. 가끔씩, 혼자 뭐하는 짓일까?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하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죽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수치스럽다. 세째. 상상력이 자주 고갈된다. 경력이 쌓일 수록 주변인으로 대충 때우려는 경향을 보인다. 한마디로 점점 쉬운 길만 찾게 되고 인간 자체가 진짜로 나태해질 수 있다. 상상은 자유이며 한계가 없다. 사고 영역을 안드로메다까지 확장해도 모자를 판에 땅굴을 파고 들어가면 곤란하다. 상상력이 거세되면 발기력에 지장을 줄지도 몰랐다. ‘오늘은 또 누구를 소환해야 하나.’ 신선한 딸감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미 쓸만한 여자들은 죄다 써먹어서 싱싱한 여자가 없었다. 능력이 한계에 봉착했을 때는 도구를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를테면 소설이라든지 그림, 동영상을 동원해서라도 메마른 성감을 적셔줘야 한다. ‘빌어먹을.’ 컴퓨터에 저장된 음란물들은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도 많이 재탕한 탓에 이젠 아무런 감흥도 없다. 검색하는 와중에 시들어버린 가죽방이가 처량했다. 기대를 잔뜩 머금고 쿠퍼액을 질질 흘려도 모자를 판에, 추운 겨울 침낭 속으로 기어들어간 군바리처럼 포피를 귀두 끝까지 뒤집어 쓰고 말았다. 놈을 다시 껍질 밖으로 끄집어 내려면 뭔가 신선한 자극이 필요했다. 새로운 영상을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는 진작에 알고 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인터넷 뒤져봐야 죄다 그 좆에 그 구멍이다. 스토리라고는 띵털 한 올도 없이 상대와 눈만 마주치면 닥치고 박아댄다. 이게 어디 야동인가 격투기지. 그나마 UFC 화이터는 드로즈라도 입고 나온다. 시작부터 홀가분하게 알 몸으로 등장해서 미친 듯이 떡만 치다가 정액방출만 하면 쿨하게 끝나버리는 포르노가 대세로 자리잡았다. 제작비만큼 영상미마저 저렴해진 포르노는 해악 중에 해악이다. 이런 저질 포르노에 절여지다 보면, 닥치고 예쁜 여배우만 찾아다니게 마련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어지간한 미모가지고는 해면체에 온기조차 감지되지 않는다. 평범한 여자가 여자로 보일 리 없다. 이성에 대해 성환타지가 사라진 세상을 삭막해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 가. 여성을 보고 꼴리지 않는다면 삶이 곧 지옥이다. 포르노산업이 이 정도로 개막장으로 흘러가는 마당에도 페미니스트들은 야동이라는 말만 들어도 곧장 생사를 건 전투태세로 돌입한다. 이상한 일이다. 포르노로 인해 여성을 더이상 성적대상화하지 않는 분위기가 사회전반에 조성된다면 오히려 두 다리 벌리고 환영해야 할 일이다. 야동은 유해매체로 규정하고 박멸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전 세대에 걸쳐 시급히 보급해야 한다. 딸치다 말고 별 쓰잘데기 없는 잡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자료의 대대적인 물갈이가 필요한 시점이 오긴 온 것 같았다. 컴퓨터를 끄고 침대에 누웠지만 쉽사리 잠이 올 리가 없었다. 안 씻고 잔 적은 있어도 딸 안치고 잔 적은 없다. 1일 1딸.이건 나의 오랜 루틴이다. 이 정도 사소한 역경에 굴할 수는 없었다. ‘차라리 내가 출연해 봐? 상상말구 진짜루.’ 포르노 판이 이 정도로 단순무식하게 돌아간다면 나라고 못할 건 없었다. 뭐부터 시작해야 하지? 아무리 아사리판이라고 무일푼인 내가 제작부터 덜컥 손대는 건 오버다. 감독? 배우? 싼 맛에 찍는 영상인데 나 혼자 다 해먹는다고 무슨 대순가. 감독 겸 배우. 더 나아가 제작, 감독, 배우. AV쓰리썸을 완성하지 말란 법도 없다. 데뷔작은 어떤 작품으로 할까? 상대역은 누구를 정하지? .딸 한번치기 참 힘들다... ***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오늘은 엄마의 생일이다.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박을래여사 45번째 탄신일을 축하했다. 키가 큰 다섯 개 양초가 순식간에 꺼졌다. 막내 미란이가 내려 두었던 거실 스위치를 올렸다. “축하해요. 어머니.” 형수가 준비해 둔 선물을 엄마에게 건넸다. 이름은 간지연,나이는 스물여덟, 형보다 두 살 어리다. 엄마는 선물 개봉을 미룬 채. “일도 바쁠 텐데. 뭘 이런 걸 다 준비했어.” “옆 건물 1층에 쥬얼리샵 오픈했잖아요. 다행이지 뭐예요. 가까운데 선물매장이 있어서.” 형수는 내용물이 보석임을 은근히 암시했다. 엄마도 눈치가 평타는 넘는 지라 포장지를 재빨리 뜯었다. 어린애 주먹만한 자주색 보석함을 열자 엄마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빛의 진원지가 보석인지, 엄마 자체발광인지는 모르지만 엄청난 광채를 내뿜은 것 만은 사실이다. “이거 비쌀 텐데.” 선물은 반지였다. 황금으로 치장된 화려한 고리 안에 유백색 돌멩이 하나가 박혀있었다. 알맹이가 강낭콩 만했다. 보석 정체는‘오팔’이다. 사파이어나 에메랄드급은 아니지만 보석인 것만큼을 틀림없다. “안 비싸요. 밀키오팔인데요 뭘.” 형수가 손사래를 쳤다. 오팔은 색채가 엄청 다채로운 광물이다. 색이 선명하고 투명도가 높을 수록 가격이 높다. 유색오팔은 같은 물건이라도 평가하는 사람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그런 이유로 무색의 불투명한 밀키오팔이 가장 저렴하다. 여기까지가 형수의 설명이었다. 난 보석에 대해 서는 돌멩이나 다름없는 안목을 가졌다. “괜히 비싼 거 사서 모조품에 속느니 밀키오팔이 제일 무난하지.” 해란이었다. 나이는 스물 다섯. 나보다 두 살이 많은 누나다. 왈가닥이라고 하기엔 성질이 너무 더럽고, 꿈이 많다고 하기엔 허영심이 너무 쎄다. 정말이지 내세울 거라고는 늘씬한 각선미와 반반한 얼굴밖에 없었다. 백치미 물씬 풍기는 속빈강정이라고 함부로 껄떡거리다 잘못 걸리면 뼉다구 재조립하는 수가 있다. 누나는 현역으로 활동하는 무에타이 선수다. 그것도 무려 극동아시아 챔피언이다. ‘극동아시아라고 해봐야 북한과 남한 밖에 더 있어? 알아듣기 쉽게 한국챔피언이라 말하면 좋잖아.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얄팍한 선수 층에서 챔피언 먹어봤자지. 설마 챔피언타이틀도 부전승으로 거저 먹은 건 아니겠지.’라고 무시했다가는 저승사자하고 하이파이브하는 수가 있다. 설사 누나가 킥복싱을 배우지 않았다고 해도 어지간한 남자들은 가볍게 발린다. 그 정도로 운동신경이 탁월하고 성깔이 사납다. “언니. 다음달 나도 생일인데.” 애교라고는 1도 없는 천방지축 해란이 콧소리까지 섞어서 교태를 부렸다. 오팔이 어지간히 탐나는 모양이었다. 시누이라는 신분까지 얹어서 던지는 누나의 잽은 거의 스크레이트에 가까운 묵직함이 실려 있었다. “어머. 아가씨는 저보다 더 잘 벌면서 엄살이세요.” 간지연도 보통은 넘었다. 누나의 날카로운 앞 손을 유연한 위빙으로 가볍게 흘려 버렸다. 맘먹고 내지른 선제공격이 허무하게 허공을 가르자 누나가 입술을 삐쭉거렸다. “언니. 세무서에서 들으면 큰일날 소리하시네. 내가 벌면 얼마나 번다고.” 실제 누나는 벌이가 꽤 쏠쏠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장난 삼아 출전했던 지방미인대회에서 덜컥 1등에 당첨(?)되면서, 그때부터 시작한 모델 생활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대회 이름이 뭐였더라? 무슨 농산물 축제였었는데..., 맞다. 버섯아가씨였다. 지방자치단체이름은 잊어 먹었지만 대회이름은 분명히 버섯아가씨였다. 엄마는 누나의 출사표를 듣고서 기겁을 하며 극렬반대했었다. 엄마는 버섯을 벗어로 오해했었다. 평소 누나 행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엄마다. 버섯아가씨가 다 벗고 나가는 스트립경연인 줄 알고 펄쩍 뛰었었다. 어쨌든 머리에 든 거 없어도 인물 잘난 것 하나 가지고 고수입을 올릴 수 있다니. 엄마 입장에서는 크게 한시름 놓은 것이다. “아가씨는 뭐 필요한 거 없어요?” 형수가 호명한 아가씨는 막내 미란이었다. 미란이는 갓 20살을 넘겼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다. 아담한 체격에 귀여운 인상이다. 사실 하는 짓도 귀엽다. “핸드폰 좀 바꿨으면 좋겠어요. 내건 너무 구려.” 순딩순딩한 막내의 유일한 불만은 예나 지금이나 늘 핸드폰이다. 한긴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기종이 쏟아져 나오는 작금의 모바일 시장에서 대학입학선물로 받은 휴대폰이 아직까지 세나 손에 들려 있다는 사실이 기적이다. “세상 욕심 없는 막내 아가씨가 왜 휴대폰에만 그렇게 집착을 할까? 남자친구 없어요?” 형수가 사랑스런 눈으로 미란이를 바라봤다. 막내가 새침한 얼굴로 대꾸했다. “없어요. 그런 것.” “희한하네. 아가씨 정도면 남학생들이 줄을 설 텐데” 형수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다. 난 장난 삼아. “번호표 발행기라도 사주세요. 미란이하고 사귀려면 번호표부터 뽑고 기다리라고.” “오빠.” 막내가 비명처럼 악을 썼다. 미란이의 고함을 신호로 온 가족이 한바탕 크게 웃었다. 저녁을 먹고 난 뒤 가족들은 간단하게 다과를 나눴다. 나만 빼고. 가족들이 왕따를 시켰다기 보다는 스스로 내 방으로 퇴출됐다. 말이 다과타임이지 여자들 수다는 휴식도 끝도 없다. 멍청히 앉아서 듣고 있는 것도 고역이지만 잘못 엮였다가는 잔소리만 한 바가지다. 작년에 군대를 제대한 나는 표면적으로는 공시생 신분이지만 실제는 백수건달이다. 대학을 나오는 목적이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이라면 굳이 비싼 등록금 처 들여가며 대학간판에 연연할 이유가 없었다. 월급쟁이로 살아가기에는 공무원이 딱이다. 군대에서 배운 건 그거 하나다. 말은 그럴싸하지만 공부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난 특히 노는 게 체질이다. 군대에서도 그랬다. 남들은 하루가 천 년 같다던 병장 말년이 어찌나 꿀 맛 같던지 제대하는 게 다 서운할 정도였다. “조세호 뭐해? 언니 집에 간데.” 해란이 목소리다. 우리 집은 조씨 가문이다. 아버지는 조경남으로 연세는 53세, 조그만 무역상을 경영하고 있다. 지난주부터 미국 박람회에 참석해 계셔서 이 자리에는 안 계신다. 대신 은행계좌로 상당액을 송금하시는 것으로 축전을 대체했다. 어머니는 언급했듯 박을래 여사다. 두 분은 슬하에 2남 2녀를 두셨다. 첫째는 조세진으로 형이다. 나이는 서른, 현재 증권사 펀드매니저로 근무중이다. 배우자 간지연. 스물여덟, 결혼정보회사 커플 매니저다. 둘째는 누나 조해란. 스물 다섯이다. 여기까지가 아버지와 전처 사이의 소생이다. 셋째는 나 조세호. 스물 셋, 난 어머니 전 남편 소생이다.막내는 여동생 미란으로 현재 부모님 순수혈통은 이 아이 하나다. 누나 호출을 받고 거실로 나갔다. 형수는 언제 술을 먹었는지 볼이 발그레해져서는 미안해 했다. “아가씨는 대리 부르면 된다니까. 왜 도련님을 귀찮게 해요.” “집에 노는 인간 있는데 왜 대리를 불러요.” 노는 인간이란 다름아닌 나를 말하는 거다. 엄마도 누나를 거들고 나섰다. “맞다. 술 취한 여자가 대리라니, 돈이 문제가 아니라 위험하잖니.” “맞아요. 세상이 얼마나 험한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형수와 아파트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형수는 가끔씩 비틀거리긴 했어도 부축할 정도로 취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타고 온 검은색 세단 앞에서 내게 자동차 키를 건넸다. “그럼. 부탁해요. 도련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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