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결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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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야근하니까 먼저 자라고 말해두고서 현관 비밀번호 조심스럽게 누르고 싶다. 더 조심스럽게 치카하고 옆에 폭삭 눕고 싶다. 어렴풋이 깬 네가 안아주면 기다렸다는 듯 파고들고 싶다.
게임하는 모습도 구경하고 싶다. 묘하게 움직이는 입꼬리 미간이나 저작근을 살펴보고도 싶고 좀 지루해지면 “이래도 게임할래?” 하고 궂은 장난도 쳐보고 싶다. 차가운 배 위에 따뜻한 네 손 올리는 것도 좋다. 네가 손가락 꿈틀거리면서 애교뱃살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세상에 애교가 이렇게 과할 수도 없겠다고 답하겠다. 장보는 것도 재밌겠다. 전자기기랑 과자코너는 네 방앗간이고 주류코너는 내 방앗간. 겨우 정신 차리고 식재료 사려는데 또 시식코너가 발목 붙잡을 것 같기도 하다. 카트 안에 들어가는 장난은 이제는 못 칠 듯. 아프면 반드시 보고할 것. 병원은 같이 가야 덜 무서우니까요. 반대로 상대가 아파 보일 때에도 얘기해 주기. 예를 들면 내 보지에서 평소와 다른 냄새가 난다거나? 병원은 같이 가야 덜 무섭다니까요. 하루에 못 해도 30분은 마주보고 대화하고 싶다. 앞으로의 계획이든 지난 날의 푸념이든 최근 꽂힌 책이나 내일 날씨도 전부 다 좋으니까. 영 대화하기 버거운 날이면 눈싸움해도 되고. 아니면 엄지씨름. 주말에는 땀날 정도로 늘어지게 낮잠 한 숨 때리다가 뉘엿해지면 세탁기 돌려두고 코인빨래방. 이불 맡겨두고 근처 공원에 뒷짐지고 우리 아빠처럼 산책하기. 손 잡아도 되고. 그리고 뽀송한 빨래에 코박죽. 손이 너무 큰 내가 김밥 열 줄 말아 버리면 그 중 다섯 줄은 같이 먹고 나머지 다섯 줄은 어떻게 처치할지 머리 맞대고 고민하다가 한 줄 또 먹고. 끝이 안 보이는 돼지의 길. 가끔 집에 꽃냄새가 나면 좋더라. 항상은 내가 힘들고. 꽃들도 힘들 테니까. 너나 나를 위한 꽃이 아니라 집을 위한 꽃이었으면 좋겠다. 일단 기분 좋으니까. 시간이 흘러서 우리 사이에 더 이상 불꽃 같은 게 튀지 않더라도 그건 또 그대로 자연스레. 초연한 거 말고 조금 겸허하게- 라고 해야 하나. 그냥 같이 늙어가는 거. 근데 염색 필요하면 내가 해줄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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