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찰 없는 뇌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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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식과 수면이 습관이었던 적이 있다. 그 둘을 취미랍시고 나불거리는 내 아가리가 부끄럽지도 않았느냐 묻는다면 부끄러워 찢어발기고 싶었다 대답하련다. 그 당시에는 그것을 취미라 밝힌 적 없었으니까. 이제야 말할 수 있는 내 치욕.
뭐라도 필요했다. 고프지 않은 배에 닥치는 대로 뭐라도 집어넣고 난 이후의 나는 어땠을까. 텅 빈 가슴을, 터질 것 같은 배를 보고 있노라면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상태로 잠에 빠지는 게 내 취미이자 습관이었고 그것은 결코 내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절대 헤쳐나올 수 없는 늪이었다. 누구라도 필요해서 닥치는 대로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이름도 얼굴도 음성도 심지어는 자지마저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위에서는 여지없이 한숨이 나왔다. 연거푸 박음질 당한 후 다시 집에서 자위하는 것만큼이나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일도 없었다. 아래의 글에서처럼 동정이라도 필요한 적이 분명 있었다. 동정을 사기 위해 나는 더 극적으로 불쌍한 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나처럼 동정이 필요한 사람들 가운데에 돋보이기 위해서는 그래야 했다. 群鷄一烏. 그 과정에서 자해가 없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 의미를 물리적 범주에서 더 넓게 확장한다면 결코 나는 나의 과거를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남들 다 겪는 흔하디 흔한 안타까움이 나 혼자만 간직한 고귀한 아픔으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온정이라고 믿었다. 성냥불처럼 금세 타 사그라질 따스함. 해소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뭐라도 필요한 사람의 손이 닥치는 대로 아무거나 움켜쥐면 꼭 그렇게 마구잡이가 되어버리고 만다. 정성 들여 만든 요리는 음식물쓰레기가 됐고 어렵사리 건넨 위로는 꼭 어쭙잖은 동정이 됐다. 진심은 나에게 닿을 적마다 외면당했다. 누군가의 마음을 대하는 나의 태도란 이토록 잔인하다. 폭식한 다음날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극심한 갈증에 시달렸고 셀 수 없는 원나잇스탠드 이후에는 삶의 의지를 박탈 당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성냥불이 꺼지고 난 후의 내 모습은 구원도 갱생도 불가능한 만신창이였다. 치욕도 늪도 초라함도 성냥도 다시 없을 것이라 단언할 수는 없겠다. 그럼 또 누군가가 손을 내밀겠지. 어떻게든 살아지는 삶이라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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