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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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돌연 추워지니 온기를 찾게 되고 몸만 따뜻하면 또 한구석은 아련하게 온정이 고픈게 인지상정. 그래서인가.
사랑이 담긴 섹스를 하고 싶다, 하다 못해 애착이라도 담겨 있으면 너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다가. 글쎄... 지난 인연과의 섹스를 돌이켜보면 그게 애정이었는지 욕정이었는지 아니면 집착이었는지. 집착이라고 하면 나는 너무 소소한 사람이라서 바라지는 않지만 그런 때가 있기는 했다. 근데 애초에 사랑이 담겨있음을, 그 섹스들간 애정과 욕정의 변별성을 나는 알긴 하는걸까. 지나간 인연을 모욕하고자 함은 아니다. 인연을 욕정하는 것에 대한 부정도 아니다. 그저 내 인지력의 한계일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흘러가도록 둘 수 없어야 하는 것 아닐까. 섹스에 있어서 늘 욕정의 상태에 있는 것은 문제가 될만한 일 일지도 모른다. 욕정만 있는 상태에서 자위적 전념으로 인한 상처와 공허의 불가피함은 흔하지 않던가.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라고도 불리는 유명한 것에는 자기의식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 이 자기의식이라는 것은 상대를 희생해 나의 자립을 이루려하는 욕구라고 한다. 헌데 나의 자립으로 상대를 소멸시켰으니, 내 존재의 타당함을 위해서 다른 대상을 찾을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과정으로 인해 종속된 것은 나라고 느끼게 되고, 안정감을 찾기 위해 나를 인정해주는 무엇을 찾게 된다고 한다. 근데 인정받는게 어디 쉽나. 나 뿐만 아니라 너도 인정받고자 함은 당연한 이치. 인정받는다는 것은 생존과 같아서 서로의 욕구 충돌로 싸우게 되고 헤어지고 또 찾아나선다. 끝없는 변별의 시작이자 늘 겪는 관계의 맹점이다. 결국 자기의식은 다른 자기의식을 만나되, 너의 의식을 인정해야만 만족한다고 한다. 그런가. 때때로는 내 욕구로의 의식과 전념에, 인정으로서의 양보는 없었으니 상대는 공허하고 상처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겠다. 쌓일수록 서로의 인정투쟁에 지치고 각자 사랑의 노예가 되어 떠나거나 포기할 수 없어 애정의 노예가 되거나. 섹스로만 남는다면 인정의 노예가 되는걸까. 흠... 섹스에 무슨 이런 의미를 두나 싶기도 하지만 애정과 욕정 그리고 겉치레의 통속에서 이런 고민이라도 없으면 바라는 자격은 당연히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아... 아무래도 모르겠다. 일찍 알았더라면 좀 더 마음이 풍요로웠을까 하는 회한이지만 단초라도 얻었으니 어디인가. 앞으로의 인연에는 이런 생각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여지가 생겼음에 그저 감사해야 할 일 일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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