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워버릴 마지막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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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연의 시작은 당신이 쓴 글을 보면서 시작됐지.
나로 하여금 단번에 당신이란 사람을 궁금하게 만든,그 매혹적이고 똘끼 가득한 글. 난 섹스에 목메는 발정난 개가 아니라고, 그래서 느긋하게 시간좀 지나고 만나자고. 그리 하자고. 하고 싶었어 너에게 적당히 품위있는 남자로 보이고 싶었거든. 근데 당신이 궁금해서 견딜수가 없더라. 단 3일. 생리만 아니였다면 우리의 거리는 채 하루를 안넘겼을텐데.. 번호,사는곳 딱 두가지만 손에 쥐고 뭐에 홀린듯 당신에게 향했어. 어쩜 예상과 한치의 틀림이 없는지. 싸가지 없게 툭툭 내뱉는 퉁명스러운 말투 배려는 동네 댕댕이 한테나 줘버린 행동 처음보는 사람한테 외모 디스하는 인성질까지. 내가 보고,겪었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인간 부류. "뭐 이런..." 뭐 대충 요런 멘트 던지고 뒤돌아야 하는게 맞는데, 뭐가 좋은지 나는 등신처럼 웃고 있더라. "너가 만드는 별천지를 보고 싶어" 저녁 먹겠냐는 물음에 대답 대신 내가 뱉은 말이었어. 황홀까지는 아니었지만 서로의 자지와 보지는 꽤나 잘 맞았는지 섹스는 짜릿했어 확실히 당신은 당신만의 섹스 세계가 존재했고 나에겐 신세계였어. 그래서 때론 따라가기 벅차더라. 그래도 너와 함께하는 시간은 늘 즐거웠어. 그렇게 수개월을 넘게 사흘이 멀다하고 자지와 보지의 안부를 확인했지. "내일 보자" "생리 때문에 이번주는 안돼" "상관없어 내가 갈게. 저녁먹고 얼굴이나 보자" 우리 사이에 섹스 없는 만남이 가당키나 하냐는듯 특유의 퉁명스러운 말투로 "왜" 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래. 어느 순간부터 아니 첫만남부터 난 너의 보지 보단 얼굴이 보고 싶었고 음담패설 보단 안부를 묻고 일상을 얘기한 톡이 더 반가웠거든. '사랑이구나' 너를 처음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얘랑은 연애 같은건 절대 하지 말자. 다잡고 되뇌였는데 사람 마음이란게 어디 뜻대로 되던가. 안될걸 뻔히 알지만 난 사랑을 얘기 할수 밖에 없었다. 사랑을 품은 남자와의 만남을 너도 원치 않았으니까. "기다려줘"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근데 더 묻지 않았어. 자신한테 어떤 약속도 기대도 하지 말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너에게서 이렇게 희망을 기대할수 있는 대답을 듣다니, 그것도 너한테는 들을수 없던 친절한 말투로 말이야. 그 대답 하나로 너를 만난 이후 너와의 거리가 가장 가까워 졌다고 느꼈어. 그것만으로도 가슴을 '쿵' 치고 지나가더라. 희망을 품고 기도를 했어. 종교도 없는 내가 기도의 주체도 없이. 근데 기도라는게 원래 불가능을 가능케 해달라고 하는거 아닌가. 불가능은 불가능일 뿐이었다. 나에게 너는 사랑이었지만 너에게 나는 많은 섹스 선택지중 하나일 뿐이라는거. 그래도 사랑을 너에게 던지고 답을 기다리는 한달동안은 참 행복했다. 스무살에 그때처럼. 근데 참 야속하더라. 굳이 그런 충격적인 방법으로 이별을 고해야 했는지. 너의 의도인지 우연의 일치였는지. 의도였다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를 떼어 버릴수 없다고 판단했나.. 아니면 독한 마음을 먹고 나를 위한 배려였던가.. 여튼 의도인지 우연인지 모를 이별식 덕에 어린애 마냥 열병을 앓고 봉합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어. 이제는 수년이 흘러 기억속에서 조차 희미해졌지만. 아침부터 겨울비가 내린다. 백만년만에 카톡 친구 정리를 하다가 추천친구에 너의 이름이 있더라고. 내가 그리워서,혹은 생각나서 친추한건 당연히 아닐테고 아마 폰을 바꾸면서 드라이브에 있던 옛 전화목록을 다운 받은거겠지. 안부나 물을까 싶은걸 간신히 참았다. 혹시 술먹고 술기운에 톡을 보낼까 걱정돼 삭제까지 했어. 이젠 다 지웠다고 생각했는데 이러는거 보니 아직 조금은 남아 있었나봐. 이글을 마지막으로 깨끗히 지워야겠지. 이 편지 아닌 편지를 볼수는 없겠지만 잘 살았으면 좋겠다. 결혼은 했으려나? 아직 인연을 못만났다면 이제는 모난 사람은 그만 찾고 둥굴둥굴하고 너만 바라보는 사람 만나 사랑 듬뿍 받으며 행복했으면 해. 인생 끝자락 써 내려간 이름들 속에 너가 없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제 내게 남은 너의 티끌을 태워 버리려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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