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는 고백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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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은 네가 나를 떠나지를 않았다. 우습게도 온 데에서 네가 보였고 들렸으며 그건 결코 지워지지가 않았다. 아무도 만나지 않으면 내 고양이를 먼저 죽여버릴까 싶어 누구라도 만나야 했던 때였다. 닥치는 대로 아무나 만났다. 정말 아무나 만났다. 그 시기에 나를 만나 준 아무개들에게 미안함 그리고 고마움을 표하고 싶은데 닿을지는 모르겠다. 아무개들도 나름의 방법으로 나를 사용한 것이길 믿는 방법뿐이다. 편협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 빌 수 있는 진심의 염원은 고작 이렇듯 시시할 수밖에 없다.
아무개4 정도 되려나, 왜 죽지 않고 살고 있냐는 물음에 “아직 용기가 안 나서. 때 되면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라고 답했더니 호탕하게 웃던 사람이었다. 그 무렵의 언제나처럼 나는 상실ㅡ너ㅡ에 대해 주절주절 순서도 근거도, 아무런 논리도 없는 말들을 문자 그대로 지껄였고, 속칭 아무개4는 꽤 골몰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나는 그 사람을 잘 모르지만’ 으로 운을 떼면서 그가 말하기를, 너와 나의 방향이 달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던가. 풀어 말하면서 그는 덧붙였다. “이런 말하기 조금 조심스러운데, 그 사람은 그냥 너랑 fwb? 섹파? 같은 거 하고 싶었던 거 아닐까?” 내 기분이 어땠느냐면, 그동안 침잠해 있다가 드디어 수면 밖으로 나와 첫 숨을 내뱉은 것처럼 상쾌했다. 듣고 싶은 말이 과연 맞았나. 다른 사람들은 나를 위로했지, 그리고 어쩔 수 없다고도 그랬다. 나도 나를 위로할 줄을 알아서, 어쩔 수 없다며 스스로를 십수 번은 타일렀기 때문에, 함께 느껴 준 고통 속 그 고마운 말들은 결국 내 앞에 처참히 부서지고 말았다. 그런데 아무개4의 논증은 꽤 신선했다. 그리고 그 말을 과연 사실이라 단정하고 나니 너의 모든 말과 행동이 그에 끼워맞춰지는 것 아니던가. 그 후로 나는 지속적으로 가벼워졌다. 두통과 치통과 어지럼증이 사라졌고 아침에 눈을 뜨는 게 덜 괴로워졌다. 이기적인 동시에 되먹지 못한 치유법이지만 어쩌겠는가. 어쩔 수 없다. 한참 나중의 네가 ‘좀 더 취할 걸 그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고 했을 때 반가움에 눈이 커졌던 건 이와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네가 ‘스스로를 갉아먹고 싶지 않다’며 굳은 다짐을 내보이는 동안에도 나는 너의 결의를 응원하기는 커녕 지난 섹스를 복기하고 있었다고 이제야 고백하겠다. 고백하건대 내 자위에는 여전히 네가 함께인 채다. 너와의 섹스 또는 끝내 맺히지 못 했던 어떤 날의 것들을 돌이키기도 하고, 다시 없을 계절의 너를 상상하기도 한다. 뻔뻔하게도 미안하지는 않다. 무엇 하나 생각없이 뱉는 법 없는 네 앞에 나는 언제고 언제나 생각없는 생각들을 뱉는다. 그러나 적어도 응원이 필요할 때만큼은 무게와 온기를 함께 보내고 싶다. 그래서 나는 널 응원한 적 없다고 확실하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 네가 여전히 춥다고 하는 이유는 아마도 내 말에 담긴 게 아무것도 없어서 아닐까 하는데, 이 얄팍한 귀납은 곧 타박이 되어 돌아올까 그 상상조차도 이제는 웃음만 난다. 우스운 사람일까. 그래도 뭐, 어쩔 수 없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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