乏의 관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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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좆밥.” 그 날 가장 자주 들었던 말. 우스웠다. ‘감히 너 같은 게 나를 좆밥이라고 칭해?’ 하는 괄시에서 나오는 우스움이 아니라, 기껍고 반가운 마음에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이라고 하면 충분한 설명이 되려나. 뭐든 모자라지.
요즘의 휴일은 온전하게 쉬거나 아니면 온전하게 사람들을 만났다. 어중간한 법이 없었다. 그러니까 집안일은 뒷전. 내 집을 챙기는 건 뒤로인 채였다. 그냥 틈틈이, 먼지 쌓이기 직전까지 방치했다가 퇴근하고서 틈틈이. 그 날은 온전하게 쉬는 날이었다. 고양이를 쓰다듬다 언제 들었는지 모를 습한 낮잠에서 깨고 습관처럼 휴대폰을 확인했다. ‘너 뭐해 오늘’ 반가움은 늘 예상 밖에서 파생된다. 뭐, 아닐 때도 있었지만 그 날의 반가움은 그랬다. ‘헐 머야 어디야?’ 갑작스럽게 잡히는 약속을 달가워 하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 그러나 중요한 건 언제나 ‘누구’였다. 어디에서 무엇을 언제 왜 어떻게 하는지보다도 나는 ‘누구’와 함께인지가 항상 중요했다. 뒤집어 얘기하자면 상대에 따라서 나는 느닷없는 연락이 반갑기도 하고 아니면 귀찮아지기도 한다는 거. 제 편한 대로. 필요에 의해서. 어. 하필 이 타이밍일 게 뭐람- 하는 생각이 안 들었던 건 아니다. 분명히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줄기에 머리를 내어주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여지없이 따라붙는 ‘나 이래도 되나’. 지독한 상실감을 어떻게 다루는 게 좋을지 자문을 구하려 연락했던 것이 꽤 최근이었다. 체감으로는 불과 며칠도 안 된 기분이었다. 아니었지만. 좋은 이별을 공유했던 사이에 이 정도의 질문은 해도 된다고 판단했었다. ‘나 반갑지’로 던진 물음에 돌아온 대답은 ‘나쁜 사람’이었다. 웃기지. “너한테 연락했었어.” 아무리 되짚어도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아마 그 날 내가 취해 있었을 확률이 높겠다. 술이거나 밤이거나, 그게 무엇이었든. 이미 지워진 연락처를 다시 돌려받았다. 4년 전과 같은 목소리였다. 같은 음색에 같은 뉘앙스 같은 말습관. 고마워, 또 만나- 로 마친 통화에서 채워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공허 속으로 기어이 기어들어갔던 걸까. 그리고 잠시간의 공백. 어떤 타이밍이든 아무튼 반가운 사람이었다. 그게 언제든 그랬을 것이다. 그러니 주저 없이 어디냐고 물을 수 있었지. 과연 주저가 없었을까. 주저보다도 다시 마주한다는 반가움이 훨씬 앞섰다. 정말 반가웠다. 시력이 나빠 인상을 찌푸려도 얼굴을 분간하기 어려울 때가 태반인데, 걸음걸이가 아니더라도 저 멀리서부터 이미 알아봤다. 아마 그 애가 그 날 본 내 첫 표정은 환한 웃음이었을지도. 반가운 마음이 넘쳐흐를 때, 마주하자마자의 엇갈림 없는 포옹이 얼마만이었는지. “보고 싶었어!” 하는 말을 숨김 없이 하는 것도. “똑같애, 4년 전이랑.” “너가 뭔데 나를 판단해?” 웃음기 전혀 없는 표정에 차가운 말씨였지만 나는 노상 싱글벙글이었다. 악의 없다는 걸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거든. “어떻게 지냈어?” “방황하고 있지, 여전히. 너는?” “나도.” “응, 다행이다.” “뭐가?” “날 풀렸어, 완전. 이제 금방 봄이야, 그치.” “뭐가?” “아- 그냥, 같이 방황하는 거 반갑다구. 나 혼자만 하는 거면 쓸쓸하잖아.” “뭐가 봄이야, 추워. 나 내복 입고 왔어.” “잘했어. 달 엄청 밝다.” “어, 보고 있었어.” “달 진짜 오랜만에 본다.” 복기하면서도 타이핑하면서도 웃긴데, 우리는 언제나 이와 같이 맥락 없는 대화만 줄창 했던 것 같다. 남들이 듣기에, 읽기에 ‘저게 대화 맞아?’ 싶은 개연성 떨어지는 문장들의 배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대화 같지 않은 대화들이 편하게 먹히는 사람들이 있다. 그 애는 그런 사람이었다. 가고 싶었던 식당이 있다고 그랬다. 도착 시각도 장소도 불분명한 탓에 동행할지에 대해 메신저로 잠시 논의했는데 ‘상관 없어’ 하는 내 말이 우유부단하게 느껴졌나. 사실 본인의 우유부단함을 나에게서 투영한 것이라고 나중에야 그 애는 이실직고했다. 이러든 저러든 그 날의 금기어가 됐다. 나의 금기어는 ‘상관 없어’였고, 그 애의 금기어는 ‘미안해’. “작년에 유독 그랬던 거 같은데, 하나같이 다 미안하다더라.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그렇고 엄마도 그렇고. 특히 떠나는 사람들이 그랬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 게, ‘아, 내가 상대방으로 하여금 미안하게 만드는 사람인가?’였어. 대체 뭐가 그렇게 미안한 거야?” “음-” 미안한 거 알면 하지를 말든가! 하는 말은 차마 나오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면 ‘미안해’는 결국 차선이 되고 마니까. 나라고 해서 차선이라도 택하고 싶었던 적이 과연 없었을까. 그러나 나는 “너도 미안해 금지.” “그래, 너도 상관 없어 금지.” “근데 진짜 상관 없어.” “야.” “왜.” 정말로 상관 없었다. 뭐라도 먹이고 싶다는 그 애의 말 이전에 마음이 이미 고마웠으니 무엇을 먹든, 설령 먹지 않게 되든 상관 없었다. 식사 때이기는 했어도 실제로 배가 많이 고픈 것도 아니었고 한 끼 정도 거른다고 해서 큰 일이 나는 상태 또한 아니었다. 산책을 하든 실내에 들어가 앉든 아니면 그 애가 미리 예약해둔 숙소에 들어가 눕든 이 역시도 나에게는 상관 없는 일이었다. 문제는 장소가 아니잖아. “그러면 숙소 근처에서 먹을 거 사다가 들어가서 먹을까?” “그래도 되고.” “일단 그럼 숙소쪽으로 가자.” “그래.” 상관 없다는 말을 하지 않으려 의식하는 사람의 노력. 욕조와 샤워부스 중 욕조를 부탁하는 그 애의 목소리를 가만히 들으면서 벽 한 면을 장식하고 있는 에탄올 난로를 봤다. 불은 왜 고요를 고무시키는 거지. 가장 높은 층을 배정해 주었다는 고마운 인사를 뒤로 인포데스크에서 멀어졌다. 아늑하고 아득한 곳이었다. 그 애는 외투도 벗지 않은 채로 소파 구석에 몰리는 모양이었고 나는 오히려 침대 한가운데에 널브러져 있었다. 이보다 완벽한 주객전도가 있을까. “내가 예약한 거 같다.” 민망함에 덧붙인 말. “소파가 편해.” 그리고 고마운 거짓말. “미안하다는 말, 그 사람도 했었다.” “아.” 누구인지 부연하지 않아도 그 애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 때 썼던 글 읽어 볼래?” 그 애는 아무 말 없이 내 휴대폰을 받아들었다. ‘난 너 글 다 좋아’ 같은 아무런 상투적인 뱉음이 없어도 나는 좋았다. 아니지, 없어서 좋았다. 한참을 골몰하다가 그 애가 처음 했던 말은 “가양역에서 실종된 사람 얘기, 들어본 적 있어?” 그 사람의 블로그를 본 일이 있는데 꼭 그 때의 감정과 같다고 했다. 그 사람의 블로그는 나중에야 살피게 됐지만, “다른 친구 중에도 내 블로그 보면 꼭 자살 징후 보이는 사람 같다고 하는 애 있어. 걔 하나만 그래.” 하고 답했다. 가양역 실종사건의 전말에 대한 설명을 마친 그 애는 곧, “좆밥 같애.” 하고 웃었다. 어떤 이유로 그렇게 보였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일부분에서는 통감하고 있었다. “좆밥이니까 미안하다고 하지 마.” “너는 사람을 너무 좋아해.” “맞아.” “그게 얼굴에서 티가 너무 많이 나.” 관상학에 대해 공부했댔나- 얼굴만 봐도 대강 알 것 같다고 하는 말들을 평소에는 가볍게 듣고 흘리는 편인데, 그 애의 말이라 조금은 귀가 기울어졌다. 이 사람은 이렇고 저 사람은 저렇다고 했다. 머릿속에서 얼굴들이 잘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건지는 얼추 알겠더라. “그럼 나는 어떻게 생겼어?” “좆밥처럼.” “야이씨-” “신기 없는 사람은 ‘월만즉결 물성즉쇠’ 이런 말 못 해.” 오래 전의 내가 흘러가듯 했던 말을 마음 한 켠에 품고 지내 준다는 게 갸륵하도록 고마웠다. 깊게 고마울 일이었다. “그 말이 꼭 신기가 필요한 말이야?” “응.” “얼굴만 봤는데도 알아?” “모든 사람은 아니지. 너는 좀 알 거 같애. 숨김이 없어.” 알쏭달쏭했다. “근데.” “응.” “밖에서 돌아다녔던 옷 입고 침대에 눕는 거.”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확연하게 갈리는 일. 생활방식의 문제가 아니라면 내가 그동안 너무 무심했던 거였나, 그동안의 다른 사람들은 그럼 나를 참아 준 거였나. “헐. 그럼 벗고 누워?” “응.” “헐.” “나 그래서 소파에 앉아 있던 거야.” “헐.” “헐.” “그럼 너도 여기 누워.” “아-” 조금은 짜증이었나. “개편해.” 나만 죄지을 수는 없었다. “안 돼.” “그래, 그럼.” 나 혼자여도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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