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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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 눈물이 바닥에 떨어지기까지 얼마나의 시간이 필요할까요? 의미 없는 질문. 당연히 사람마다 다를 테고, 상황마다 또 다를 텐데 각각의 시간을 측정해서 평균값을 집계한다고 하더라도 달라지는 게 뭐가 있겠어요. 평균에 가까워지기 위해 또는 멀어지기 위해 노력할 방법도 없으니 말입니다. 의지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어쩔 수 없음 앞에 나는 매번 좌절만. 당신도 그렇지 않았나요? 아니라면 다행이겠다. 정말로 다행입니다.
잡설이었고요, 글 나부랭이만 끄적이는 주제에 불과하는데 간혹 실체와 견주기 부끄러울 정도로 추켜세워 주는(또는 속아 주는) 고마운 사람들에게 내가 보답할 수 있는 거라곤 역시나 글뿐이겠습니다. 또 다시 속이는 일일지도요. 그렇다면 기꺼운 마음으로 속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와중에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별 거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확실히 분명하게 별 거였던 어떤 머무름을 이제는 조금 흘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판단이 불쑥 들었어요. 이제는 그래도 되지 않나. “나도 글로 쓸 거야?” 하는 물음 속에서 내가 읽어내야 하는 것들은 분명히 정해져 있어요. 첫 번째로는 경계겠고, 두 번째는 기대에 따르는 실망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나도’라고 표현한 데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 질문을 하는 대부분은 이 곳에서 내가 어떤 글들을 써 왔는지 아는 사람들이었고 물론 레드홀릭스가 아니었더라도 종종 내가 글을 쓴다는 걸 유의깊게(어쩌면 겉핥기로) 살펴 준 사람들도. 하나도 빠짐 없이 고마운 사람들이라는 데에는 내가 어찌 부정할 수가 있을까요. 변함 없을 고마움. 그러나 우습게도 내 고마움에는 정도가 다 다르고 그 마저도 급이 나뉜답니다. 그 점은 미안해요. 나는 어쩔 방도 없이 이런 인간인 걸. 그렇지만 또 다시 고맙습니다. 내가 마지막으로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죄책감이었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만나든 생각을 읽고 몸짓을 읽고 나를 대하는 태도를 읽어요. 나와 그 사람이라고 다를 거 없었지요. 읽기 어려웠던 그 사람의 생각을 간결하게 풀어 낭독해 준 점이 특히 고마웠고 겁 많은 내가 놀라지 않도록 느릿한 몸짓과 걸음걸이로 부유물을 가라앉혀 준 것도 역시 고마웠는데 가장은 나를 대하는 태도였다고 단언할 수 있어요. 누군가의 행위에 대한 결과는 쉬이 비판 또는 지탄을 받게 마련인데 그 앞뒤로 서사를 덧붙여주면 동정 같은 게 따르지 않던가요. 동정은 곧 이해가 되고. 그 사람은 나를 더러 말의 무게를 아는 사람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과연, 나의 단어들은 힘없이 가냘프기만 했는데요. 그런데 이상하게도요, 그 사람 앞에서는 이상하게 나의 언어가 말과 글이 내 음성이 모두 힘을 얻어요. 기이하지 않나요? 이해로의 판로를 깔아준 셈이라고, 내가 아무렇게나 내던지거나 버린 서사를 그 사람은 주섬주섬 모아다 이곳저곳에 기워주더라고요. 눈부시지는 않았어요. 어딘가 촌스러움. 그 점이 갸륵하고 슬퍼서 나는 더 나쁜 인간으로 보이도록 내 깃털들을 쥐어뜯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하고 싶었거든요. 힘주어 말하건대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인 그걸 받을 만큼 나는 대단했던 적이 없어요, 단 한 번도. 단 한 번도. 애처롭도록 고마운 사람이에요. 슬픔을 공부하는 사람이어서였을까요? 못내 나에게 했던 말은 “너의 슬픔을 이해하는 일을 포기해서 미안해.”였는데요, 그 사람이 읽기로 내 슬픔이 얼마나 거룩하고 찬란해 보였길래요. 끝없는 죄책감에 시달릴 그 사람을 걱정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게요? 서로가 각자가 되어 결국 알아서 할 몫으로 남겨두어야겠지만 어쩌겠어요, 나는 이토록 이기적이라서 남을 위하는 일 없이 걱정만 나불거리는 걸. 내 마음이 덜어지도록 말이에요. 나를 외면하는 그 사람이 더 쓸쓸하지 않도록 하려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할까. 나 역시 외면하는 방법뿐인가. 조그만 내 머리로 도무지 나올 수 없는 답일 걸 알아서 저 역시도 포기할까 싶었던 적이 사실은 있었어요. 오직 포기하는 것만이 포기로의 응답이 될 수밖에 없나. 지금도 모르겠어요. 그 사람은 어디에서부터 왜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게 됐을까. 연어가 되어 거슬러오르다 보면 무언가 발견할 수 있지 않나 싶은 마음에 박차고 처음까지 가 보기도 했고 영영 저버린 인간이 되기도. 차라리 나도 같은 값의 죄를 지으면 그 저울이 평행을 이루게 될까 싶어 난자ㅡ결코 같은 값의 죄가 될 수는 없겠지요ㅡ한 적도 있었는데요, 그게 뭐가 칼이냐며 외려 나를 앞뒤로 살피는 그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그 얼마나 너덜거렸을까 경박스러운 내 가슴으로는 도무지 헤아릴 수도 없겠습니다. 그래서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다시 서로가 각자가 되어 알아서 할 몫이니까요. 나는 나대로. 처음으로 마주한 눈 앞에 참 슬프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나를 구하는 인사에 대고 ‘너는 슬픈 눈을 했네’ 하고 들쑤시는 것이 곧 결례일 거라는 생각에 그 슬픔 위에다가 화답을 곧장 덧씌웠더니 그 다음에는 나와 같은 색의 눈이 보이더군요. 반가웠어요. 기억력이 안 좋다는 것은 2H연필로 연하게 적은 글들과 같지 않을까 생각해요. 키워드만 러프하게 써갈긴 연습장 정도겠지. 브레인스토밍. 근데다가 내가 가진 지우개는 똥만 잔뜩 나오지 정작 잘 지우지는 못 하는 거라- 내 슬픔은 그동안 곧장 휘몰아치는 해일이 되어 나를 덮치기만 했는데 어쩌면 그토록 잠잠해서 고요할 수가 있나 경탄한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이제야 고백해요, 물론 말하지 않아도 당신은 이미 알았을 걸. 그 정교한 눈으로 내 이곳저곳을 살피며 읽어 주다니 영광이 아닐 수가 있을까요. 내 몸짓은 어땠나, 당신을 대하는 태도는, 그리고 생각은 어땠을까. 돌이켜 생각하면 진심이 아닌 적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내가 행한 모든 기만은 칼이 되어 무참히 난도질했을 게 분명한데 왜 아프지 않았다 거짓말한 걸까. 왜 내 아픔만 헤아렸나. 그 사람의 것을 짐작하려는 시도조차 나는 하지 않았나. 죄책감에서 기인한 거짓말이라면 그거 나한테는 이제 안 통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내 눈으로는 아무것도 감출 수가 없다길래요, 그럼 내 눈이 어떻느냐고 물었던 날이 있어요. 흥분, 기대, 두려움이라고 그 사람은 같은 순서로 답했는데 얼마나 정확했는지 그 뒤에 따르는 놀라움까지 그 사람은 아마 마저 읽어냈을 테지요. 내가 겨우 읽은 그 사람의 눈 안에는 기대와 흥분 빼고 두려움만. 이건 정확한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내 욕심 가득한 감정만 앞세워서 그 사람을 몰아세운 적이 분명히 있었고, 나의 이기심을 존중받은 덕에 그를 잃게 만들 뻔하기도 했어요. 실제로 두렵다고 그러면서 저지했어요. 두려움이 지켜낸 자아? 이건 좀 웃기다. 같은 날에 우리는 달을 봤는데, 시퍼렇게 밝은 달. 눈부시도록 추운 달. “너랑 달을 다 보네.” 하던 그 사람의 음성이 여전히 선명한 건 지금은 아닐지라도 나중에 가서야 작은 저주처럼 느껴지겠지만. 아마도 비둘기 같은. 쓰려던 것은 ‘내 생애 최고의 섹스’였는데 서두가 이렇게나 장황해진 걸 보면 내 집요함도 좀처럼 덜어지지 않는구나 싶어 우습고, 이 끈질김을 과연 누가 감당하겠나 싶어 조금은 비릿하기도 해요. 나조차도 버거운데. 아! 섹스. 그동안에는 질적으로 양적으로 부족함 없는 섹스를 해 왔습니다, 분에 넘치도록요. 저에게 무언가 특출나거나 빼어난 무언가가 있어서는 절대 아니고, 단순하게 좋은 운의 연속이었다고 생각해요. 역시나 그 사람과의 섹스도 이 좋은 운 덕에 이루어질 수가 있었는데, 대부분의 아무개들은 내 가슴이 얼마나 봉긋하고 피부결이 얼마나 매끄러울지, 뒤에서 내려다 보는 엉덩이는 또 얼마나 커다란지에 대해 궁금해 하던 반면에 섹스하고 싶다고 말하는 내가 손을 떨고 있었다는 점을 기억하고 동시에 걱정하고 있었다는 것이 그 사람의 차별점이자 내가 영영 고마워해야 할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찬가지로 당신의 손과 입술이 닿는 곳마다 달라지는 내 표정과 목소리를 읽어내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텐데, 나를 향한 전념도 고맙지 않을 이유 없겠지요. 원하는 것들을 잔뜩 선물받았던 섹스였어요. 슬픔뿐만 아니라 한 인간에 대해 공부한다는 것은 관심을 초월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단순할 수가 없잖아요? 암요. 섬세했던 완급조절도 좋았고요, 피임하지 않았음에도 한 치 불안함 없었던 적은 또 처음이었고 끊김 없이 어루만지고 보듬던 따뜻한 손과 음성은 결코 좋지 아니할 수 없었으며 정신 번쩍 들도록ㅡ그러나 나는 정신을 못 차렸고ㅡ 중간중간 터뜨려지던 마찰음 그리고 파찰음과 공부로써 의도한 건지는 몰라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킨십을 퍼부어주던 것도 가뜩이나 사랑스러웠는데요, 막바지에는 조금 놓아질 수 있도록 기꺼이 밀착되도록 한 것이 지금 생각하면 가득하게 고마웠습니다. 그마저도 내가 호소하던 어떤 방어기제 같은 것, 결국 또 핑계 때문에 어그러졌고 그래서 미안해야 할 것은 오히려 나였는데 도리어 내내 등 쓸어내리던 손이 조금은 그립기도 해요. 자기비하로 읽히면 어쩔 수 없지만 내 인생에서 잠시뿐이었다만 그런 온전한 이해를 어디서 또 만나겠어요? 음, 만에 하나 운이 또 좋아 만나게 된다면 반드시 그 사람의 이야기를 해 주고 싶어요. 꼭. 사정이나 오르가즘의 측면에서 본다면 꽝인 섹스였을지도요. 전례없이 그 사람은 사정하는 데에 실패했고, 나는 종종 있었던 일이라 크게 괘념하지는 않았지만 오르가즘이 없는 섹스였거든요. 옥신각신하던 신scene은 제법 귀여운 사람들처럼 보여요. 아무튼 여부를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나에게는 일생일대로 좋은 섹스였다고 자신할 수 있어요. 네, 섹스가 섹스 이상의 의미를 가진 적이 창피하지만 사실 그 때가 처음이었어요. 모르겠어요. 그 사람에게는 당혹스러움이었을까요? 다시 또 미안해지는데 모종의 핑계들로 그 사람의 품을 황급하게 떠났던 것은 아마도 내 오만이었을 거예요. 분명 다시 만날 거라고 확신했거든요. 내 확신은 곧장에는 현실이 되었다가 그 현실은 부서졌고 다시 지금은 그 파편들이 반짝이고 있다고 믿어요. 반짝이는 것들은 영원할 수 없고. 다시는 없을 나의 계절, 온통 가득한 편안함인 동시에 기꺼운 환대였습니다. 그래서 떠올릴 때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영영 머무르고 싶어지기도 했어요. 그러는 동시에 떠올리고 싶지 않아 왕왕 울었던 적도 부끄럽지만 있었습니다! 어디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 없다며 어린 애처럼 굴었어요. 그러나 이제는 조금 흘려보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어디에 있든 무얼 하든. 꽤나 고집스러웠던 걱정은 이제 조금씩 내려둘 수 있게 됐고, 아양은 하등 소용없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기도 했고요. 동행해 주어 고맙다고 말하는 그 사람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보답은 결국 잘 지내는 거더라구요? 누굴 만나든 혹은 설령 만나지 않든. 이제는 다가오는 것들의 눈길을 피하지 않고 나도 직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 같은 게 왜인지는 모르지만 생겼거든요. 보탬이자 버팀. 그래서 따뜻하고 든든해요. 욕심내서 바라자면 멀어져가는 것들을 한사코 거스르려는 내 욕망을 버리고 싶다 정도. 끝끝내 꺾지 못 할 한 가지는 아프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쯤이겠네요. 그런데 이 말은 꼭 강요가 되고 종국에는 거짓말을 야기하기도 하더군요. 그동안 나는 얼마만큼의 외면을 종용했을까 떠올리면 또 끝도 없을 테니까 이 역시도 함께 흐르도록 둘까 해요. 각자였던 우리가 서로가 되었다가 다시 각자가 되기까지 우리에게는 얼마나의 시간이 필요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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