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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스트 앤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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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할 수 있는 응답 중에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사랑해' 가 아닐까 싶은데, 언젠가 보았던 글에서처럼 결여에 대한 응답은 사랑. 이라는 답에 대한 공감은 보았던 글 이전의 감상에 대한 명료함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극 중 알리는 본능적으로 살아가는 남자인데 삶의 처절함으로 무력감을 느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건 나도 언젠가 노력 뒤의 절망감을 느껴봐서 일까. 5살 아들과 어떻게든 살고자 누이를 찾아가는 길에 버려진 음식이라도 아랑곳 않는 태도에서 그러함을 느낀 것 일지도.
누구에게는 본능이 어떤 내면의 죽음 대신 선택한 순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영화에서 스테파니라는 여자가 알리를 대하는 태도를 봐도 느껴지는 것 같다.

다른 인물인 스테파니는 불의의 사고로 두 다리를 잃는 여자인데 타인의 욕망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는 하지만 육체의 울타리 안으로 무심한 욕망을 들이지는 않는 사람 같아보인다. 그녀에게 섹스가 사랑으로 가는 의례 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알리의 무심한 섹스에 키스를 허용하지 않는 것과 언제든 하고 싶으면 출장 가능하냐고 물으라는 대답에의 상실감을 보여서일까.
어쨌거나 우리의 동정이 때로는 비참함 임을 떠올려보면 알리의 무심함에 외려 스테파니는 삶의 보편성 같은 것을 회복한다.
그런 무심함 앞에서도 기어이 알리의 생으로 걸어들어가는 이유는 역시나 사랑이 아닐까.
장소 자체가 상처와 다름 없는 곳을 다시금 찾게 하고 잘린 육체에 문신까지 새겨넣는 당돌함, 그리고 섹스할 때에 그 다리를 욕망 가득한 손으로 거리낌없이 움켜쥐는 알리의 손이 그녀를 온전하게 하는 모든 요소임을 거부할 수 없는 것은 결국 그녀를 키스하게 만들고야 만다.

반면 알리는 스테파니 곁에 머물지만 자신의 본능적 삶이 계속된 상실을 일으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그의 삶에 대한 태도는 가족에게 버림받게 되고, 홀로 있어야만 자리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같은 눈물을 보이고는 결국 아들을 떼어내버리는 상황으로 귀결된다. 더이상 그런 회피는 용납되지 않는다는 듯이 스스로의 결여를 직시해야만 하는 알리에 대한 시선은 가족마저 패배자로 보지만 스테파니만은 그렇지 않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은 여전한 자신의 사랑에 대한 응답의 요구일까.
있어야 할 장소를 확보하게 된 알리는 아들을 다시 찾고 이전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이지만 그것으로는 안된다는 듯이 아들을 죽음으로 잃을 뻔한 상황에 놓이면서 소중한 것의 상실을 체험한다.
그제서야 스스로의 결여에 대한 인식을 하는데 역시나 상대의 결여를 알 수 있는 조건은 나의 결여를 먼저 아는 것임을 다시 생각되게 한다.
어떤 이들은 나의 부족함을 인지함으로 더불어 살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이 삶의 고단함을 견뎌내게 하지는 않는다. 살아내게 하는 것은 특별한 결여에 대한 인정을 요구하는데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역시나 서로에 대한 특별한 인정, 결여에 대한 상호의 인정이 우리를 삶 앞에서 더 견뎌내게 한다는 것을 역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쨌거나 알리는 결국 죽음이라는 상실 앞에 놓이고서야 자신의 결여를 절절하게 인식하고 스테파니의 요구에 응답할 수 있게 된다. 그녀는 사랑한다는 말을 단 한번도 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맞세워짐에서 사랑해 라는 답이 그렇게나 무겁게 나온 것은 그 말은 그래야만 한다는 반증이 아닐까.

영화의 끝은 아들의 죽음을 주먹으로 깨부수려다 산산조각 난 뼈에 대한 말이 나오는데 내용은 이렇다.

- 인간의 뼈는 27개. 그보다 더 많은 동물도 있는데 고릴라는 엄지손가락 뼈 5개를 포함, 총 32개다. 어쨌든 손 하나에 뼈가 27개나 붙어있다니. 팔이나 다리뼈가 부러지면 몸에서 나온 칼슘으로 저절로 뼈가 붙고 더 강해지기도 하지만 손가락이 부러지면 절대로 완치될 수 없다. 펀치를 날릴 때 마다 통증을 느낀다.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어느새 갑자기 그 고통이 살아난다. 깨진 유리조각 처럼 나를 찌르고 또 찌른다. -

녹슬어버린 인생과 뼈의 고통은 언제나 결여를 상기시킬 것이고 그로 인한 사랑은 그대로 상대에게 전이되겠지. 산산조각나지 않더라도 늙어가는 뼈의 삐걱거림에 사랑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상투적임이 어찌 소중하지 않을까.
늘 실패하는 사랑 앞에서 이번 봄 만큼은 뭔가 달라지고 싶은 마음에 다시 들춰냈는데 역시나....
좋은 영화 한편 잘 봤다.
익명
내가 누군지 맞춰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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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023-03-08 19:18:52
저도 예전에 봤어요. 없음을 사랑한다는 이 비스무리한 구절이 생각나네요
익명 2023-03-08 15:44:33
삶의 보편성을 회복한다...
익명 2023-03-08 11:58:47
당신의 결여는 무엇인가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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