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방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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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눈길과 손 그리고 입술에서 몸까지 도달하는 마음 그리고 관통하는 결합.
둘로만 성립하는 둘도 없는 사이. 그런 것들을 생각하지만 사랑하는 사람 만지는 촉감 같은거 잊은지 오래 됐다. 어느 장소든 세상은 자신에게 가닿으라 말하고 쾌락마저 나에게 충실하라 한다. 채워지고 싶다 수없이 말해도 단 한번도 채워진 적 없는 모순들. 사랑의 실재에서 늘 미끄러져 상상할 수 밖에 없는 우리는 결국 혼자로 되돌아가고 말곤 하지 않나. 나에게 집중하라고 끊임없이 말하지만 각자의 중심으로 파고들수록 속박되어지는 지독함. 놀이부터 예술까지 남들이 만들어 놓은 탈출구를 아무리 탐색해도 확장된 것 같은 착각은 더 큰 감옥에 가두어두곤 하지 않았나. 지향점의 마지막은 결국 사람으로 향하지 않았을까. 보부아르의 선택과 여성적 해방에 대한 관점이 어쩌면 돌파구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녀는 여성의 사랑이 어떤 나르시스트 스럽다 했었던가. 상대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것이 자신에게로 돌아와 더 없이 사랑스러운 자신을 마주하는 것. 하지만 채워지기 이전에 먼저 채워주려함을 실천하는 것도 여성 아니었나. 진심을 내어주고 진심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발견하는 것. 나르시스트라 비유되고 착각되지만 그렇지 않은 것. 돌아오지 않아도 되는 공백 그 자체가 끊어지게 하지 않았나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채워줘야 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고. 관계 속에서도 내던지지 못하고 어떤 존재인지도 모른채 뭘 줘야할지도 모르면서 더 쥐고만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물며 손을 잡을 때도 입술을 포갤 때도 안길 때 마저도 스스로 놓지 않으려만 했었지, 내어주고 내맡긴 적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요구하면 다 던져 채워주면 됐던 것 아닐까. 서로 그렇게 내던져 필요로써의 존재감을 서로로 인해 확인했으면 되는 것 아니었을까. 혼자는 확인할 길 없는 부질없는 생각이 자꾸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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