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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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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잘 마셨어.”
사소한 것 어느 하나 가벼이 여기지 않는 그의 인사말에 ‘그라서 참 다행이다’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와 줘서 고마워.”
왕복 택시비랬나 편도 택시비랬나, 3만 원 정도라는 얘기를 듣고 꽤 놀랐었다. 아무리 야간 할증이 붙은 요금이라고 해도 이렇게나 거리가 먼 줄 몰랐다. 심적 거리가 가까워서인지 물리적 거리까지 가까운 줄로 알았다. 애초에 나는 그가 어디에 사는지를 몰랐다.
“이 돈 아깝다고 생각하면 너무 양아치 아니야? 매번 무전취식하기만 했잖아.”
그의 ‘무전취식’이라는 표현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면서 고개를 젖히고 키득거렸다.
“그래서 맛있었어?”
“맨날 먹고 싶지-”


“자꾸 젖어.”
택시를 타러 가는 길에 나는 투덜거렸다. 금방의 섹스가 보지에 남긴 여운은 실로 대단했다. 걸을 때마다 보지에서 가래침 같은 게 자꾸 비비적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가 ‘이런 얘기는 만나서 해야 할 것 같았다’며 운을 뗐다. 나는 눈치도 센스도 없는 사람인데. 그런데도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불현듯 오늘이 어쩌면 그와의 마지막 만남일 거라는 직감을 했다.

언젠가 꽤 오래 그를 안 만났던 적이 있었다. 딱히 마음을 먹고 거리를 뒀던 것은 아니니까 그저 바쁜 일정을 탓하련다. 그러다 오랜만에 사진을 보냈던가, 마침 그가 그러더라. 사라지려고 그랬다고. 덜컥하는 마음은 없었지만 정말 좋은 타이밍에 연락을 했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너 그대로 사라져버렸으면 나 엄청 섭섭했을 거야’
곰곰이 내 얘기를 듣고는 미안하다고 했다. 사라지지 않았으니 나는 괜찮다고 그랬다.

말을 잇는 그는 사정이 생겼다고 했다.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사정이었다. 납득할 수 없는 사정이라 한들 내가 어찌할 방도는 물론 없었다.
그의 말은 만남의 빈도를 줄이고 싶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눈치 없는 내가 했던 직감처럼 그는 내게 마지막을 고하고 있었다. ‘말이 자꾸 길어지네-’ 하고 멋쩍게 웃는 그의 모습에 나는 고마움과 안쓰러움을 동시에 느꼈던 것 같다.


이름도 연락처도 몰랐지만 그와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항상 유의미했다. 집을 가르쳐 줬던 날에 ‘그래도 돼?’ 하고 되물어 줘서 오히려 더 알려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항상 미안해하더라. 알려주기 쉽지 않았을 거라면서. 그 미안함과 고마움 가운데에 그에 대한 확신이 점점 더 굳어져갔다.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 (사실 이러한 확신은 한 가지 이유만으로 생길 수 없고 그가 나눠주는 그의 생각들, 사용하는 단어들의 배열 그리고 특히 나를 대하는 태도 역시 톡톡히 큰 몫을 차지했다.)
부끄러운 게, 항상 우리집은 어질러져 있었고 나는 그에 대해 민망해 했었다. 누가 보더라도 어지러운 집이 맞는데 ‘집 드럽지?’ 하고 물으면 웃음기 없는 얼굴로 ‘아니 전혀!’ 하던 호방함이 나는 고마웠다. 타이핑하면서 생각하건대 내가 그동안 보았던 그의 솔직함은 본인 얘기를 할 때에만 해당되는 거였고 상대를 위해서는 하얀 거짓말도 불사했던 것 아닐까.
아무튼 돌아가서- 방음이 잘 안 되는 구조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 그가 우리집에 오는 날이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아마 복도에 울려 퍼졌을 잘못했다고 비는 소리와 쉴 새 없이 때리는 소리만 두고 본다면 폭행으로 누군가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주인님’ 하는 외침 덕(?)인지 다행스럽게도 섹스 도중에 경찰은 고사하고 관리인조차 문을 두드린 적은 없었다.
그와의 섹스는 아팠다. 기다란 자지가 매번 자궁경부를 꾹꾹 누르는 탓에 아팠는데, 뭐랬더라- 걸레년이면 걸레년답게 벌리기나 하랬던가? 아픈 거 좋아하잖아- 했던가? 하면서 아무튼 이곳저곳을 때리고 깨물고 조르고 다루고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 정신을 쏙 빠지게 하는 다양한 자극에 정신 못 차리고 박혔던 것 같다. 사정을 하고 나서는 꼭 ‘많이 아팠어? 미안해’ 하는 그의 선량한 얼굴을 나는 좋아했다. 물론 그 얼굴보다도 그의 다시 발기해대는 자지가 쬐금 더 좋기는 했다. 섹스를 잘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나를 잘 다루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나를 잘 다뤘다. 내가 요구하지 않아도 뭘 원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의 말마따나 나 역시 자꾸 글이 길어지는데, 그의 모든 점이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고마웠다는 말이 하고 싶었다.
“전에 너가 얘기했던 거 기억나? 없어져버리면 공허했을 거라고. 그 얘기가 자꾸 생각나더라. 이번에 네가 엄마랑 살게 된 게 시기적으로 잘됐다는 생각도 들고 네가 의지할 곳이 생긴 거니까. 너가 전에 그랬잖아- 잠수타는 사람들.”
그랬지, 섹스를 한 직후 아무런 말없이 나를 벗어나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공허함을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조금은 이해가 됐다. 회피유형의 사람들이 비겁하고 괘씸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이 나에게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 않은, 혹은 설명할 수가 없는 또 다른 어떤 사정들이 있지 않았을까. 그랬겠지.(근데 그러다가 또 나와의 섹스가 생각나면 다시 연락해도 되었다. 그게 나를 이용하는 방법이거든.)
“사실 나 말고도 너는 다른 사람들 많으니까 내가 항상 보채고 조르는 편이었잖아. 그래서 그 생각도 잠깐은 했었어. 이미 나 아니어도 만날 사람 많으니까- 하는 생각.(그래서 잠수를 타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뉘앙스였다.) 미안해서 자꾸 구구절절 얘기하게 되는데 너 진짜 맛있어.(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이 잠수를 탔던 이유가 내가 맛이 없는 사람이 아니어서일 것이라는 말이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위로를 받는다는 게 조금 웃겼다. 그의 표현을 조금 더 생동감 있게 타이핑하자면 눈을 감고 눈썹을 치켜올리고 ‘진ㄴㄴㄴㄴㄴㄴㄴ짜 맛있다’고 했다.
“이 얘기가 어떻게 빌드업을 하려고 해도 못하겠더라고. 이렇게 통보해버리는 게 너무 이기적이잖아. 그리고 만에 하나, 없었던 일처럼 다시 너한테 연락을 하는 것도 얼마나 이기적이야.”
“아니야, 안 이기적이야. 그래도 돼. 너 내 연락처 모르지. 알려줄게.”
그치, 이별은 항상 ‘갑자기’일 수밖에 없다. 얘기해줘서 고마웠다. 말 안 해줬으면 나는 영영 몰랐을 테지만 그래도 이렇게 알려줘서.
“잘 될 거야. 너는 사람이 야물어.”
아무래도 내가 사기꾼 기질이 다분한 걸까. 야무지다는 이미지랑은 전혀 딴판인데.

“혹시 길 가다가 마주치면,”
“응- 모르는 척할게.”
“내가 이런 표정 지을게.”
그가 얼굴을 있는 힘껏 구겼다가,
“너도 그럼 이런 표정 지어줘.”
다시 활짝 펼쳐내었다. 그의 익살스러움에 나는 마지막까지 고마움뿐이었다.

“연락처 잘 가지고 있다가 또 연락해도 돼.”
말을 하면서도 아차 싶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것 외에 떠올릴 재간이 없었다.
“아니다, 연락이 없는 게 너한테는 더 좋을 수도 있겠다. 생각 엄청 많이 했겠다. 고민하느라고 수고 많았어.” 쉬이 말할 수 없는 고민을 혼자 끌어안는 동안 얼마나 괴로웠을지 감히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러면서 결은 다르지만 내가 아득바득 끌어안고 있는 그것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했었다. 많이 고민스러웠겠다.
“응, 나 고민 진짜 오래 했어.”
“왜? 내가 욕할까봐?”
“아니아니아니, 이해해줄 것 같았어. 지금처럼. 근데 막상 입을 떼려고 생각을 정리하는 게- 너한테 너무 미안하다.”
“왜 미안해?”
“나는 이렇게 섹스파트너가 생긴 게 처음인데 너를 만나서 너무 다행이었어.”
“그럼 미안함 말고 고마움만 줘.”
“응, 고마워.”
“시원섭섭?” 하고 혼잣말처럼 자문했던 그의 말을 자르고 “아니 그냥 섭섭하기만 해. 아쉬워. 엄청. 근데 자꾸 젖어.”
“취향이 좀 독특한 거 아니야?”
그런 취향은 아니었다. 들어찼다가 순식간에 빠져버린 자지를 그리워하는 거라고 해두지.


네 개피의 담배를 나눠 피우고 또 두 번의 포옹.

“집 어디야? 데려다주고 나는 택시타고 갈게.”
바로 앞이었다. 한 300m 앞. 걷는 동안에 우리는 말이 없었다. 그냥 가만히 그의 등을 토닥토닥.
“내 이름 말해준 적 없지. 내 이름 ㅇㅇㅇ이야.”
또박또박, 그가 알려준 그의 이름을 소리내어 불렀다. 낯설고 정다운 이름이었다.
“고마웠어.”
“응, 고마웠어, 나도.”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이제는 잔뜩 젖어 질척해져버린 보지를 느꼈다. 그의 우려와는 다르게 마음이 전혀 공허하지 않았다. 대신에 보지가 공허했다. 그래서 그렇게 자위하고 또 자위했다. 앞으로 당분간은 아마도 계속 자위를 하겠지-

얼굴을 못 쳐다보겠다던 그와 같이 나 역시 마지막을 인지해서인지 그에게 말을 잘 못 하겠더라. 잘 될 거라던 그의 확신에 찬 응원을 나도 그에게 돌려주고 싶었는데 말이지.
그리고, 징크스라면 징크스인데 내가 점찍어둔 식당은 꼭 확장이전을 하고 친구들도 계속 승승장구하더라. 뭐, 사람은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그것들 역시 우연의 일치겠지만 우연의 일치는 운명이 된다지 않던가. 그 또한 곧 승승장구하리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그러려고 마지막을 고했던 거니까.
자랑 맞다. 내 친구들 전부 멋있다. 가끔 장난스럽게 ‘멋있는 사람 아니면 나는 친구 안 한다’고 하는데 사실 빈말은 아니다. 얘는 이래서 쟤는 또 저래서 항상 멋지고 자랑스럽다. 그래서 팔불출이라는 말을 꽤 듣기도 하는데 뭐 어때? 사실인 걸.

그가 무탈하기를 온 마음을 다해 바란다. 매일이 더 좋아지기를. 다시 연락이 온다면 나는 반갑게 맞겠지만 그의 연락을 바라지는 않는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당분간 보라색 니트를 보면, 또 입으면 그의 생각이 문득 날 것 같다. 그가 다시 시작하게 될 금연 역시 나는 응원하려 한다. 그의 앞날이 찬란하기를.
익명
내가 누군지 맞춰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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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의 보라색 니트가 그 니트군요. 엄청난 추억이 묻은 니트시겠어요. 바라진 않아도 뭔가 그리움은 자꾸 남는 듯 한 글이네요. 매우 야하지만서도...
이 글을 읽을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어느정도 교감이 가능한 파트너가 있으면 참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쓰니님은 뭔가 상대방을 정말 매너있으신분으로 잘 만나셨었다는 느낌도 들구요.
오늘도 글 잘 읽었습니다~
익명 / ㄷㅆ) 그나저나 평소엔 썰게에 올리시다가 오늘은 익게네요
익명 / 맞아요 매너가 아주 좋은 사람이었어요! 그 니트 아직도 집에 있어요 ㅋㅋ 잘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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