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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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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입으로 말해.”
순순하게 인정하는 것. 누군가는 미덕이라고 할 테고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게 어렵다. 다른 건 다 고분고분한데 나는 꼭,
“잘못했어, 안 했어?”
“…….”
오물거리는 입술 바깥으로 네가 듣고자 하는 그 말을 토해낼 마음이 나에게는 전혀 없다.
“대답 안 하네?”
“안 해.”
너는 이미 나를 내려다 보고 있다.
“나 봐. 눈 봐.”
건조한 어조로만 미루어보자면 너는 아마 단단히 화가 난 사람처럼 비춰지겠지만 적어도 내 눈엔 아니다. 그래서 나는 네가 가소롭다고 생각한다.
“눈 안 봐?”
가소로운데도 눈을 볼 수가 없다.
그냥,
모르겠다.
“잘못 안 했어.”
겨우 꺼낸 퉁명스러움이란.
이걸 읽는 누군가가 뭘 그렇게 잘못했기에 추궁을 당하느냐고 물으면 나는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글을 빌어서 고백하건대 명명백백하게 내가 잘못한 일이 맞았다. 그러나 반항.
“안 했어?”
“어.”
“막 나가?”
“아니.”
“근데?”
“…….”
“대답해.”
네 얼굴이 바짝 가까워 올 적마다 입 안이 바짝 마른다. 근데 또 다른 곳은 바짝 오므라들고.
“너나 이씨,”
“‘너’?”
“어, 너.”
“개겨?”
“어.”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따박따박한 말대답을 거듭하니까 이제 드디어 네 눈을 볼 수 있게 된다. 미안함이나 상냥함이 서린 눈은 결코 아니었을 걸. 신경질적인 내 목소리는 눈빛에서도 투영되었을 텐데 아마 치켜뜨고 쏘아보는 눈.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네가 무겁다는 생각한 적 없었다. 분명 몸무게는 나보다 더 나가니까 적은 중량은 아닐 텐데, 주기적인 어떤 훈련으로 인해 익숙해진 건 아닐 것이다. 아마도 음, 와중의 배려라고 하지.
“이렇게 가만 있을 거야?”
“뭘.”
“언제까지 이럴 건데?”
“안 했어.”
다시 작아진 목소리와 그리고 어긋난 눈길들.
“눈 봐.”
“아이씨.”
나도 힘은 셌다. 네가 져 준 걸 테지만. 그래도 ‘힘이 세다’고 평할 만한 객관화된 수치가 나에게는 있었다.
네가 져 준 걸 테지만 나는 일종의 신음 같은 기합과 함께 상황을 엎어 버린다, 문자 그대로. 깔려 있던 내가 이제는 너를 내려다 보고 있다. 위에서 바라보는 얼굴은 이렇구나. 나는 짐짓 매서운 눈을 한다. 너는 꽤 둥그런 눈빛을 하고 있다. 여유인가. 할 테면 하고 싶은 거 얼마든 다 받아 줄 테니 해보라는 말이 들린 것도 같고. 아닌가.
“잘못했어, 안 했어?”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진부해. 네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꼴이 스스로 우습다고 생각한다. 터질 뻔한 웃음을 참으려 나는 눈에 힘을 더 부릅 주고.
“응, 잘못했어.”
이건 내 예상에 없는 시나리오다. 안 했다고 바락바락 대들어야 내 계산에 맞는데. 사실 당황스럽다. 그러나 주춤하진 않은 것 같다. 네 양손은 이제 내 손에 포박당해 있는 상태가 된다. 지리적 우위를 선점하는 게 이렇게나 중요하다니. 지난 시간들이 별안간 억울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억울한 만큼 네 손목을 쥔 손을 더 단단하게 붙든다. 피가 안 통해서 손이 저리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꽤 나중에야 들었는데, 후의 나는 그에 대해서도 사과를 대차게 했지. 아무튼-
“뭘? 뭘 잘못했는데?”
네가 망설이거나 머뭇거리는 틈을 비집으려 나는 호시탐탐. 너는 근데 다 꿰차고 있는 얼굴이더라. 둥그런 눈이 이젠 음흉한 미소를 띤다. 나는 불호령을 하려고 마른 침을 삼키는 중이다.
“꼴렸어. 존나 꼴려.”
“어? 왜?”
우습다. 우스워 죽겠다. ‘어? 왜?’라니. 제 아무리 겁 많은 토끼라고 하더라도 콧방귀를 뀌겠다. 벙찐 얼굴일까. 자못 창피해지는데. 아 병신, ‘어? 왜?’라니. 왜 당황했어 왜, 하고 스스로를 잠시 꾸짖느라 아귀에 힘이 풀린 걸까. 다른 때는 몰라도 적어도 지금의 이 위치에서는 너를 완벽하게 포박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오만에 불과하다.
상황을 엎었다고 생각한 것 역시 내 오만. 너는 언제나처럼 져 준 거였고, 이제 모든 게 다시 원위치가 되고 만다. 나는 힘이 세지만 너는 나보다 훨씬 더 셌다. 딱 똑같이. 대신 너는 이제 한 손으로 나를 가볍게.
언젠가처럼 나는 다시 파들거리며 떨고 있다. 물에 할딱 젖어 버린 조류.
“왜, 아까처럼 또 해 봐.”
“…….”
나는 다시 합죽이.
“안 해? 해 봐. 잘하더만.”
“…….”
미치겠다. 지리적 우위의 선점. 나는 다시 속수무책의 상태가 된다. 이젠 턱이 덜덜거린다. 그 때에야 비로소 네 눈이 무섭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지도. 겁이 났을까, 숨이 얕아진 걸 네 말을 듣고 깨닫는다.
“숨 제대로 쉬어.”
“제대로, 쉬고, 있어.”
“야.”
“왜!”
“어어?”
“뭐!”
“어, 그래. 해 봐, 아까처럼. 다시 추궁해 봐.“
“안 해. 너나 해.”
“넌 진짜.”
이젠 얼굴뿐 아니라 몸까지 바짝 밀착해 온다. 가슴에서부터 배꼽과 허벅지 그리고. 뭐, 순서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 얼굴이 다가오면 몸도 가까워 오고, 몸 뒤에 마음이 따라가던가. 아니지. 순서? 무의미.
응, 너는 꼴릴 대로 꼴려 있다. 나중에, 사과를 마치고서 조금 풀어진 상태에서 나는 너를 그렇게 놀렸다. 화내면서 꼴리는 변태 새끼. 그 말에 너는 발끈한 척, 다시 나를 가볍게 가볍게 가볍게.
“진짜 말 드럽게 안 듣지.”
사실 누구라도 비슷할 텐데, 이런 압박이라면 견디기가 힘들다. 분위기를 압도하는 것도 그렇지만 내가 지금 얘기하려는 압박은 그러니까, 응.
“마지막이야, 대답해. 잘못했어, 안 했어.”
나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답할 생각이 전-혀. 그리고 너 역시도 이제는 나를 봐 줄 의향이 전혀. 그러면?

아- 난 이걸 기다렸나. 네가 내 안을 꿰차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입을 그렇게나 앙다물었나. 덜덜 떨리던 몸이 너를 끌어 안으니 금세 잦아들었다.
“좋아.”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인가.
“좋아?”
너는 버르장머리 없는 나에게 적어도 잘못을 인정하기 전까지는 결코 좋은 걸 줄 수 없다는 듯 홱 멀어진다. 인정은 이렇게나 어렵게 얻어지는 것인가. 
“가지 마.”
“너 대답 안 했어. 그리고 안 가니까 이제 말해.”
“해주면 말할게.”
“뭘?”
“아!”
생글 웃는 네 앞에서 나는 답답하다는 듯 발을 한 번 크게 굴린다. 매트리스 안에 숨어 있던 스프링이 크게 울린다.
“너 진짜 이럴래? 막 나가지, 이제? 잘못한 건 넌데 어디서 적반하장이야?”
“…….”
넌 신경질적인가. 글쎄. 일단 나는 맞다.
“잘못했어.”
“뭘 잘못했지?”
우물우물거리던 입술은 아직 채 식지 않은 만행들을 조그맣게 읊어낸다. 응, 응, 우물우물, 미안해, 응. 맴돌던 목소리에 이제 조금은 힘이 붙는다.
“안아 줘.”
“너가 안아.”
허락의 말은 듣는 사람이 기쁠까 아님 하는 사람이 기쁠까. 애초에 견줄 필요도 없겠지. 다같이 기쁘면 그걸로 그만일 건데.


“진짜 꼴려서 잘못했다고 한 거였어?”
“진짜였겠냐.”
“뭐야. 나 웃을 뻔했는데.”
“넌 잘못했다고 잘만 하더라.”
“너가 닦달했잖아.”
“꼴렸냐?”
“아니.”
“‘아니?’”
“꼴렸어.”
“왜?”
“혼나면 꼴려.”
“어이, ‘화내면서 꼴리는 변태 새끼’?”
“‘혼나면서 꼴리는 변태 새끼’.”
“혼난다.”
“혼내 줘.”
이제 네 눈은 상냥해진 모양이다. 내 눈은 그럼-
익명
내가 누군지 맞춰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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