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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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시루처럼 사람이 빡빡하게 많은 정도는 아니었고 각 좌석 앞에 사람 한 줄씩 있는 정도. 그러니까 엉덩이끼리 붙지는 않았으니까 비집고 들어가면 다음 칸으로 갈 수야 있겠지만 특별하게 급한 용무가 아니면 “굳이?” 또는 “뭐야?” 하는 짜증 섞인 눈초리로 쏘아볼 법한.
좌석 각 끝에는 광고물이 게첨된 게시판들이 있는데 나는 그 바로 옆에 서 있었고. 그러니까, 임산부 배려석 옆자리의 앞에 서 있었다고 하면 되려나. 운동하기 시작하고서부터는 괜히 손잡이를 안 잡고 오기 부리면서 발바닥으로 지면을 움켜쥐면서 중심을 잡으려고 하는 버릇이 생겼고, 지하철 안에서 굳이 휴대폰을 보는 편은 아니다. 그냥 좋아하는 노래 들으면서 바깥 구경하는 것도 좋아하니까. 우산 쥐고 휴대폰 가방 안에 넣고 그냥 멍- 어디에서 탄 사람인지는 모르겠는데 내 옆에 자리 비어 있으니까 게시판 앞에 서도 됐을 걸 굳이 비스듬히 내 뒤로 몸을 반쯤 겹쳐서 서더라고. 겹친 건 어떻게 알았느냐면, 게첨된 게시물의 배경이 어두워서 게시판이 마치 흑경처럼 그 사람이 비쳐 보이니까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내 정수리 바로 위에 위치한 손잡이를 잡고. 게시판이 아니더라도 알 수는 있었다. 온도차. 막 다짜고짜 바짝 붙는 건 또 아니라서 처음에는 아 그냥 선호하는 자리가 있나 싶었다. 점점 또 가까워지니까 아 자리가 좁은가? 나는 몸을 앞으로 기울였는데 그럴수록 또 붙어 막. 흠 나도 이제 한계인데, 여기도 좁아요 님아 하는 마음으로 몸을 뒤로 기울이니까 버티는 건지 뭔지 더 밀착됐다. 사실 내 뒤에 섰을 때부터 설마? 하는 마음은 있었는데 으…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 구간은 아니라 몸은 점점 붙고, 졸지에 내 어깨 위로 그 사람이 쥐고 있는 휴대폰이 곁눈질로 보이고. 제3자가 보면 뭔 동행인 줄. 이제는 해도 져서 창 밖도 어두웠다. 반쯤 겹치기는 했어도 나란하게 서 있으니까 게시판을 보면 눈이 딱 마주치는 상황이었고. 눈 보는데 그 사람도 나를 쳐다본다. 그러니까 간접적으로 계속 아이컨택중. 나는 시발 그만 좀 바짝 붙으라는 의미로 쏘아본 건데 설마 그린라이트라고 생각했을까. ㅠ으휴 내 왼쪽에 서 있던 여자가 몇 정거장 뒤에 내리길래 그 자리를 이제는 내가 꿰찼다. 이젠 안 붙겠지, 이젠 좀 넓어졌죠? 하고 다시 검은 창을 통해서 눈을 보는데 오우 이거 눈싸움인가. 정말 그린라이트라고 생각하나 봐. 또 고요하게 추격전. 심장이 두근거리지도 않았고 얼굴이 빨개지지도 않았다. 주먹이 쥐어지지도 않았음. 순간 머리가 팽팽 도는 기분인데, 앞에 앉은 사람한테 “초면에 이런 질문 실례인 거 알지만 혹시 제 옆에 서 있는 사람이랑 제가 동행처럼 보이시나요?” 물어볼까, 아니면 얼굴 홱 돌려서 “이제는 자리가 좀 넓어진 것도 같은데 자꾸 따라붙으시니까 불편해요.” 하고 웅변하는 듯이 힘주어 얘기해볼까, 신고하는 건 조금 두려웠다. 일을 키우고 싶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런 적이 없다고 단지 좁았을 뿐이라고 잡아떼면 그만. 증거 있어? 아니 없어. 가방에서 그제야 휴대폰을 꺼냈다. 키패드를 열고 내가 누른 숫자는 1 두 개 그리고 2 한 개. 통화버튼은 아직 안 누르고서 그 상태로 홀드키를 눌러서 화면을 다시 끄고서 손에 쥐고 있었다. 바짝 옆에 붙어 선 데다가 나보다 키도 훨씬 컸으니까 내 휴대폰쯤이야 아주 쉽게 볼 수 있지 않았나. 나 아직 뭐 대단한 걸 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10센티 이격. 내 휴대폰에 띄워진 숫자를 본 그 때가 그린라이트가 구린라이트로 바뀌는 순간이었으려나. 다시 창을 통해서 눈을 보는데 이젠 죄 지은 똥개새끼가 되어 있더라. 그 사람 정수리 위에는 다음역을 안내하는 전광판이 있기도 했고 이제야 나는 좀 얼굴이 궁금해졌다. 사실 애초부터 어떻게 생겨먹은 놈이길래 이 따위지? 궁금은 했는데 솔직히 두려웠다. 마주하는 얼굴에 어떤 표정이 지어져 있는지를 모르니까. 근데 이제 다음역 확인하는 정도는 괜찮잖아요, 얼굴 한 번쯤 보는 정도는. 아까까진 분명 뜨거운 눈맞춤을 지속하던 사이였는데 말이지, 비록 게시판이나 창을 통해서였지만. 아주 머쓱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내가 돌아봄과 거의 동시에 그 사람도 다음역을 확인하더라. 그래, 창피한 건 줄 알면 다음에라도 내려라 하고 마음 속으로 빌었다. 근데 내리진 않았고. 사람들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고 통로도 조금 넓어지니까 옆 칸으로 건너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창에 비친 내 눈에는 화밖에 안 보이던데. 친한 친구들 말마따나 진짜 험상궂었다. 짙은 다크서클에다가 높은 습도에 제 멋대로 꼬불거리는 머리카락. 그냥 찌든 얼굴. 아 요즘 웃는 표정 연습중이었는데 덕택에 다 망했고요. 곧장 친구한테 카톡으로 야 나 성추행 당했다 ㅋㅋ 근데 답장이 없으니까 또 괜히 서운한 거 있지 ㅜ 서럽진 않았고. 몇 정거장 더 지나고 사람들 더 내리고서 이제 좀 한산해졌다. 빈 자리도 보이고. 근데 나는 에스컬레이터 바로 앞에서 내리고 싶단 말이지. 이젠 그 새끼 없지 않을까 설마 있으려나 아 있으면 모르는 척해야 하나 아님 끝까지 또 꼬라봐야 하나. 모르겠고 나도 다음 칸으로. 이젠 주객이 전도돼서 내가 추격자가 된 건가. 전복되는 데에 대한 쾌감을 나는 여기서 느끼네, 좀 이상하다. 아! 도망 간답시고 간 게 겨우 두 칸이었다니. 그리고 량과 량을 잇는 문이 열리자마자 고개를 들어 화들짝 하고 쳐다보더니 눈을 마주친 것도 그렇다고 안 마주친 것도 아닌 요상한 모양새로. 고개를 숙였다가 올려다봤다가 2초 남짓한 시간에 그렇게 쩔쩔. 그렇게나 벌벌 떨 거면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부비적거린 거야. 파워워킹으로 한 3개 칸을 더 건너서 이제는 영영 빠이. 설마 나 내리는 역에 따라 내려서 집까지 따라올까 싶어 출구를 나서면서 뒤돌아보긴 했어도 꽤 침착했다. 이렇게 또 어른 되는 건가 기특하다. 스마트워치로 심박을 확인해도 꼴랑 60bpm. 차분해도 너무 차분한데? 눈물이 나지도 않았고 그냥, 그냥. 집 엘리베이터에서는 또 반성했었다. 평소에 하던 자위가 좀 힘들어져서 며칠 전엔 소재로 지하철 안에서 당하는 상상을 하긴 했거든. 현실이 됐다는 거 전혀 기쁘지도 신기하지도 않았고 그냥 조금 안됐다고 생각했다. 침대에 누운 상태로 양말 벗어던지고 그대로 누워 있다. 충분히 차분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은연 중에 근육들에 힘을 주고 있었던 건지 누우니까 좀 쑤신다. 등척성 수축운동 ㅋㅋㅠ 오늘도 고됐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일 비일비재할까. 난 좀 오랜만이었는데. 어떻게들 대처하시나요? 무작정 소리지르는 거 나만 미친년되기 딱 좋은 것 같아서, 또 그럴 용기가 없어서 못 하겠어요. 평소엔 목청 엄청 큰데 ㅋㅋ 저녁은 뭘 먹어야 좋을까요 사실 배도 안 고픔 아니 사실 고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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