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ked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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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런 게 있었네.”
네 걸음을 멈추게 했던 것은 타코야키 냄새였다. 내 걸음이 멈추지 않을 이유 또한 없었다. 눈알 두 쌍이 서로 마주치자마자 우리는 씨익 웃었다. 키오스크 주문을 마치고 앉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고백했다. “깜빡하고 말 안 했었다.” “뭐?” 꼭 이런 건 말로 명시하기가 어려워. 왜일까. 나는 똥마려운 강아지 또는 잘못 저지른 강아지처럼. “아.” 너는 곧장 휴대폰을 꺼내 들고는 어떤 앱을 실행시켰고, 네 손가락이 화면을 오르락내리락 문지르는 동안 나는 움찔거리는 몸을 안정시키려고 애썼다. “참아 봐. 여기 있는 동안만.” 표정 관리가 안 됐다. 언젠가 누군가가 ‘‘스불재’라고 알아?’ 물은 적이 있다. ‘스쿼트는 불시에 재깍재깍?’하고 답했다. 오답이었다. 스스로가 불러온 재앙. 아, 이건 그럼 스불쾌인가. 스스로가 불러온 쾌감. 자처한 고문. 땀흘리며 타코야끼를 열심히 굴리는 사람을 앞에 두고서 다리를 배배 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는 내 관리되지 않는 표정을 보면서 킬킬거렸다. “노래 좋다.” 선곡을 좋아해 주면 뿌듯하지. 뭔들 아닐까. 너랑 있으면 나는 자주 뿌듯했다. 타코야키와 편의점 위스키, 아몬드버터. 챙겨 온 모든 것을 늘어놓기에 1인용 탁자는 비좁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트리스 하는 기분으로. “이거 맵다.” “응, 얼얼해.” “얼얼한 입으로 하면 거기도 매워져? 해본 적 있어?” 나는 궁금한 걸 그대로 두는 법이 드물었고, 너는 궁금증을 자리에서 즉시에 실현시켜 주는 사람이었다. 너는 벌떡 일어났다. 음, 중의적 표현 맞다. “음. 어, 진짜 얼얼해.” “아파?” “좋아.” 아몬드버터는 내 예상보다 훨씬 뻑뻑했다. 너는 꾸덕해서 좋다고 했다. 글쎄, 나는 누군가가 옆에서 챙겨주는 것이 아니면 굳이 내가 찾지는 않을 듯했다. 아니면 유지방 함량이 높은 다른 음식이랑 베이글에 함께 발라 먹으면 그건 좋을 듯하고. “너는 언제 꼴려?” 아마 내가 먼저 물어봤던가. “나는 너가 야해질 때. 존나 발정날 때.” 어렵지 않았다. 사실은 거의 항상 그랬다. “너는?” “나는 상대방이 나로 인해서 꼴려 있을 때.” 이건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리 좋은 사람ㅡ꿈에 그리던 이상형ㅡ을 만났다고 한들 그 지속성은 항상 유한하기 마련이고, 우리네들은 생각만큼 한결 같지 않다. 그럴 수 없다. 이상형은 그런 이유에서 무의미하다. “어릴 때, 그 때 만났던 남자친구가 일이 진짜 많았거든. 당연한 피로인데 나는 그걸 이해를 못 했었어. 바보 같지? 나를 보고도 발기를 안 하면 ‘아, 이제 내가 더 이상 안 꼴리는 건가.’하고 자괴감 느꼈다. 그게 외적이든 내적이든 어느 요소든 나한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었어. 남자친구가 엄청 착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 달래고. 원래도 피곤한 거 티 안 내는 성격이었는데 내가 자꾸 투정하니까 더 그랬던 거 같아. 그 사람 강한 척하도록 내가 내몰았었어. 그러면서 하기 싫을 때도 분명 있었을 텐데, 쉬고 싶고 혼자이고 싶을 때 있잖아. 그럴 때도 나한테 봉사하려고 그랬다.” “응.” “근데 감정이, 같이 지내다 보면 더 전이가 빨라지잖아. 안 내켜 하는 섹스하려고 하면,” “바사삭?” “음, 그럴 때도 있었고 그냥 내가 밀어냈어.” 내키지 않는 기꺼운 섹스는 나에게 가엾은 것이었다. 그 때엔 고마운 줄을 몰랐다. 당연한 것들이 당연한 이유에 대해, 당연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나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네가 꼴려 있어야 내가 발정나는 건지, 내가 발정이 나 있어야 네가 꼴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말을 아꼈던 것은 ‘금기’였다. 그러니까, 꼴리면 안 되는 상황에서 나는 꼴린다. 이를 테면 아까의 타코야키 판매점이나, 아니면 지금처럼 고속버스 안에서나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의 만원지하철. 섹스와 전혀 무관한 공간과 그리고 관계 속에서. 친구들 몰래 하는 손장난 같은 것들. 오래 전에 너에게 물어봤던 것 중에 하나, 섹스 판타지. 내 섹스 판타지는 상대방의 판타지를 모두 실현 시켜 주는 것이었다. 세계 평화에 버금갈 만큼 허무맹랑하고 말도 안 되는, 그야말로 뜬구름 잡는 헛소리였다. 너는 내가 괴롭힘 당하는 걸 보고 싶다고 대답했었다. 마찬가지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네 말에 의하면, 고도수의 술을 삼키고 난 직후의 펠라치오는 시원하댔다. 아까도 그랬지만 걱정했다. 길지 않은 걱정이었다. 어릴 적, 불닭볶음면 소스가 눈에 튀었을 때 나는 오래도록 울었거든. 점막에 닿는 자극적인 것들. 너도 울게 될까 봐.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네 관심은 거기에 있지 않았다. “친구 부를까? 이렇게 빨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뒤에서 박는 거야. 어떨 것 같아?” 섹스 도중에 종종 너는 다른 사람을 불러들였다. 그동안의 네 말은 실체 없이 내 머릿속에서만 존재했다. 그렇게 너와 단 둘이서 하는 섹스는 종종, 세 명이 되었다가 다섯 명, 언제는 또 스무 명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공중변소 또는 정액받이가 됐다. “상상했어? 보지 존나 질척거리는 거 봐.” 그동안의 네 말은 내 상상력을 촉진했다. 친구를 불러도 되느냐는 물음에 그 날도 나는 정신없이 “응.” 했던 것 같다. 너는 내 뒤통수를 눌러 호흡을 제한했다가, 발을 동동 구르는 나를 보면서 키득거리다가, 마치 살아 있는 오나홀처럼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고 허리를 앞뒤로 움직였다가, 언제인지도 모르게 가방을 부스럭거리고는 안대로 눈을 가리고, 그 다음에 차례로 내가 입고 있던 나시의 끈을 내리고 방울이 달린 클립으로 내 젖꼭지를 옥죄고, 목줄을 채우고. “친구 지금 온대. 걸레 되면 진짜 좋겠다. 기분 어때?” 그 때까지만 해도 정말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으응, 박아줘.” “박아줘? 양쪽에서 박아줄까?” “응, 존나 다 쑤셔줘. 엉망으로 만들어줘.” 정말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던 건, 정말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인한 걸까. 아님 믿기지 않을 정도로 벅찼기 때문일까. 뭐가 됐든 술이 하나도 오르지 않았다는 것은 나에게 꽤 심각한 일이었다. 정말로 너의 친구가 온다고 한들 맨정신으로는 마주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 술 더 마실래.” 내가 바라던 건 병째로 나발이었는데, 너는 조심스러운 손으로 컵을 건넸다. 눈 앞이 가려진 채로 네가 건네 주는 술을 들이켰다. 평소라면 너댓 번에 나눠 마실 양을 한 번에 다 쏟아붓고도 어지럽지 않아 더 다급했다. 정말이 아니더라도 너와 취한 섹스를 한 게 오래였으니까 밑져야 본전이지 않을까 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무렵에 네가 내 어디를 어떻게 만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정확한 기억은 얼마 지나지 않아 벨이 울렸다는 것, 그리고 너는 다시 조심스럽게 나를 침대 위에 눕혔고 “기다려.” 명령했다는 것, 문이 열리는 동안 컴컴했고 내가 틀어둔 (기억나지 않는)곡이 천천히 흘렀다는 것. 얼마 지나지 않아 현관문이 닫히고서 욕실쪽에서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들렸고, 샤워기에서 물줄기 쏟아지는 소리가 연달아 났다. 그 때에까지만 해도 나는 너를 의심했다. 증폭을 위한 꾸며냄은 아닐까 했다. 그러니까, 아무도 없는 곳에서 문 열리고 닫히는 소리를 연달아 듣도록 해서 내 긴장을 부추기는 걸까 싶었다. 의심한 것이 미안해질 정도로 현실은 생생했다. 욕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기 전, 나에게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났고, 잘그락 목줄을 매만지다가 무릎을 꿇도록 만드는 네 익숙한 손길이 너무나도 생생했다. 여전히 내 눈은 안대로 가려진 채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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