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 deep, deep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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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레스팅하는 동안 면을 삶고 있으면, 너는 면이 다 익을 무렵에 얼굴 앞으로 고기 한 점을 집어다 주었다. 종종 네가 수저 없이 무언가를 내 입에 넣어주는 일이 있었다. 눈을 마주치면서 일부러 네 손가락까지 깨물거나 핥으면 너는 잇몸을 살짝 드러내고 웃었다.
“헐, 맛있어.” “좀 짜.” “맛있어.” 완성된 파스타를 그릇에 옮겨 담고 시계를 확인했을 때 이미 22시를 넘겼다. 배추는 설익었고, 파스타는 다 눋어 있었다. 고기만 맛있었다. “배추 진짜 맛있다.” “그치!” “응, 진짜 맛있어. 왜 맨날 먹는지 알겠다.” 배추는 정말 겉만 익었다. 그게 고깃덩어리였다면 아마 blue rare. 그런데도 너는 잘 먹었다. 생배추를 원래 잘 먹는 사람이었을까. “파스타라고 해서 국수 생각했어. 기다란 거.” “스파게티도 있어. 혼자 먹을 땐 자주 먹어. 근데 오늘은 좀 식을 거 같아서 숏파스타가 낫겠더라.” “요리를 똑똑하게 하네.” 잘못 배송되는 바람에 다 부서져서 도착한 테이블도 얼기설기 짜 맞추다 보니 엉성하고 쓸 만했다. 너는 배송된 상태를 보더니 판매자를 더러 “싸우자는 건가?” 했다. 며칠 전에 네가 묻기를, 우리집에 오기로 약속한 다음날의 일정이 어떻게 되느냐고 했다. ‘나 어디 안 가’ ‘아침에 달리기 할까 해서’ ‘그래 그럼 러닝화 신고 와’ 나라면 아마 까먹었을지도 모르겠다. 너는 칫솔 빼고 전부 챙겨 왔다. 피난민은 아마 내가 아니었을지도. “달리기 몇 시에 나갈까?” “헐 나 내일 약속 있다. 근데 아직 몇 시에 만날지 안 정했어.” “맛있는 거 먹으러 가?” “아니, 운동. 잠깐만, 나 핸드폰 좀.” 휴대폰을 만지작거릴 때에는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고 튕겨져 나가는 듯했다. 다른 것들도 그랬다. 하나에 몰입하면 다른 일에 열중할 수 없었다.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사람들이 부러웠다. 암묵적으로 합의한 일부를 제외하고는 면전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일이 조금은 미안헸다. 너도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네가 종종 휴대폰을 만지는 일이 있었는데, 앨범을 뒤적여 나에게 어떤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여주거나, 혹은 내가 말했던 것들을 검색해서 “이거야?”하고 묻는다거나, 아니면 내가 샤워를 하는 동안 누워서 낄낄거리는 거. “너댓 시에 만나기로 했어. 달리기하고 집에 와서 좀 쉬다가 나가야겠다.” “아침엔 몇 시에 나가지, 11시?” “우리가 일어날 수 있을까?” 벌써 자정을 넘긴 시각이었다. 그리고 나는 벌써 취했다. 너는 이제 내가 취했는지 아닌지를 조금은 구분하는 것 같았다. “심박수 내기 하자.” 나는 충전독에 거치해둔 스마트워치를 다시 집어들면서 너에게 제안했다. “그게 뭐야?” “1분 동안 심박수 더 낮게 나오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그래.” “뭐 걸래?” “음.” 엉덩이로 이름을 쓰기로 했다. 내 입에서였는지 네 입에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당연한 결과겠지만 내가 졌다. 너는 명상을 종종 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어딜 가든 ‘심박이 왜 이렇게 높아요?’를 달고 다니는 사람이었으니까. 스스로 무덤을 판 걸까. 글쎄. “이리 와. 엉덩이로 이름 쓰기로 했지.” “아니!” “어어?” 너는 성큼성큼 나를 몰았다. 등 뒤에는 벽으로 가로 막혀 있었다. 너는 의자를 내 앞으로 바짝 당겨 앉았다. 이렇게 좁은 틈에서는 엉덩이로 이름을 쓸 수 없었다. 너는 내기는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표정이었다. 엉덩이로 이름 쓰는 걸 보는 것보다도 더 재밌었을까. 그랬으면 했다. 일정 수준을 넘겨서 취하면 내 오기인지 객기인지 치기인지는 아무튼 광기로 변하곤 했다. 그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절주하게 되는데, 가끔은 스스로를 절제할 수 없는ㅡ절제하지 않는ㅡ 날이 있다. 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너를 내려다 보면서 마치 우위에 있는 착각에 사로잡혔던 걸까. 뭐라고 말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너를 가만히 노려봤던 것, 내 몸이 빠르게 식는 것을 느꼈던 것 외에는. 심박이 낮아지고 있었다. 취한 게 아니었다면 기억에 남아 있을까, 네 웃음으로부터 어떻게 빠져 나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편의점으로 휘청거리고 있었다. 휘청거리는 걸 자각하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배고팠다. 사실 허기가 아니라 취기였겠지. 주전부리를 잔뜩 샀다. 네가 요청한 자일리톨을 포함해서. 너는 평생 담배를 입에 대 본 적이 없다고 그랬다. ‘아, 후카는 피워본 적 있어, 술 마시고. 몽롱하더라. 왜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술 마시고서 담배 그렇게 자꾸 피우는지 좀 알 것 같았어.’ 손에서 온몸에서 담배냄새가 진동하는 것처럼 역했다. 주전부리는 하나도 손대지 않은 채로 식탁 위에 널브러뜨렸다. 네 앞에 무릎을 꿇었던가. 네 자지를 입에 넣은 채로 잠들었던가. 그게 내 사과의 방식이라면 반드시 고쳐야겠다. 부스스하게 아침이 밝았던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너는 그랬다. “몇 시야?”하고 물으면 “헐, 벌써 열두 시야!”아니면, “와, 두 시야. 우리 일어나야 돼.”하고 부추겼다. 내가 “진짜?”하고 놀라 되물으면 그제서야 키득거렸다. “하이, 빅스비.” 빅스비는 내 목소리에 반응하지 않았다. 너는 나를 끌어안은 채로 계속해서 키득거렸다. 등 뒤로 더듬은 네 자지가 키득거림에 맞추어 불끈거렸다. “존나 넣고 싶지?” “아니, 이대로 있을 건데.” 내 목을 죄고 있는 네 팔이, 허벅지를 포박한 네 종아리에 힘이 들어갔다. “아닐 걸?” 내가 몸을 비틀자 너는 나를 놓아 주었다. 네 위에 올라타서 나는 너를 희롱했다. “‘박아 주세요.’ 해 봐.” “괜찮아.” “존나 박고 싶잖아.” “아니, 그냥 이러고 있다가 너 입에 싸 버릴 건데?” 너는 어렸을 때에 주짓수를 했었다고 했다. 나를 뒤집어 버리는 건 너에게 아주 쉬운 일이었다. “‘박아 주세요.’” “박아 줘.” “예쁜 눈 해야지. 존댓말도.” “박아 봐.” “혼날래?” “혼내 봐.” 네가 내 목을 콱 조르면 순식간에 눈 앞이 아득해졌다. 그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내 얼굴이 검붉어졌을까. 어룽지는 배경에서 네가 웃고 있는 것만 또렷했다. 네 웃음소리가 기차 지나가는 소리와 함께 귓바퀴에서 또렷하게 부서졌다. 네 손이 스르르 풀리고 나서야 알게 됐다. 네가 언제부터 내 안에 들어와 있었는지는 몰라도, 나는 네 몸에 꼭 달라붙은 채로 중얼거렸다. “으응, 끝까지 박아 줘.” 채근했다. 너는 일부러 얕게 약올렸다. “자궁까지?” “응, 꽉. 존나 쑤셔박아 줘.” 그러면 너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치골과 치골을 밀착했다. 그럼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됐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수 분을 채 견딜 수 없었다. 너는 몸을 조금 멀리 하더니 내 오른손을 클리토리스에, 왼손을 내 젖꼭지에 가져다 대게 했다. “자위해 봐.” 네 자지가 들어 차 있는 채였다. 손 뻗으면 닿는 위치에 항상 장난감이 있던 걸 너는 알았을까. 장난감을 작동시키고서는 자꾸 다리가 오므라들었다. 너는 내가 너를 밀어낸다고 했다. 의도한 건 아니었다. 다리로는 너를 계속 당기고 있었거든. 이건 의도한 거. 의도했든 아니든 혼자 하는 밀당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으응, 갈 거 같애.”하고 너에게 허락을 구했다. “벌써 가게? 안 되지.” 나는 고분고분했다. 네가 가도 좋다고 말할 때까지 임계점 직전까지 아슬아슬하게 오르락내리락했다. 너는 내가 내려갈라 치면 “혼자서만 좋은 거 계속 느끼게?”했고, 다시 올라가다가 선을 넘으려 하면 “벌써 가면 너무 아쉽잖아. 안 돼, 참아야지.”하고 다시 나를 끌어내렸다. 그러기를 수 차례, 네가 “응, 이제 가도 돼.”했을 때엔 몸이 어디로 어떻게 비틀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였다. 흐느끼다가 정신을 차렸던 건, 자지가 아닌 네 손가락이 내 안에서 꿈틀거리면서 빠져나가고 있을 때였다. 어떤 마사지를 받고 나서 시술하는 사람이 말하기를, 본인의 자지가 아니라 상대의 몸짓에 집중하고 있을 때에는 발기가 죽는지 조차 자각하지 못 할 때가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종종 섹스중에 발기가 풀리는 것이 곧 나에게 꼴리지 않는다는 방증처럼 느껴져서 퍽 서운했는데, 그 사실을 알고부터는 이제 미안해졌다. 함께이고 싶은 순간에 나 혼자만 존재했구나 싶었다. 그래서였다. 네 위에 올라타서 너를 내려다 보면서 “자위해 봐.” 그랬던 것은. 너는 항상 내 말에 고분고분해졌다. “재밌어?” 하고 웃으면서 응했다. 네 자지를 감싼 왼손의 움직임을 조금은 골몰히 쳐다 봤던 것 같다. 나중에 언제 써먹을지 모를 일이니까. “응. 내 앞에서 딸치는 기분 어때?” 너는 과장되게, “존나 좋아요. 행복해요, 주인님. 갈 것 같아요.” 그랬다. 나는 조금 흘겨보는 눈을 했다가 곧장 너를 도왔다. 혀를 길죽이 내밀고 설소대를 간지럽혔다가 손가락을 핥았다가 네가 손가락을 내 입 안으로 들이밀면 다른 손으로는 네 자지를 조물거리면서 입 안 손가락을 꼭 자지인 양 성심했다. 그리고 딱 완성된 자지를 보고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다시 올라탔을 때에 너는 그랬지. “이러려고 세웠지? 보지에 넣고 존나 흔들려고.” 그럼 나는 뭐라고 했을까. “박아달라고 구걸해 봐.” 응, 혼나고 싶어서. 달리기. 너랑 나 둘 다 바빴다. 가기로 했던 천은 조금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집 근처에서는 그럼 어디서 뛰어?” “째끄만한 공원 있어. 한 바퀴 도는 데에 한 10분? 근데 걸어서 한 30분 정도 걸려.” “그럼 거기까지 뛰어 갔다가 한 바퀴만 돌고 올까?” “그래.” 당연히 페이스를 맞춰 준 걸 테지만 너랑 속도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다. 러닝이라기보다도 동네 탐방 같았다. “내가 살쪘는지 아닌지 구분하는 기준이 있는데 가랑이가 쓸려. 달리기할 때.” “그래?” “지금도 조금.” “봐 봐.” “쪼금.” “아파?” “쪼금.” “얼른 가자.” “응.” “나도 수영했을 때 겨드랑이 쓸렸었어.” “삼두랑 광배?” “응.” 너는 나보다도 우리 동네를 더 잘 알고 있었다. 어디에 지름길이 있는지 머릿속에 지도를 넣고 다니는 것 같았다. “우리 베란다 문 열고 있었다.” “그래?” “아까 다 들렸겠다.” “방음되지 않아?” “옆집 웃음소리에 깬 적 한 번 있어.” “옆집이 문을 열고 있었나 보네.” “하고 있는데 누가 막 문 두들겨. ‘저기 죄송한데 저도 끼워 주세요.’ 이러면?” “안 돼. 옆에서 딸치라고 해야지.” “구경은 돼?” “응. 자린고비야.” 집에 돌아와서 엊저녁에 남은 고기를 구워 먹었다. 아침부터 고기냄새. 그런데도 고기가 남았다. “이거 그냥 구워도 돼?” 나는 고기 굽는 법을 잘 모르거든. ‘그냥’은 안다. “내가 할게.” “집에서도 고기 자주 구워 먹어?” “엄마가 다 해 주셔.” 나도 그랬었다. 엄마랑 살 땐 엄마가 집안일의 대부분을 도맡아 했었다. 분가를 하고 나서야 겨우 먹고 살기 위해서 조금씩 사부작거리기 시작한 거지. 나는 보통 먹자마자 누워 있는 걸 좋아하는데 너는 먹자마자 일어나서 그릇과 식기를 곧장 설거지하더라. 싱크대 앞에서 우두커니 덜그럭거리는 게 고마웠는데 고맙다고 말하지 못 했던 건 내 어떤 고집일까. “나가기 귀찮아.” “나도.” “근데 나가야 돼.” “쫌만 이러고 있자.” 서로 팔다리를 동원해서 끌어안고 있는 걸 좋아했다. 그런데 그건 좀 별로였다. 내 입에 한가득 부풀린 혀를 넣는 거. 고개를 뒤로 빼지 못 하도록 꼭 붙잡고 있는 건 좋았다. 네 웃음소리도 좋았다. 그래서 버둥거리면서도 필사적으로 힘을 주지는 않았던 것 같기도. 나중에 네 혀를 잘근 씹고 나서야 너는 나를 놓아 주었다. 너는 스스로를 촉수괴물이라고 지칭했다. 그러면 나는 너를 째려보고. 내가 다른 약속이 없었다면 너도 이대로 더 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네가 먼저 몸을 일으켰고, 내가 네 뒤를 따라나선 거니까 아닐 수도. “역까지 태워다 줄게.” “걷는 게 더 빠를 걸.” “잘 다녀 와.” “응, 조심히 가. 또 와.” 약속을 마치고 다시 어두워진 집에 돌아왔을 때 네 흔적이 고스란해서 조금은 적적했다. 흐트러진 이불과 널브러진 베개가 그대로였다. 물기가 조금 가신 접시는 기름기로 미끄덩했다. 다시 설거지를 하고 이불 속으로 몸을 파묻고서 너를 복기했었다. 습관 같은 자위를 마치고 노곤하게 잠의 경계에서 허우적거렸다. 가만 생각해 보면 너랑 있을 때에 못 잔 적이 없었다. 깨서 뒤척였던 적은 종종. 뒤척일 때마다 너는 잠결인지 나를 끌어안았다. 내 엉치에 올려진 네 다리의 무게감에 더 푹 잤던 걸지도 모르겠다. 등을 돌리고 자고 있노라면 너는 내 목덜미에 어깨에 소리나게 뽀뽀했었다. 그러면 나는 웃으면서 잠들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이 생각났었다. 심각한 수면장애를 앓고 있다고 그랬다. 머리가 빠지고 치아가 흔들려 잇몸에서 피가 난다고 그랬다. 그러다가 졸도했고 입원한 병원에서는 소변 대신 새빨간 혈액을 누었다고 그랬다. 내가 그 사람에게 품었던 마음은 동정이었다. 그리고 어떤 계기를 통해 그 사람이 내게 고했던 것들이 모두 거짓임을 알게 됐다. 나랑 있을 때에 50도가 넘는 독주를 함께 마시던 거, 그 어떤 약도 복용하지 않았던 거, 나보다도 잘 자던 거. 이외에도 그랬다. 미국에 간다고 그랬고, 나를 내내 괴롭게 만들었던 것이 본인이 아니라고 그랬다. 그런데 이제 하나는 거짓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거짓)말마따나의 심각한 수면장애는 아니었지만 나도 분명 수면제의 도움을 평일에는 받고 있었으니까. 주말이야 아무래도 아주 일찍 일어나야 하는 일정이 없다면 상관 없었다. 너랑 있으면 언제가 됐든지 푹 자게 된다는 사실이, 그 사람이 나에게 했던 무수한 거짓말 중 하나를 지운 셈이 된 걸지도 모르겠다. 언제 어디서 읽었던 건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한바탕의 소음이 지나고 난 자리가 적적한 이유는 그 소리들이 벽의 틈새로 스미기 때문이라고 그랬다. 스며 있다가 한참이 지나서 그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린다고 그랬다. 그래서 너무도 고요한 곳에서는 오히려 귀가 아프다고 그랬다. 네가 가고 없던 날에도 나는 깊게 잤던 것 같다. 그게 자위였든지 아니면 수면제였든지, 도움 없이 혼자의 힘으로 나는 깊이 잘 수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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