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자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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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싫어하는 농담이 있다. 농담도 못 하고 사는 빡빡한 세상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농담은 좀 안 듣고 싶은. 남자라면 선배, 형들에게 흔히들 많이 듣는, 바로 유부남 농담이다. 나이 찬 남자들끼리 모인 자리면, 특히 술자리면 십중팔구 유부남 농담이 나온다.
결혼과 부부생활을 희화화하는 농담들. 아내가 샤워하는 소리가 겁난다느니, 가족끼린 그러는 거 아니라느니, 결혼 생각 중이라는 사람이 있으면 다시 생각하라느니. 결혼을 인생의 무덤처럼 말하고 결혼을 추천하는 사람이 있으면 혼자 고통받기 싫어 저런다며 물귀신 작전처럼 얘기한다. 희한한 건 술자리에서 한둘이 이런 얘기를 꺼내다 보면 유부남들이 질세라 더 독한 농담을 꺼내려 든다. 내 친한 지인 중엔 이런 사람이 거의 없지만(오히려 대놓고 애처가밖에 없다시피 하다) 딱히 친분 없는 자리에 나가 이런 얘길 한 두 시간씩 듣고 있으면 그것보다 고역이 없다. 그런데 나는 안다. 그런 유부남 농담을 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 아주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 집에 들어가 아내와 아이와 볼을 부비며 꽁냥꽁냥 잘 산다는 걸. 그저 밖에서 농담으로만 그런 말을 하는 거다. 처남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주변 모든 남자들을 통틀어 결혼 추천한다는 사람은 매형 혼자라며 자긴 그런 사람을 처음 봤다고 했다. 그때도 똑같은 말을 해줬다. 다들 말만 그러지 막상 집에 가서는 꽁냥꽁냥 잘만 산다고. 얼마 전 복싱 체육관에서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 교제 중인 사람과 결혼이 고민이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내가 결혼을 적극 추천한다고 했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 친구는 내가 "나 진심인데?"라고 말하자. "진짜요?"라며 눈을 크게 떴다. 그 역시 결혼 추천한다는 얘기를 주변에서 처음 들었단다. 이것도 일종의 마초이즘인지 실제론 그렇지도 않으면서 밖에선 결혼이라는 체제에 반기를 드는 사람처럼 자길 포장한다. 나는 결혼을 적극 추천하는 사람이다. 물론 좋은 짝을 찾았을 때 얘기겠지만, 내가 결혼으로 얻은 것, 느끼는 것들을 다 쓰기엔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할 거다. 그래서 젊은 친구들이 결혼에 관해 물어 올 때면 종종 그런 얘길 한다. 주위에서, 그리고 미디어에서 장난스레 하는 말들을 진짜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그런 과하게 가공된 인식들을 다 배제하고 본인이 진지하게 판단하라고. 우습게도 그렇게 만들어진 결혼의 부정적인 이미지들이 희화화되어 조금씩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으니까. 결혼 생활엔 장단이 있다. 갈등이 없을 수도 없고 불만이 없을 수도 없다. 결혼한다고 꽃밭만 걷는 것도 아니고 잘못한 결혼은 큰 불행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건 그저 상식의 범위 안에 있는 이야기다. 그런 상황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결혼한 사람들이 실제론 그렇지도 않으면서 덮어놓고 결혼이 인생의 무덤인 것처럼 장난스레 말하는 것은 배우자에 대한 모독이자 당신 이 한 서약에 대한 모독이다. 그것도 내 배우자가 없는 자리에서 하는 아주 질 나쁜 모독. 결혼을 고민 중인 분들은 주위에서 하는 경박한 이야기들 듣지 말고 정말 좋은 사람이 있다면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해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11년 전 오늘, 결혼해 줘서 고맙습니다. 간신히 월세나 내던, 백수나 다름없던 나를 진짜 뭘 보고 결혼해 줬나 모르겠네. 고맙고, 사랑합니다. *** 황석희 번역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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