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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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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누군가와 나눴던 이야기 중에 내가 그랬다.
“다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관계야. 인간관계라는 거. ‘이용’이라는 단어가 가진 부정적 이미지때문에 인간관계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지만, 결국에 사랑도 이용이지 않겠어?” 뭘 얼마나 안다고 통달한 양 굴어댔다.
누군 부정했다. 오랜 이야기라 그이의 대답을 정확하게 기억할 순 없지만 더듬어 보자면 이랬다.
“어떤 관계는 이용이겠지만 또 어떤 관계는 이용 바깥에 있기도 해.” 되짚으며 생각해보건대, 아마 그 사람은 관계가 이용 밖에 있다는 말보다도 이용이 어떤 관계 밖에 있다고 했을 것 같다. 그 사람은 또 다른 날에 ‘없음’의 관계에 대해 일러 주었다.

또 나는 같은 말을 비교적 최근, 다른 이에게 한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은 공감했고 동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내키지 않는 관계라고 할지라도 그 안에서 이용 가능한 가치가 있다면 감내한다고 그랬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이 비슷하게 행동하겠지만 그 말을 듣는 내내 입이 썼다. “그럼 나는?” 하는 말은 아무리 취해도 뱉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신에 한 말이란 게,
“‘삼인행이면 필유아사라.’ 공자 말씀이라던데, 우리 아빠가 귀에 딱지 앉도록 해 준 말이다. 사람이 셋 지나가면 거기에 반드시 내 스승이 있대. 좋은 점은 본보기가 되고 그른 점은 반면교사 삼게 된다고.” 그 사람은 또 동감하고 공감했다.


나는 뭐였을까, 생각하게 된다. 구매자였을까, 판매자였을까, 아니면 상품이었을까. 성性의 시장 속에서 말이다. 권리를 내세워 진상을 부리진 않았나, 중요한 사항을 사전에 빠짐없이 고지했는가, 상품이었다면 오롯하게 내 몫을 다했던가.
대체로 나는 제3자로부터 평(이는 맹목적임을 배제한다. 긍정이든, 부정이든.)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데 구매함으로써 판매함으로써, 그 역할을 수행함으로써의 나ㅡ나의 바깥에서 보는ㅡ를 나는 영영 알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 눈과 마음을 가질 수는 없겠다만 귀로 전해들을 순 있겠지 하고. 나는 그렇게 안심도 했고, 억울하기도, 숙연해지기도, 아님 초연해지기도 했다.

비단 섹스에만 적용되는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확장하자면 모든 관계의 모든 순간에, 우리는 등가여야만 협상을 체결하지 않았던가. 일상을 살면서, 수많은 순간에.
손바닥 뒤집는 것이 조금 머쓱하지만 그런데 이제는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는 등가교환의 법칙이 성립하지 않는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넙치의 온전함에 대하여, 나의 없음을 당신에게 줄게요. 무슨 봉창을 두들기는 소리인가 하면, 기억력도 글주변도 없으니까-





***
욕망과 사랑의 구조적 차이를 이렇게 요약해보려고 한다.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은 욕망의 세계다. 거기에서 우리는 너의 ‘있음’으로 나의 ‘없음’을 채울 수 있을 거라 믿고 격렬해지지만, 너의 ‘있음’이 마침내 없어지면 나는 이제는 다른 곳을 향해 떠나야 한다고 느낄 것이다. 반면,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한 것이 사랑의 세계다. 나의 ‘없음’과 너의 ‘없음’이 서로를 알아볼 때, 우리 사이에는 격렬하지 않지만 무언가 고요하고 단호한 일이 일어난다. 함께 있을 때만 견뎌지는 결여가 있는데, 없음은 더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나는 너를 떠날 필요가 없을 것이다. _「나의 없음을 당신에게 줄게요」, 『정확한 사랑의 실험』, 마음산책, 2014.
모든 관계는 일종의 교환이라는 생각이 출발점이었다. 사랑도 하나의 관계라면, 사랑 안에서도 모종의 교환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가정해야 한다. 여타의 관계와는 다른, 사랑 고유의 교환 구조라는 것이 있지 않을까. 나는 그것이 ‘결여의 교환’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결여를 갖고 있다. 부끄러워서 대개는 감춘다. 타인 역시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그의 결여를 발견하는 때가 있다. 그리고 그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그의 결여가 못나 보여서 등을 돌리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결여 때문에 그를 달리 보게 되는 일. 그 발견과 더불어, 나의 결여는, 사라졌으면 싶은 어떤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결여와 나누어야 할 어떤 것이 된다. 내가 아니면 그의 결여를 이해할 사람이 없다 여겨지고, 그야말로 내 결여를 이해해 줄 사람으로 다가온다. 결여의 교환 구조가 성립되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을 대체 불가능한 파트너로 만들었으니, 두 사람은 이번 생을 그 구조 안에서 견뎌나갈 수 있으리라. 말하자면 이런 관계가 있지 않을까. 있다면, 바로 그것을 사랑의 관계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

과연의 나는 없어질 때까지 없어질 수 있을까. 여전히 구매자거나, 판매자거나, 혹은 상품인 채로, 뇌까리는 글에서 당신은 무엇을 볼까.
익명
내가 누군지 맞춰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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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024-05-30 00:42:43
ㅈㄴ) 밑 댓 보고 재밌어서 써두고 갑니다.
이용과 사용을 굳이 틀에 넣어 보자면 이용은 없음에 가깝고 사용은 있음에 가깝다 라고 생각.
'너'의 실재와 부재 차이 정도?
그리고 없음의 논리는 어쩌면 순서가 먼저 일지도 모르는데 없음의 발견이 아니라 없음의 인정 부터가 아닐까 생각함. 그게 일종의 부름이 될 지도.
익명 / 없음의 인정이라면 나의? 아니면 너의? 틀 안에 욱여넣은 건 조금 재밌네요 ㅋㅋ 그럴지도
익명 / ㅈㄴ) 당연히 나 아니겠어요? 인지해야 인정 할 수 있고 그래야 의도치 않은 제시라도 할 수 있을 테니 너에게는 발견이 되는 것이고. 어쩌면 그것 자체가 서로를 부르는 힘이 되는 거 아닐까 생각. 나의 없음을 인정하지 않는데 어떻게 너의 없음을 끌어 안을 수 있나요. 뒤집으면 정확히 있음의 논리가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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