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결산-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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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을 두고만 보는 것은 괴롭다. 각자 나름의 기준은 있겠고 그 역시도 늘 같을 수는 없겠지만 나의 지금의 좋은 사람은 아마도:
1. 내 글을 흥미롭게 읽고 2. 거기에서 파생되는 궁금증 3. 내가 지껄이는 헛소리에 더한 개소리 4. 혼자 했을 때 지루했던 일들이 새로와지는 거 5. 그리고 무례하지 않은 솔직함 그런 사람과 있으면 ㅡ거창한 표현이려나, 생리의 은유 말고ㅡ마법에 걸린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뭐 지금이 그렇다는 거지 나중에 또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는 모르겠다. 과거에는 존경하고 싶고 배울 점 있는, 동시에 나를 잘 다루는 사람이었는 걸.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대화에 목 말라 있던 적도 있는데 비생산적이고 금방 또 허물어지면 어떤가. 그도 그대로 재밌다는 걸 그 땐 몰랐고 이제는 조금 알 듯 말 듯.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내 마음가짐일까. 좋아하는 마음은, 그러니까 열정은 어디에서부터 촉발되는가. A 6개월 정도를 매주 만나서 섹스했다. 나랑 A가 공통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 중 하나는 섹스파트너로의 선언과 이별이었다. 친구처럼. “우리 오늘부터 친구하자.” “나 다음주에 너 말고 다른 친구 만나러 가도 될까?” “이제 친구 그만하자.” 섹스 취향이 꼭 맞아떨어지는 바람에 만나는 26주가 어쩜 신선하기만 했다. A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내 성욕을 이길 사람이 세상에는 있다는 거였고, A를 통해 성욕을 전부(당시에는 전부였다.) 해갈하고 나니 보였던 것은 다름 아닌 외로움이었다. 마음의 외로움을 A만큼이나 나 역시도 외면하고 살아 왔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아 버렸다. 그런데 나랑 달랐던 점은, 나는 울타리가 필요했고 A는 외로움 위에 덧칠할 더 강한 자극이 필요했다는 거지. 쉼이 되어 주어 고맙다는 A의 말을 끝으로 대장정의 막은 그렇게 내려야 했다. B 마이너 종목의 국가대표선수. 내가 왜 좋은지에 대해 물어보는 것을 부담으로 느끼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답으로는 매번 봐 오던 여성들과 상반되는 육체미를 꼽더라. 미인가? 외모를 수긍하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주종목을 포함해서 7가지 종목을 매주 훈련한다는 것이 가히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래서인지 웬만해서는 지치지 않았는데 진심을 반절쯤 담은 우스개로 훈련보다 섹스가 더 힘들다고 말해서 문득 미안했다. 평생을 가까이 운동만 해 오던 사람이라서인지 본인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내가 주제넘게 ‘넌 이런 사람’이라고 내가 말하면 고개를 갸웃하다가 꼭 다음날이 되어서 ‘맞는 것 같다’고 말을 붙여 왔다. C 어쩌다 보니 상반기에 운동을 주력으로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됐는데 그 중 한 명. 근지구력과 폭발력이 특히 좋은 사람이었다. 러프한 외모나 취미와는 다르게 속이 제법 물렁했다. 오다가 주운 뭔가를 건네면 집에서부터 챙겨온 무언가를 되돌려 쥐어주는 사람이었다. 뻑하면 위로를 자처하는 바람에 내내 손사레 치다가 딱 한 번은 그 앞에 울 뻔했다. 다행스럽게도 울진 않았다. 지독한 외로움이 뭔지 아는 사람이어서인지 마음이 헤펐고 웃긴 사람이었는데 그 이면이 꽤 짙었었다. C는 임종을 지키는 일이 나이에 비해 꽤 있었는데 그 말들을 전해주기를, 하고픈 거 다 못 한 게 한이랬다더라. 난 하고픈 걸 다 해서 후회라고 답했다. 좆까라 마이싱, 빠구리나 뜨입시더. 진짜 웃긴 사람. D 나와 동체급이었다. 가끔 내가 잘 먹은 날, 아님 D가 좀 덜 먹은 날은 내 체중이 D의 것보다 더 나가기도. 그래서 허벅지씨름에 대한 도전장을 내밀었는데 시도도 못 하고 처참히 뭉그러진 거지. 졌지만 잘 싸웠나? 음, 졌고 싸우지도 못 했다. 단언컨대 살면서 느껴본 자지 중 가장 선명한 것을 달고 있었다. 얼마나 취해 있든지 D가 슬그머니 가르고 들어오면 정신이 번쩍 드는 정도였다. D는 완전한 바닐라였고 D와의 섹스는 마치 내가 성향을 깨닫지 못 했을 때에 임했던 것과 아주 흡사했다. 그래서 언젠가 D의 이루마치오에 감격에 가까운 놀람을 느꼈나. 뒤통수 눌러주는 거. E 나랑 성격이 굉장히 비슷했다. 장난이 아주 심했는데 거기에 악의가 있었던 적이 없어서 서로 불쾌한 적은 없었다. 툭툭 시비를 걸더라도, 맞대응을 하며 욕을 하고 있더라도 E랑 내 눈은 노상 웃고 있었다. 시비는 언제나 화해떡의 명분이었다. “씨발년아, 그러니까 왜 말을 안 들어.” “재밌잖아.” “그렇긴 해.” 웃다가 찌푸렸다가 웃다가 고함을 질렀다가를 반복하는 섹스도 나름의 묘미가 있다는 걸 E는 알게 해 줬다. 승부욕이 강한 것도 똑같아서 먼저 오르가즘에 이르는 게 꼭 지는 것 같았다. 난 항상 지기만 했고 E는 그러면 머리를 쓰다듬다가 꼭 움켜쥐고 흔들었다. 억지로 맞춰진 E의 눈 속에 웃고 있는 나를 보는 일이 나는 가끔 슬펐다. F 근무하는 건물 간의 거리가 도보 4분이었다. 그래서 엄밀하게 오피스 섹스파트너는 아니었지만 그에 준하는 정도로 재밌는 것들을 건물 안팎에서 꽤 즐겼다. 심장이 콩닥콩닥 시린 기분을 중학생 때 이후로 처음 느꼈다. F는 점점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 가는 것 같다고 했는데 내 생각은 달랐다. 외려 사람과 이어질 수 있는 채널이 많아질수록 끊어짐에 대한 아쉬움이 덜어지니까 관계 지속으로의 노력이 흐려지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대체되는 것은 괴로우리만치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었다. 모순되게도 F는 나에게 수많은 대체재 중 하나였다. 나의 미안함을 F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성욕의 해소는 마음의 공허를 야기하는 듯하다. 어릴 땐 나몰라라- 회피할 줄만 알았지, 나의 것이나 상대의 것을 들여다 볼 생각 따위는 일절 없었다. 그래서 성욕을 비워내고 나면 오히려 가뿐했다. 그게 텅 빈 기분이라는 것을, 차라리 모르는 때가 나았을까. 타인을, 상대방을 헤아릴 줄을 몰랐다. 너의 기분은 너의 것이고 내가 관여할 자격도 의지도 없는 별개의 것이었다. 나는 나만 잘 챙기면 됐다. 나의 불안을 너에게 떠안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너의 기쁨이 어디에서 오는지 나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 말라가는 것이 고작의 감정이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결국에는 공존이어야겠고 그렇기 때문에 각자로 있어서는 연결될 수 없을 것이다. 그 누구도 대체될 수 없고 대체되어서도 안 된다. 제각기 다름을 가지고 있더라도 지독한 외로움 하나만큼은 공통의 짐이었다. 다른 때는 몰라도 함께일 때에 우리는 매번 섹스로 외로움을 달래고 있었다. 현자타임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겠다만 모두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목적으로의 행복이 아니라 과정으로의 행복을 빈다. 나의 것 역시 내가 빌어야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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