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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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섹스할 생각은 추호에도 없었다. 키스도 마찬가지였다. 밥 한 끼 사주고 싶었고 운동이 배우고 싶었던 거였지, 일찍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술을 마실 거라곤, 더구나 담배를 피우다가 키스를 할 줄이라곤. 이럴 줄 알았으면 겨드랑이 털 깎을 걸- 하는 후회는 한참이나 뒤에야 했다.
이걸 읽고 누군가는 웃으며 이렇게 얘기하겠지, ‘구제불능 씹걸레년.’이라고. 맞다. 마치 우리 같은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듯 술집 바로 앞에는 모텔이 있었다. 워크인으로 숙박을 하는 일은 또 오랜만이었다. 체크인이 가능한 시간보다 일찍 입실했다. 땀에 젖었다가 마른 운동복을 벗고 벗기는 장면이었다. 그 후로는 기억이 나지 않아 네 말에 의지하자면 내가 먼저 올라탔다고 그러는데 땀냄새에 더해 고기 찌든내, 술냄새, 담배냄새까지 잔뜩 밴 몸을 물로 대충이라도 씻었는지는 여전히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가지는 당시의 기억이라곤 지치지 않는 네가 대단하다는 감상 정도. 정신을 차리고 보니 허겁지겁 박히고 있었고 또 주인님을 부르면서 우는 소리를 했다는 거.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내 뺨을 때리는 네 손이 꽤 많이 매워서 잠깐 귀에서 삐- 하는 소리가 들렸던 것도 같은데 아프다고 말하면서도 결코 싫지 않았다. 때려달라고 네 손을 자꾸 내 얼굴에 가져다댔으니까. 나를 포함해서 두 명과 섹스했던 게 전부라고 그랬다. 상대를 다루는 섹스가 처음이라고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도 너는 나를 너무 잘 다뤘다. “내가 가끔 술 많이 취하면 고삐가 풀린다?” “어떻게?” “막 상대방한테 뭘 시키거나 아니면 때리고 그래.” “응.” “근데 그게 나한테 복종하라는 의미가 아니거든?” “그럼?” “그냥 나는 도발하는 건데, 한 번은 내가 올라타서 ‘박아달라고 해보라’고 그랬더니 진짜 그렇게 얘기하더라고. ‘박아주세요’ 하고. 그런 뜻으로 말한 거 아니었는데.” “해 봐.” “너한테?” “응.” “나 자리 깔아주면 잘 못 해.”라고 말하면서 엉금엉금 네 위에 오르고 있었다. 풀려 있을 눈으로 너를 빤히 쳐다봤다. 나름의 셋업이랄까. 어떤 눈인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여하지간 가끔 내 눈이 매섭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도 너는 정말 단 하나도 동요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오히려 히죽히죽 웃었던 것 같기도 하고. 오기가 생겼다. “‘주인님’ 해 봐.” 내가 운을 떼자마자 너는 여유롭게 웃으면서 내 손목을 낚아챘다. 몸이 붕 뜨는가 싶다가 순식간에 뒤집혔다. ‘겨우 이런 거야?’ 하고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네 표정이 딱 그랬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장면이 전환된 것도 아닌데 눈 깜짝할 새에 나는 네 아래로 깔려 있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눈을 질끈 감았던 것 같다. “예쁘다.” 내 머리를 쓰다듬던 네가 입술을 포개왔다. 앙다물고 있던 입술이 절로 열렸다. 그러다 너는 입술을 떼더니 벌어진 내 입으로 침을 흘려보냈다. 나 보지에 뱉는 걸 제외하면 스핏 안 좋아하는데. 근데, 근데 모든 게 야했다. 점도 높은 네 타액이 내 입 안으로 들어온다는 사실도 야했고 나를 부르는 네 목소리도, 눈빛도, 냄새도, 그리고 네 자지까지. 내가 느끼는 모든 것이 전부 야하기만 했다. 나도 모르게 자꾸 좋다고 중얼거렸나보다. “내가 좋아, 내 자지가 좋아?” 응, 너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조금 고민했다. 그리고는, “ㅁㅁ가 좋아.” “거짓말하지 마, 씨발년아. 내 자지가 좋은 거잖아.” 정말 소질이 없나 보다. 너는 말을 채 다 맺기도 전에 화풀이 아닌 화풀이로 쿵쿵거렸다. 마치 내 거짓말을 기다렸다는 듯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너의 웃음이 저 깊은 곳에 쿵쿵 박혔다. 횟수를 세는 것이 의미가 없었다. 그렇게 오래 하는 섹스는 처음이었다. 오랫동안 지치지 않는 섹스도 내 입장에서는 신기하기만 했는데 더 신기했던 것은 단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무슨 대화를 했는지까지는 전부 기억나지 않지만 계속 웃었다. 분명 방금까지 목을 조르면서 ‘씨발년’이라고 박아대던 네가 내 얼굴을 물끄러미 응시하면서 ‘예쁘다’고 하는 게 웃겼고, “ㅇㅇ아, 취했어?”하고 물으면 “응!”하고 대답하는 내가 웃겼다. 이제는 취기가 남아 있건 아니건 상관 없는 그 물음이 나는 하염없이 웃기기만 했다. 섹스를 하다가 대화를 하다가 중간중간 나는 또 오줌이 마렵다며 화장실을 몇 차례 드나들었는데, 그러다가 한 번은 네가 등 뒤에서 내 가슴을 움켜쥐고는 어기적어기적 따라왔다. “으응, 쉬 마려워.” 혼자 있고 싶으니 나가달라는 의미였다. “응, 싸.” 너는 내 칭얼거림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덮여 있던 변기커버를 한 겹 올리더니 내 다리 하나를 그 위에 올리도록 했다. 타이핑하는 지금도 찌릿찌릿 전율이 오르는 것 같다. 싫은 듯, 조금 주저하던 나는 꼴깍 침을 삼키고서는 하체에 몰린 긴장을 조금씩 풀어내었다. 물줄기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더라. 처음 본 남자에게 가슴을 붙잡힌 채로 오줌 싸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 조차 나는 웃길 뿐이었다. 다시 침대 위로 돌아와서는 한참을 대화인지 섹스인지를 하다가 새벽 3시가 넘어서야 겨우 우리는 잠에 들 수 있었다. 네가 화장실에 가는 소리를 들었었나, 내 휴대폰 진동 소리가 커서였나, 잠에 든 시간에 비해 꽤 일찍 눈을 떴던 것 같다. 머리가 아프거나 속이 메스껍지는 않았다. 전 날 흩어졌던 기억들 중 몇 가지가 다시 주섬주섬 모이는 기분이었다. “깼어?” 네가 한 말인지 내가 한 말인지 조차도 기억나지 않지만 어제 맡았던 네 냄새가 흐려진 듯 고스란해서 또 웃음이 나왔다. “예뻐.” 최준도 아니면서 계속계속 마냥 예뻐하는 네가 퍽 귀엽다고 느껴졌다. 내가 거친 섹스를 좋아한다는 것을 아는 네가 언젠가 물었다. “계속 예쁘다고 하면 좀 그래?” 그럴 리가. 나 이런 거 좋아하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데 어쩌란 말인가.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모르겠다. 또 모르겠다. 우리의 섹스가 또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머리가 베개를 향했다가 발치를 향했다가 또 이렇게저렇게 박히다가 다시 또 올라타서 장난을 쳤다. 내가 앞뒤로 움직이면 자지가 부러질 것 같다고 엄살을 피우길래 보지에 박힌 자지를 빼내어 가볍게 엉덩이를 튕겼다. “윽.” 힘든 듯 네 얼굴이 잠시 구겨졌다. “아파? 이거는 싫어?” “아니, 그건 아닌데 자극이 너무 세.” 그렇게 얘기하면 나는 더 하고 싶어지는데. 내 체력의 한계 탓에, 네가 나를 다시 뒤집어버리는 바람에 더 하고 싶은 걸 못 했다. 아쉬웠다. 아침인데도 입냄새가 나지 전혀 나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했다. 너뿐만 아니라 나도 그랬다. 특히 술 마시고 담배를 피운 다음날은 꼭 입이 텁텁해지는데 그 날은 이상하게 하나도 텁텁하지 않았다. 네 일정 탓에 조금 일찍 체크아웃하기로 했다. 나가자고 그렇게나 말해놓고 얼마나 더 섹스를 대화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다가 스치듯 네 팔을 봤는데 검붉었다. 등도 울긋불긋했다. “이거 뭐야, 나야?” “응, 그런 것 같은데.” 섹스를 할 때 손톱으로 상대방의 등을 긁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게 내가 될 줄은 몰랐다.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거든. 아침엔 안 긁었으니까 분명 엊새벽에 만들어둔 흔적일 텐데, 자고 일어나서도 붉은기가 남아 있다니 게다가 왼쪽 삼두는 곧장 멍이 들 것 같은 색이었다. “안 아팠어?” “응, 몰랐어.” 미안했다. 미안해서 안아주다가 또 박히고. 나가자는 말을 서로 몇 번이나 했을까. 그 쯤 되니 나가자는 말이 박아달라는 시그널이 된 건 아닐까 싶었다. 겨우 몸을 일으키고 드디어 화장실로 향했다. “나 오줌 마려워.” 변기에 앉아 너를 올려다봤다. 어제와 같이 혼자 있고 싶다는 의미였는데 너는 나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얼굴을 했다. 아주 조금 작아져서 포피가 살짝 덮인 자지를 입에 넣었다. 입술로 혀로 느껴지는 점점 단단해지는 너의 자지에 기분이 좋았다. “이런 상황에서 빤다고? 포르노 같아. 너무 잘 빨아. 눈 색깔까지도 야해.” “그런 얘기 처음 들어.” 잘 빤다는 말도, 눈 색이 야하다는 말도. 다시 졸졸졸- 물줄기가 조심스럽게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다시 섹스를 하지는 않았지만 섹스에 못지않은 흡족스러운 배뇨였다. “삭발하니까 샴푸를 쓸 일이 없어졌는데 대신에 폼클렌징을 그만큼 많이 쓰게 돼.” 네 까까머리가 여전히 귀여웠다. 취한 와중에 모자와 복압벨트는 가지런하게 정돈해둔 게 또 웃겼다. 내가 정리를 한 건지 네가 한 건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 너였을 거라는 쪽에 나는 한 표. 운동 장비들을 보니까 어제가 생각났다. “어제 너가 나 프레스할 때 보조해줬잖아.” “응.” “엉덩이에 너 자지 닿았었어. 알고 있었어?” “응, 알고 있었지.” “그리고 너 랫풀다운할 때에도 내가 뒤에서 잡아줬을 때에도.” “응.” “내 가슴 너 등에 닿았어. 닿을 줄 몰랐어.” “그랬어?” “그 때만 해도 나 너랑 섹스할 줄 몰랐어.” “나도 그래.” “섹스할 줄 알았으면 겨털 깎고 올 걸.” “예뻐.” “어제 술 마실 때도 섹스할 거라는 생각 전혀 못 했어.” “응.” “후회해?” “아니, 전혀. 너는?” “나도. 좋아. 행복해.” “다행이야. ㅇㅇ이가 좋으면 나도 좋아.” 포장을 벗긴 콘돔이 눈에 띄었다. 설마. 네 말에 의하면 ‘따였다’고 했다. 너가 나한테 아니고 내가 너한테? 응. 술을 작작 빠르게 마셔야겠다는 말을 꾹 삼켜냈다. 데리고 가고 싶은 식당이 한 군데 생각났다. 그 집 치즈돈가스 정말 너무너무너무 맛있는데. 밖을 나서고 나서 내가 네 손을 잡지 않은 것처럼 너도 내 손을 잡지 않았다. 손을 잡지 않은 채로 걸으면서 그 둘의 이유가 같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식당은 휴일이었다. 데리고 가고 싶은 것도 맞지만 내가 먹고 싶었던 것도 있었는데. 아쉬운 마음에 불 꺼진 식당 앞을 잠깐 서성였다. 아쉬운 대로 서브웨이에 갔는데, 네가 곧 가게 될 도시의 서브웨이와 같은 메뉴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러고보니 같은 메뉴가 있다면 그것도 그대로 신기하긴 할 것 같다. 내 예상보다 네 출국 일정은 훨씬 가까웠고 왜였는지 나는 조금 아쉬웠다.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렀다. 테이블 위에 내가 흘린 걸 정리하는 모습을 보고 너는 “너무 착해.” 했더랬다. 뿐만 아니라 연신 네가 쏘아대는 ‘고마워’, ‘예뻐’와 같은 표현에 혼이 쏙 빠질 것 같았다. 그래서 흐르는 시간을 붙잡아두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가기 전에 또 와.” “응, 또 올게.” “또 만나.” “어제오늘 고마웠어.” 머리 위로 엄지를 치켜세우는 너를 또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람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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