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소개팅
26
|
||||||||||||
|
||||||||||||
집안일이나 하면서 쉬어야겠다고 연차 낸 날, 이어버드를 끼고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 너머로 소개팅 어떠냐는 카톡이 왔다. 그간 꽤나 많은 소개팅이 지나갔고 하면 할수록 하늘도 안 보이는 미궁을 헤매는 것 같아서, 내심 이번 생은 혼자이려나 싶은 마음으로 지내고 있었다.
그래도 생각코 알아봐 준 게 고맙고, 또 한편으론 실가닥이라도 잡아보고 싶어서 마음을 다잡고 날을 정해 만났다. 만나보니 적당히 호감도 받고 특별히 모나지도 않아 보였으며 제법 자신의 생각도 잘 표현하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어차피 사진을 주고 받은 사이도 아니어서 꽤나 사람을 진지하게 상대한다고 짐작한 게 통했는지 두어 시간 차만 마셨어도 끊김없이 대화가 오갔다. 긴장감 없이 적당한 플러팅을 주고 받은 건 덤. 그러다가 식사 없이 헤어졌다. 나는 망설였던 것일까. 헤어지는 문 앞, 또 시간내서 보자는 말에 나는 그래도 괜찮겠냐 되물었고, 그런걸 묻고 확인해야 하냐는 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곧. - 요즘은 확인해야 하는 것 같던데요? 사실 마음에 들고 안들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물은 이유는 내딴엔 배려였다. 나는 또다른 만남이 너무 지긋지긋해서 싫지만 않으면 더 만나 볼 요량이었고, 당신은 우아하게, 거절도 좋으니 쪽팔림은 내 몫으로 남겨두자는 말을 숨겼다. 근데, 솔직히 더 말하자면 남자다움을 갖추는게 싫었다. 얼마 전 읽은 페미니스트의 수필에서 자기 외모의 중요성을 간과하며 아름다운 사랑을 찾는 남자를 헐뜯는, 개미 똥을 찾아대는 개미 이빨가는 소릴 글로 옮겨 놓은 것도 싫었고, 남자답게 들이밀어 쟁취하라는 주변의 타박도 싫었다. 입술을 보고 키스의 촉감을, 불 꺼진 밤의 나체를 그리며 몸을 뒤섞는 상상도 싫다. 사회로부터 부여 당한 코드에 따르는 것도 진절머리 나고, 생존을 빌미로 조건을 따져묻거나 간파하는 것도, 아직 미혼이라 모른다는 말도 다 싫었다. 그냥 난, 정서적인 집. 그게 필요했을 뿐이다. 아무튼 집에 가는 동안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길을 잘못 들어서는 바람에 몇 번 우회도로를 거치고선 도착 후 이어지는 뻔한 인사 치레를 했다. 또 이어지는 허공을 빙빙 도는 말들과 또 이어지는 말 뒤의 생각들. 나이에 걸맞게 적당히 비싼 옷과 신발을 차리고, 티나지 않게 단정한 머리, 눈썹과 손톱을 다듬어 적당한 외모를 갖췄건만, 어른이라면 희미함을 완곡함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미덕이 필요한 걸까. 아니면 당신의 설레임을 위해 상상 속의 남자가 되어야만 했던 것이었을까. 그리고 난생 처음의 안읽씹으로 소개팅은 끝났다.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