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숨어있던 나를 꺼내어줄 때
23
|
||||||||||
|
||||||||||
내 안에 욕망하는 나를 꽁꽁 숨겨놨었다. 아무도 모르는 나의 모습. 욕망하던 나는 배 나온 대머리 아저씨랑도 섹스하고 어두운 골목길에서도 하고 섹시한 궁녀도 되었다가 아이돌에 둘러쌓여 여왕처럼 애무받고 갱뱅도 하고 카섹 해변섹 영화관섹 비상구섹 올드보이 식탁섹 오피스섹 구석구석 잘도 돌아다니며 했다. 욕망 속의 대상 중에 아는 사람은 한 명도 등장시키지 않았다. 죄 짓는 느낌이라.
욕망이 폭발할 땐 엄동설한 밤중이라도 잠옷에 코트만 걸쳐입고 무작정 걸으러 나갔다. 혹시 걷다가 누구랑 훅업될 일 없을까? 야동같은 상상도 해보며. 당연히 그리고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욕망에 찬물 끼얹듯 차가운 공기를 쭉 들이키고 날숨으로 멀리멀리 내보냈다. 내가 잠시 좀 미쳤나보다 생각하며. 시간이 꽤나 흘렀다. 그 때도 성인이었지만 훨씬 더 어른이 되었고 욕망하는 나도 어른이 되었다. 호르몬을 분출하던 모습은 사라졌고 호기심만 미미하게 존재하는 상태라 존재감이 별로 없는 상태. 이성의 끈을 잘 잡는 편인건지 욕망을 상당히 잘 다스리고 산 것 같다. 대부분을 실현한 적이 없다ㅎ 신기한 경험을 했다. 상대의 눈빛, 숨소리, 약간의 몸짓만으로 젖어버렸다. 아주 많이. 그 눈빛은 강렬함이 아니고 부드럽고 몽롱하다. 나를 훑으며 음미하는 듯한 눈빛. 웬지 모르는 아련함도 보인다. 내 머리, 귀, 목덜미, 가슴 등 체취를 들이키는 숨소리. 그가 내뱉는 숨이 내 살에 깃털처럼 닿을 때마다 젖는다. 손도 바쁘지 않다. 말도 필요없다. 이전 대화로 빌드업은 끝났고 분위기는 이미 충분히 야하다. 날 가르며 바로 들어와도 난 아무런 불만이 없다. 심지어, 좋다. 물이 흐를 것 같으니 달래어 달라. 이게 욕망하는 나의 현재 모습인가. 잔잔한 강물이 흐르듯 방 안의 야한 공기를 조용히 호흡한다. 이건 내가 모르던 모습인 것 같은데. 뭐야, 쉽게 달아오르잖아 싶을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나에 대한 상대의 나름 치열한 구애가 있었다. 공략포인트를 잘 찾아내는 것도 능력. 내가 한 때 알던 내 욕망이 아닌, 내가 모르던 내 욕망을 찾아내고 그걸 구체적으로 실현한 것 같아서 더 깊이감있는 섹스를 경험한 듯 하다. 내가 모르던 내 안에 숨어있던 나를 타인이 꺼내어 주는 경험은 오래간만인 것 같다. 시야가 한 층 더 명료해진 느낌이다.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