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ilty-Pleasur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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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에 내가 느꼈던 쾌감들은 전부 직관적이었다. 좋았거나, 아주 좋았거나, 아니면 존나 좋았거나. 그런데 그 때에는 헷갈렸다. 내가 느끼는 감각이 쾌감인지 아니면 불쾌인지. 그 순간을 나는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사실은 헷갈리지 않았다. 그 역시도 직관적인 쾌감이었다. 그런데 나는 내가 쾌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에 동의하고 싶지 않았다. 과연 내가 이 쾌감을 온전하게 받아들여도 되는지, 그에 대한 답을 내리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던 것 같다. 부족한 설명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애석하지만 사회적인 통념, 그거 말고는 생각해 낼 겨를이 없다.
나름의 답을 정의한 이후에 나는 몸을 뒤로 내맡기고 있었고 또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그 순간을 이미 즐기고 있었다. 존나 좋았다. 존나 좋은 출근들이 으레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일까, 그것을 온당한 쾌감으로 인지하고 나서부터는 아침이 제법 기다려졌고 매일이 만원 지하철이기를 기대했다. 그리고 동시에 내 뒤에 남자가 나란히 포개어 서 주기를, 더 구체적으로는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탑승하는 남자가 내 뒤에 서는 행운을 바랐다. 그렇다고 해서 아직까지 주말이 싫었던 적은 없었다. 단지 지하철이 평소만큼 붐비지 않는 날은 아쉬웠다. 달에 한두 번 있던 행운은 주에 한 번, 그러더니 이제는 주에 두어 번… 점점 줄었다. 그 무렵에 알게 됐던 것 같다. (추측에 불과하지만)내 엉덩이에 닿는 감각과 태도만으로도 어제의 그 사람인지, 지난주에 마주쳤던 사람인지. 어떤 사람은 뭉툭한 자지를 꽤 지그시 밀착하기도 했고 또 어떤 사람은 휴대폰을 만지는 척하다가 내 목덜미를 가볍게 건들면서 내 움츠리는 반응을 지켜보기도 했다. 또 누구는 아주 얇게 닿을 듯 말 듯, 그러나 불규칙적으로 불끈거렸다. 그러면 나도 살그마니 엉덩이에 힘을 줬다 빼기를 반복했다. 어쩌면 서술한 모든 게 같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내 뒤에 서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거든. 사실은 두려웠다. 내가 상대방의 얼굴을 알게 됐을 때에 바뀔 내 태도가 교활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두려웠고 반대로 상대방이 나의 얼굴을 직면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지쳤고 아무런 여력도 여유도 없었다. 시간을 내어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이기적이게도 나는 출근길, 그 잠깐의 즐거움은 취하고 싶었다. 시간도 마음도 돈도 아무것도 쓰지 않고 만끽할 수 있는 나의 길티플레져였다. 책임 없는 쾌락. 가방 정리를 거의 하지 않는다. 귀걸이를 찾거나 수선 또는 클리닝을 해야 할 때가 아니라면, 지하철역 출구 앞에서 받았던,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는지도 모르는 (아마도 헬스장이나 신장개업한 식당들을 광고하는)전단지들이 내 모든 가방에 아무렇게나 구겨진 채로 서로를 부둥켜 안고 있었다. 다행히 화장품이 가방 안에서 열린 적은 없기 때문에 클리닝을 자주 하는 편도 아니었다. 언젠가 카페에서 식사 대용으로 샀던 그릭요거트에 뿌려 먹을 꿀이 담긴 일회용 간장 종지가 제대로 닫히지 않았던 적이 있다. 지금에야 생각하는 거지만 무선이어폰 집의 뚜껑이 제대로 개폐되지 않는 바람에 불량품을 수령한 게 아닌가 싶었는데 아마도 이 꿀 때문이 아니었을까. 수리센터가 아니라 물티슈였으면 그만이었을지도. 어떤 숫자가 적힌 종이에도 꿀이 조금 묻어 있었다. 그 숫자는 내 필체가 아니었다. 전단지에 비해 많이 구겨지지 않은 종이를 꽤 오래 들여다봤던 것 같다. ‘안녕하세요 가방에 번호 적힌 쪽지가 있었어요 혹시 실례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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